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 아카이브
강고운
공예/도자
@whitethings_
2024·2025 신당창작아케이드 입주작가
<이어지는 점_cylinder>, 2024, 백자, 커피박, 물레성형, 소성 후 옻칠, 연마, 140×150mm
백자를 기반으로 다양한 재료의 물성을 활용해 작업하고 있는 도자 작가 강고운입니다. 저는 흙이라는 재료에 매력을 느껴 도자기를 시작했고, 실험을 통해 어울리는 재료를 흙에 섞어 작업을 하는 데 큰 흥미가 있습니다. 특히 자연적 소재의 유기물인 커피박·옻 등 소재에 주목해 최근에는 이를 융합한 새로운 시각·촉각적 질감을 가진 도자기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 수업을 좋아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그때도 종이를 사용해 그리는
것보다 석고나 고무판화 같은 재료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더 재미를 느낀 것 같습니다. 미대
입시를 준비하면서 대학에 공예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공예과가 있는 학부로 지원했습니다.
이후 입학한 대학에서 처음 도자기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어떤 형태도 잡혀 있지 않은 흙이라는
소재가 여러 과정을 거쳐 도자기로 변하는 모습이
제게는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도자를 전공으로
정한 후에는 모든 공예가 그렇듯 주재료(흙)를
다루는 기본적인 방법과 제작 과정을 배우고
익혔습니다. 실패도 많았지만, 제가 좋아하는
것을 더 잘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고 조금씩
나아지는 과정을 보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4년의
과정이 끝난 시점에서 졸업전시에 출품했는데
정말 생각지 못하게도 작품이 판매됐습니다.
그때 작품을 구매하신 분의 표정과 응원의 말이
이상하게도 저에게는 감사함이나 고마움보다는
새로운 충격으로 느껴졌습니다. 제 작업이 다른
누군가를 즐겁고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느낌을
처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작업을 하는 것과는
또 다른 충족감이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고
만들어낸 일련의 과정과 결과를 다른 사람과 함께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 후부터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고민하며 활동을 이어가고자 결심하게
됐습니다.
‘예술’과 ‘예술가’라는 단어를 검색해봤습니다.
스스로 느낀 경험은 없지만 검색 결과 중 ‘예술을
직업 또는 생업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예술가의 기준이고, 예술의 정의가 ‘원하는 작업의
방향성을 가지고 그 방향성에 맞는 소재와 방법을
찾아 결과물을 만드는 일’이라면 저도 예술가에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만드는 데
하루 중 가장 많은 일과를 보내고, 이 일을 통해
돈을 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예술적이지
않은 무미건조한 설명일지 모르나 그만큼 제게
예술가라는 타이틀은 그저 매사 꾸준히 자신의
작업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명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점’ 시리즈, 2024, 백자, 커피박, 물레성형, 소성 후 옻칠, 연마, 스테인리스 손잡이
백자와 안료, 유기물, 옻칠을 활용한 ‘이어지는
점’ 작업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점’
시리즈에는 표면에 기존의 백자에서 볼 수 없는
작은 기공이 보이는데, 이는 커피박을 섞은
소지(흙)이기 때문입니다. 커피박은 커피를 내리고
남은 원두의 찌꺼기로, 흙에 섞어 성형하면 초벌
과정에서 타고 없어져 마치 현무암과 같은 기공이
나타납니다. 유기물을 섞어 기공을 낸 기물은 백자
특유의 매끄러운 표면 감촉은 유지하면서 시각적인
효과를 줄 수 있는 얕은 음각 표면을 가지게 됩니다.
많은 유기물 중에서 커피박을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물레 성형에 방해가 적다는 점, 원활한
재료 수급이 가능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기공을
낸 백자는 새로운 질감을 가지게 되는데 이를
강조하고자 선택한 방법이 옻칠이었습니다. 옻칠은
온도와 습도만 맞으면 단단하게 마르는 자연의
도료입니다. 소성 시 물성이 변하는 유약이나
슬립(흙물)과 다르게 얕고 작은 기공의 사이사이를
메워 색을 채우는 데에 용이해 옻칠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내부는 기 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약
처리를 했는데, 기공을 최소화하기 위해 스프레이
분사 기법으로 마감했습니다. 도자와 옻칠 모두
색상을 다양하게 낼 수 있는 만큼 앞으로는 새로운
색상의 작업도 점차 진행해볼 예정입니다.
저는 주로 자연에서 많은 영감을 얻습니다.
제 사진첩에는 특히 양구의 작업실에 있을 때
찍어놓은 자연 풍경이나 클로즈업 사진들이
많습니다. 그늘에 무성하게 자리한 이끼라든가,
삭아가는 나뭇잎의 결대로 나타나는 패턴,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밭 같은 장면들인데요.
이 느낌과 촉감을 기물에 담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매번 생각합니다. 도자기는 흙과 불에서
탄생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어쩌면 자연과는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이런 생각을 더 하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사람의 손길이
머물렀던 옛 물건들에서도 영감을 받습니다.
오래된 청동기의 녹슨 표면이나 낡은 골동품
가게에서 산 벼루, 너무 많이 만져 닳고 닳은 나무
지팡이 같은 것들을 보다 보면 사람들이 애정을
주었던 사물이 가지는 모습에 대해 생각하고 이와
닮은 사물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게 됩니다.
작업하다 막히거나 계기를 찾고 싶을 때
국립중앙박물관을 하염없이 돌아다니는 저만의
작은 룰이 있습니다. 참 신기한 것은 갈 때마다
다른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인데, 아마 제가
생각하는 고민이 때마다 달라서인 것 같습니다.
유기물을 처음 넣을 때는 선사 시대의 유물에 찍힌
벼의 자국이나 유기물이 타고 남긴 검은 연기가
착색된 가지문토기가 눈에 들어왔고, 옻칠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종일 옻칠 된 함이나 장식품을
보면서 돌아다녔습니다. 이번에 방문하면
또 어떤 것이 눈에 들어올지 궁금합니다.
앞으로는 작품의 색상 변주를 시도해보려 합니다.
흙과 유약, 옻칠의 다양한 색상 조합이 가능한
만큼, 새로운 시도가 가능할 것입니다. 내부의
마감도 유약이 아닌 색상이 있는 옻칠로 해서
옻칠의 면적을 넓히는 작업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또 현재는 물레를 사용한 입체 작업을 많이 하고
있는데 기회가 된다면 지금의 작업 방식을 활용한
평면 작업도 시도해보고 싶습니다. 평면 작업은
물레라는 제작 방식이 가지는 한계를 보완할
다른 방식의 접근임과 동시에 도자기가 기 器로서
가지는 용도보다 제가 보여주고자 하는 재료의
물성을 좀 더 부각할 방법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글 안미영 서울문화재단 홍보마케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