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 아카이브
전지영
문학/소설
@jeonz0
2024 연희문학창작촌 입주작가
소설 쓰는 전지영입니다. 저는 2023년 조선일보·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25년이면 등단 3년 차 작가가 되는 셈입니다. 최근에는 지난 2년간 발표한 단편 소설을 묶어서 소설집 『타운하우스』를 출간했습니다.
제가 첫 단편 소설을 쓴 건 서른셋 즈음이었는데, 이미 그전부터 저는 소설을 쓰고 싶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용기가 없을 뿐이었지요. 저는 첫 단편 소설을 쓰던 순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비로소 소설 쓰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 되겠구나, 자각한 순간이 바로 그때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처음 쓴 소설은 문장이나 형식이 엉망이었지요. 소설을 쓰는 데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걸 잘 모를 때였어요. 첫 소설을 쓴 이후 기술을 습득하고 연마하려고 공을 들였습니다. 어떤 예술 장르든 마찬가지이겠지만, 기술은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최소한의 그릇을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등단의 문이 넓지 않기 때문에 저 역시 꽤 긴 시간 각종 공모전과 신춘문예에 낙선했습니다. 그때마다 처음 소설을 쓴 순간의 감정을 기억하려고 노력했어요. 제가 긴 습작 시간을 이겨내는 계기와 동력이 돼주었습니다.
사실 소설을 쓰기 전에도 서사를 나르는 다양한 장르 중 유독 소설을 좋아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 모두 책을 가까이하는 분위기에서 자랐지요. 부모님은 제게 ‘이런 책을 왜 읽냐?’ 혹은 ‘이 책은 네가 읽기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어떤 책을 읽든 내버려두셨지요. 제게 독서할 자유를 온전히 보장해주셨어요. 제가 마음에 품은 이야기를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하겠다고 결심한 건 어쩌면 무척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모든 실패를 기꺼이 받아들일 때, 스스로 예술가라고 느낍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상당수가 실패한 인물입니다. 그래서 소설을 쓸 때 실패와 좌절은 아주 값진 재료가 됩니다. 어쩌면 제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집 『타운하우스』(2024) 표지 ⓒ창비
2024년 12월에 출간된 소설집 『타운하우스』는 제가 등단한 뒤 발표한 여덟 편의 단편 소설이 실린 책입니다. 책에 실린 작품은 오늘날 사회의 계급, 폭력 문제 앞에 선 인간의 불안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주제는 제가 아주 오랫동안 고민하고 싸워온 문제이기도 합니다. 독자들은 제 소설이 긴박하고 서늘하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저와 평소의 저는 몹시 다른 사람 같다는 말을 듣는데요.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닙니다. 제 안에 저도 모르는 긴장감과 불안이 그런 리듬과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저는 주로 공간에서 영감을 받는 편입니다. 제게 공간은 하나의 인물과 다름없습니다. 첫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도 독특한 공간, 이를테면 관사·타운하우스·어시장 등이 배경으로 등장하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만의 특성을 포착하려고 노력했어요. ‘저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까?’ 궁금증을 일으키는 공간에 관심이 많습니다. 공간이 품은 사연은 인물의 사연과 밀접하게 상호 작용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요즘은 폐허나 재난 후 재건된 도시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 도시에서 여전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작년 초 런던에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들었습니다. 평소 클래식 음악을 좋아해서 공연장을 종종 찾긴 하지만, 그날의 기분은 특별했던 것 같습니다. 음악이 끝날 때까지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전율을 느낀 건 처음이었어요. 사실 저는 언어가 없는 예술 장르에서 감동을 잘 느끼지 못해요. 그 감각을 말로 표현하려면 어쩔 수 없이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언어를 동원해야 하는데, 저는 그 과정을 부자연스럽다고 느끼곤 했어요. 그런데 그날은 언어에서 받은 감동만큼이나 또렷한 감동을 전달받았습니다.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었죠.
장편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재난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생존자의 삶을 쫓는 내용입니다. 이 소설을 쓰면서 고통에 대한 타자의 윤리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그 고민을 독자와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소설이 잘 쓰이길 소망합니다.
정리 전민정 [문화+서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