트럼프 2.0 시대, 문화예술의 향방은
2017년 퍼블릭 시어터에 오른 <줄리어스 시저>는 황제가 되려는 시저를 트럼프에 비유했다 ⓒJoan Marcus/Public Theater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두 달여가 흘렀다. 취임 첫날부터 26건의 행정 명령을 발동하며 화려한 귀환을 알린 트럼프는 여전히 연일 파격적인 뉴스를 갱신하고 있다. 캐나다에 관세 장벽을 치고, 러시아와 단독으로 종전 협상을 벌이고, 자국 공무원의 대거 감축을 시사했다. 그의 박진감 있는 행보에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요즘, 그렇다면 공연예술계는 어떨까?
눈에 보이는 실리가 중요한 트럼프 정부와 그 효과가 단시간 안에 나타나지 않는 문화예술계는 상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1월 20일 두 번째 취임 후 재빠르게 미국 공연예술과 문화산업에 큰 영향을 끼치는 여러 조치를 시작했다.
트럼프는 이미 첫 임기 시절2017~2021 대통령 직속 예술·인문학위원회President’s Committee on the Arts and the Humanities, PCAH(미국 대통령에게 문화 정책에 대한 조언을 제공하고 연방정부와 예술, 인문학, 박물관 간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기구로, 1982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설립했다)를 해체하고, 문화 검열을 시도하는 등 예술계를 통제하고자 하는 의지가 확고했다. 당시 트럼프는 PCAH에 속한 공영방송공사CPB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고, 국립예술기금NEA과 국립인문재단NEH마저 폐지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예술계는 권력에 대한 저항과 담론으로 더욱 활발해졌다. 예컨대 퍼블릭 시어터Public Theater에 오른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2017는 황제가 되려는 시저를 트럼프에 빗대 연출했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델타 항공 등 퍼블릭 시어터의 주요 후원사들은 이 공연이 올라간 뒤 후원의 일부 혹은 전체를 중단하기도 했다.
이후 선출된 조 바이든 대통령(2021~2025년 재임)은 경직된 문화예술계를 환기하기 위해 트럼프가 해체한 PCAH를 부활했다. 행정명령 14084Executive Order 14084(예술, 인문학, 박물관 및 도서관 서비스 진흥)를 통해서다. 연방이 문화기관을 적극 지원하고, 소외되는 지역이나 분야 없이 많은 사람들이 혜택받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바이든 전 대통령의 행정명령 다수를 속전속결로 철회했다. 여기에는 14084도 포함됐다. 그러니까 트럼프가 폐지한 PCAH를 바이든이 부활하고, 다시 트럼프가 폐지한 셈이다. 14084 명령이 폐지되면서 이제 연방정부는 문화기관을 지원할 의무가 크게 줄어들게 된다.
미국 건국의 주인공 알렉산더 해밀턴의 일대기를 다룬 뮤지컬 <해밀턴>은 브로드웨이에서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작품 중 하나다 ⓒJoan Marcus
얼마지 않아 문화계에 두 번째 소식이 날아들었다.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이 케네디 공연예술센터John F. Kennedy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의 이사진을 전면 교체하고 자신을 이사회 의장으로 자체 임명한 것이다. 워싱턴 D. C.에 위치한 케네디 센터는 1971년 설립된 미국의 국립 문화센터로, 미국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워싱턴 국립 오페라가 상주하는 곳이다. 연극·음악·무용·오페라 포함 매년 2천 회 넘는 공연이 무대에 오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케네디 센터의 구조적 부실과 관리 부족을 비판하며, 국가의 문화적 위상을 더 잘 드러내기 위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이사회를 교체했다. 이사회를 여야 동수로 구성하던 기존의 관행도 깼다. 프로그램도 대폭 수정됐다.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 DEI 이니셔티브는 앞으로 민족주의 주제나 미국의 문화유산을 보호하는 작업으로 채워진다.
트럼프의 행보는 예술적 자유 침해와 정치적 영향에 대한 우려를 부르고 있다. 뮤지컬 <해밀턴Hamilton>은 케네디 센터에서 예정된 내년 공연을 취소했다. <해밀턴>을 만든 린 마누엘 미란다Lin-Manuel Miranda와 총괄 프로듀서 제프리 셀러Jeffrey Seller는 ‘뉴욕 타임스’에 “케네디 센터는 이러한 정신으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다. 케네디 센터가 트럼프의 것이 된 이상, 우리는 그 일부가 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최근 장악함으로써 케네디 센터가 시행하게 될 편향적 정책에 반대한다”라고 성명을 냈다. 이 성명은 <해밀턴>이 미국 민주주의의 시작을 다룬 이야기이며, 미란다는 2018년 케네디 센터 공로상을 받은 바 있고, 2026년 공연이 미국 독립 선언 250주년 기념공연으로 계획된 터라 더욱 메시지가 크다. 이 외에 센터 자문을 맡고 있던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Renee Fleming 역시 자리에서 물러났다. 텍사스주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Houston Grand Opera는 트럼프 정부의 DEI 이니셔티브 중단 명령에 보란 듯이 라틴 아메리카 예술가의 작품 출연을 지원하는 3개년 프로젝트를 출범했다.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초기 날아든 두 뉴스가 썩 밝지만은 않다. 행정명령 14084 폐지로 인해 연방정부의 문화예술 지원이 축소되고, 공립 문화예술센터는 트럼프 정부 기조에 어울릴 프로그램을 꾸릴 확률이 높아졌다. 기업은 혹여나 정치색이 드러나는 작품에 연루될까 극장이나 공연 후원에 몸을 사릴 것이다. 아직은 지켜봐야 하겠지만, 시대의 걸작은 어려움 속에서 탄생한다는 희망을 붙잡아본다.
글 전윤혜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