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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호

이것은 시대적 필연
K-팝과 클래식 음악의 협업

그룹 소녀시대의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는 ‘K-팝계 아침이슬’이다. 작금의 2030세대는 시위·집회 등에서 촛불 대신 응원봉을 손에 꼭 쥐고, 민중가요가 아닌 K-팝을 부른다. 소녀시대의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 세계관의 가상 집결지인 ‘광야’(한자 ‘曠野’가 아닌 영문 ‘KWANGYA’로 표기해야 한다)를 박차고 나와 광장에서 현실의 물성을 머금고 있다.

‘다시 만난 세계’는 더구나 ‘K-팝 아이돌 원형질’을 빚어낸 SM이 창사 30주년을 맞은 2월 14일, ‘한국 클래식 음악의 심장’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울려 퍼졌다. K-팝 작곡가 겸 프로듀서 켄지의 가슴 벅찬 멜로디는 엘가 ‘위풍당당 행진곡’을 만난 동시에, 이광일·정지원·최혁렬의 웅장한 편곡과 맞물려 ‘희망의 찬가’이자 ‘K-팝의 클래식’이 됐다.

이날 무대는 SM의 클래식&재즈 레이블인 SM 클래식스Classics와 서울시립교향악단이 협업한 자리였다. <SM CLASSICS LIVE 2025 with 서울시립교향악단>이라는 타이틀로 열린 이 공연엔 K-팝의 세련됨과 클래식 음악의 오라가 만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순간들이 수두룩했다. 보컬이 비는 자리에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들어갔다.

강한뫼·정재민이 오케스트레이션으로 편곡한 엑소 ‘으르렁’이 백미 중 하나였다. “딴딴딴 따” 네 음으로 이뤄진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의 첫머리 ‘운명의 동기’가 포르티시모(매우 세게)로 뚫고 나오는 게 아니라 노래하듯 시작하는 이 곡은, 왈츠풍에 실린 ‘으르렁’의 상징적 요소들을 여러 화성으로 클래시컬하게 변주하며 흥미로운 변곡점을 빚어냈다.

클래식 음악계 슈퍼스타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임윤찬 열풍 등에 힘입어 국내 클래식 음악 관객층은 상당히 젊은 편이다. 그런데 <SM CLASSICS LIVE 2025 with 서울시립교향악단> 공연 객석엔 10·20대가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인터파크 티켓 예매자 기준 10대(4.9%)·20대(41.3%)가 46.2%를 차지했다. 주로 케이스포돔·고척돔을 많이 찾던 이들은 예술의전당 분위기에 낯설어하면서, 이런 장소에서 K-팝 선율이 흘러나오는 것을 신기해했다. 이른바 4대 대형 K-팝 기획사 중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대관한 건 SM이 처음이다.

해외에선 일찌감치 메탈리카Metallica·드림시어터Dream Theater 등 대중음악과 클래식 음악의 결합이 빈번했다. 물론 국내에서도 신해철이 이끈 넥스트, 서태지 등이 클래식 음악과 시너지를 내고자 했다. 하지만 국내 대중음악 신이 K-팝으로 재편한 뒤, 실험보다 익숙한 공식에 매몰되면서 클래식 음악과 특기할 만한 접점을 만들지 못했다.

K-팝의 위상이 국가적으로 높아지고 산업화 영역으로 접어든 뒤 구심력뿐 아니라 원심력도 커지면서 변화가 생겼다. 다양한 영역과 맞물리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SM이 클래식 음악계에 가장 적극적으로 손을 먼저 내밀었다. 2020년 클래식 음악을 기반으로 삼은 피아니스트 문정재를 대표로 내세운 SM 클래식스를 설립하고, 서울시향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2022년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과도 MOU를 맺었다.

K-팝이 처음 클래식 음악과 마주한 형태는 샘플링이다. SM 소속 그룹이 특히 꾸준히 클래식 음악을 샘플링해왔다. H.O.T. 정규 3집1998에 실린 곡이자 SM 사가社歌로 통하는 ‘빛’은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H.O.T 4집1999 타이틀곡 ‘아이야!I Yah!’ 도입부엔 모차르트 교향곡 25번, 1.5세대 그룹 신화의 ‘T.O.P.’는 차이콥스키 ‘백조의 호수’ 중 정경 일부를 가져왔다.

한류를 이끄는 K-팝이 전 세계를 상대하고 한국어를 넘어서는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한 고민이 더해지면서 영어 가사와 함께 샘플링은 더욱 인용의 대상이 됐다. 이탈리아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 3악장 ‘라 캄파넬라’를 샘플링한 힙합인 그룹 블랙핑크의 ‘셧 다운Shut Down’2022은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인 스포티파이에서 K-팝 최초로 주간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클래시컬한 K-팝’의 가장 근삿값인 음악을 들려주는 그룹 레드벨벳은 샘플링을 즐기고,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의 ‘라이Lie2016는 마누엘 데 파야의 오페라 <허무한 인생> 중 ‘스페인 무곡’을 샘플링하기도 했다.

K-팝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장르를 흡수할 수 있는 유연성이다. 세계 음악 팬을 아우르는 영리한 전략이다. 특히 SM은 K-팝 개척사로서 자신들의 유산을 ‘K팝 클래식’으로 만드는 브랜딩에 영리하다. SM 클래식스를 비롯한 멀티 레이블도 이 일환이다.

K-팝과 클래식 음악의 만남은 동시에 지식재산권IP 확장에도 방점이 찍힌다. IP 카탈로그가 방대해지면 어떻게든 활용해야 하는 것이 현 대중문화의 산업 문법이다. 그런데 예술성을 지향하더라도 대중음악 속성상 상업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실행이 힘들다. 아이돌 스타의 문법을 갖고 있는 클래식 음악계는 K-팝이 볼 때 자신들의 노하우를 적용해 또 다른 가치를 창출할 영역이 있다. SM 클래식스의 경우는 본격적인 매니지먼트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클래식 음악계도 K-팝의 제안이 반갑다. 내수시장에 한계가 있고, 공연장 크기 등 산업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일종의 돌파구다. 협업이 만능열쇠는 아니지만, 일단 만나야 한다. 더 잘 봐야 할 건, 시스템 너머의 본질이다. 클래식의 어원은 라틴어 ‘클라시쿠스classı˘cus’다. 전쟁이 일어나면, 나라를 위해 함대艦隊를 기부하는 부자가 클라시쿠스였다. 위기 상황에서 버팀목이 되는 게 클래식인 셈이다. 음악이 쇼트폼의 액세서리 취급을 받을 정도로 가치가 떨어졌다고 한편에선 수군대지만, 음악은 어느 시대나 우리를 무장하게 만든다. 그럴 때 클래식 음악·대중음악의 이분법적 잣대는 소용없다. 세상이 힘들어질수록 장르 구분 없는 음악 연대의 전진기지가 만들어질 것이다. 지금 K-팝과 클래식 음악의 협업은 어쩌면 음악이 곤경에 처한 시대에 필연일지 모른다.


이재훈 뉴시스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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