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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호

교통수단 반입을 거부 당하는 악기들

악기 연주자들은 종종 연주보다 연주 장소까지 가는 길이 스트레스라는 농담을 하곤 한다. 특히 비행기에 오를 때는 더욱 긴장한다. 악기가 기압과 온습도, 흔들림으로 인해 약해지는 데다 악기 때문에 탑승을 거부 당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음악가에게도 예외는 없다. 지난 12월에 일어난 미국 첼리스트 셰쿠 카네 메이슨Sheku Kanneh-Mason의 사례를 보자.

토론토 공연을 앞둔 카네 메이슨은 첼로를 기내에 반입할 수 없다는 이유로 에어캐나다Air Canada 비행기 탑승을 거부당했다. 에어캐나다의 ‘특수 수하물 반입의 경우 48시간 이전에 고지해야 한다’는 규정을 지키지 못한 게 이유. 그런데 카네 메이슨의 경우는 예정된 항공편이 당일 취소돼 급하게 에어캐나다의 항공편 티켓을 구한 터라 사전에 알릴 수 없는 조건이었다. 논란은 카네 메이슨이 첼로 운송을 위한 추가 좌석을 예매했고, 공연 주최 측인 왕립음악원의 호소에도 탑승을 거부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더욱 커졌다. 카네 메이슨은 1700년대에 제작된 그의 첼로 마테오 고프릴러Matteo Goffriller(최대 300만 달러, 한화 약 42억 원)를 위탁 수하물로 싣는 대신 공연을 연기하기로 했다.

2017년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Gidon Kremer가 이끄는 앙상블 크레메라타 발티카Kremerata Baltica도 에어캐나다의 제재로 첼로 4대를 기내에 반입하지 못했다. 첼로는 결국 항공기 4대의 기내에 분산돼 실렸으며, 마지막 첼로는 간신히 공연 직전에 도착했다. 저가 항공의 경우 규정은 더욱 까다롭다. 지난해 9월 항공사 라이언에어Ryanair는 바이올린 케이스가 규정보다 1센티미터 크다는 이유로 기내 반입을 거부했다.

미르나 에르조그는 알리탈리아 비행편 이용 후 악기가 파손됐다는 사실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Myrna Herzog

특수 수하물인 악기의 기내 반입 규정은?

일반적으로 바이올린·비올라처럼 좌석 위 선반에 들어가는 악기는 기내 반입이 무료로 가능하다. 첼로처럼 세 변의 합이 115센티미터 이상인 중형 악기의 경우 자신의 옆에 추가 좌석을 구매해 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제한이 있다. 에어캐나다의 경우 악기의 높이나 길이가 162.5센티미터, 무게가 36킬로그램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 영국항공British Airways의 반입 가능한 수하물의 최대 높이는 140센티미터다. 120센티미터가량인 첼로는 원칙적으로 가능하지만, 카네 메이슨의 사례처럼 항공사의 판단에 따라 위탁 수하물로 처리해야 할 수도 있다. 많은 연주자가 비슷한 경험이 있다.

2018년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 미르나 에르조그Myrna Herzog는 알리탈리아 항공Alitalia에서 추가 좌석을 구매할 수 없다는 안내에 어쩔 수 없이 악기를 수하물로 부쳤다. 비행 후, 1708년 제작된 이 악기는 앞판의 반쪽이 부서진 상태로 도착했다. 2022년 독일의 루프트한자Lufthansa는 위탁 수하물 칸에 실린 금관악기 7대를 분실했다.

더욱 치명적인 사실은 악기가 항공사 보상 규정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 항공사들은 개인 악기 보험이 필수라고 명시하며, 위탁 수하물로 악기를 부칠 경우 면책 서약서에 서명을 받는다. 위탁이 의무인 대형 악기 연주자의 경우 이러한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현지에서 악기를 빌리기도 한다.

점차 개선되는 기차와 지하철 운송

땅에서도 근심은 이어진다. 지난 12월 파리에서는 더블베이스를 가지고 트램을 탄 연주자가 악기 부피가 크다는 이유로 벌금 150유로(한화 약 22만 원)를 물었다. 더블베이스 연주자들은 이에 익숙하다. 대형 악기 소지자 250명을 대상으로 한 프랑스 설문조사(PROFEDIM 실시, 2024)에 따르면, 39%는 탑승 거부를 당했고, 70%는 벌금을 부과받은 적 있다. 그중 50%는 벌금을 반복적으로 내고, 63%는 벌금이 연주비의 50~100%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심하게는 쫓겨나는 경우도 있다. 2022년 파리 오케스트라의 더블베이스 단원 스타니슬라스 쿠친스키Stanislas Kuchinski는 앙상블 단원들과 TGV 일등석에 탑승했다가 출발 직전 쫓겨났다. 더블베이스를 소지했다는 이유였다. 그는 5시간 30분을 운전해 공연 시작 전 겨우 도착했다. 이미 대형 악기의 기차 반입을 허용해달라는 청원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청원 참여자는 5만 명에 달했다.

다행히 대중교통은 공공사업인 만큼 사안이 개선되기도 한다. 2016년 첼로를 멘 학생의 지하철 탑승을 저지했다가 질타를 받은 홍콩 지하철의 경우, 대형 악기 탑승 사전 등록제를 신설했다. 악기를 등록한 사람들은 해당 악기를 들고 지하철을 탈 수 있다. 프랑스 공공철도회사 SNCF는 2024년 7월 더블베이스 반입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라벨이 부착된 소프트 케이스에 넣어 전용 공간에 보관하는 조건이다. 독일의 도이체 반Deutsche Bahn의 경우 한 사람이 운반할 수 있는 휴대품이라면 크기에 상관없이 무료로 반입할 수 있다. 다만 다른 승객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붐비는 시간을 피하기를 권고한다.

우리나라도 융통성이 있는 편이다. KTX의 경우 규정상 승객 1인당 스스로 운반할 수 있는 최대 2개의 휴대품을 소지할 수 있다. 다른 승객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선이라면 엄격하게 크기 규정을 적용하지는 않는다. 요즘 승객의 골프가방 휴대가 늘며 중대형 휴대품에 관대해지기도 했다고. 추가 좌석을 구매하지 않은 악기 소지자는 객실 양 끝에 남는 공간에 악기를 세우거나, 특실의 짐칸 옆 1인석 등 유휴 공간에 악기를 적재하려 노력한다. 지하철 역시 총합 158센티미터 이내의 짐만 허용하지만, ‘위해물품 이외의 금지품’ 소지 시 1만 원, ‘휴대 제한품’의 경우 5천 원으로 벌금이 현저히 낮다.

악기를 멘 연주자들은 교통수단에 탑승하기 전부터 진을 뺀다.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계단… 자동차 이외에는 대안이 없는 교통 분야. 모두가 조금씩 이해해주는 넓은 마음을 가지는 것만이 답일까. 자가용이 없는 것이 이들의 죄가 아니며, 이들이 등에 멘 악기도 십자가가 아니다.

글 전윤혜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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