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서울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검색 창
  • 인스타그램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

문화+서울

  • 지난호 보기
  • 검색창 열기
  • 메뉴 열기

FOCUS+

11월호

프리뷰 당연하게 믿어온 현실 앞에 묻다

언폴드엑스 2026

료이치 구로카와, <이-엑스/엔디-오>, 2026

12월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는 ‘언박싱’의 시기라면, 11월은 치밀하게 준비한 것을 드러내는 ‘언폴드’의 때다. 국내 최대 규모의 아트앤테크 페스티벌 언폴드엑스 2026이 막을 올린다. ‘언폴드unfold’는 접힌 것을 펼친다는 뜻이고, 뒤에 붙은 ‘엑스X’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미지수다. 예술과 기술이 만나 무엇이 될지, 이름 자체로 기대감을 끌어올리는 행사다.

‘언폴드엑스’가 이 이름으로 개최되기는 올해가 다섯 번째. 더 깊은 뿌리는 2010년 다빈치 아이디어 공모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4년 ‘다빈치 크리에이티브’를 거쳐, 공모·창작 지원·발표·포스트 프로덕션으로 이어지는 지원 구조를 갖춘 아트앤테크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결과가 알차다. ‘미디어아트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며 지난 6월 발표된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Prix Ars Electronica에 한국 작가 두 팀이 이름을 올렸다. 우주+림희영의 <새는 없다>가 인터랙티브 아트 플러스 부문에서, 이정우의 <쓰여진 영화, 쓰여질 역사>가 뉴 애니메이션 아트 부문에서 각각 영예상을 받았다. 두 작품은 언폴드엑스 2025의 지원을 통해 첫선을 보였다. 앞서 2023년에는 언폴드엑스 2022에서 발굴된 작가 상희의 <원룸바벨>이 특별상을 받았다. 같은 해 서울문화재단 지원 작가 김아영은 한국인 최초로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최고상인 골든 니카를 거머쥐었다.

이번 언폴드엑스는 ‘16년의 축적, 2026년의 도약’을 내걸었다. 그간 축적한 성과를 바탕으로 더 크게 나아가겠다는 선언이다. 이에 작년에 이어 외국인 예술감독을 선임했다. 캐나다 퀘벡의 전자음악 작곡가이자 미디어아티스트인 알랭 티보Alain Thibault다. 1999년 몬트리올에서 디지털아트 퍼포먼스 페스티벌 ‘일렉트라’를 창립했고, 국제 디지털아트 마켓Marche International d’Art Numerique, MIAN과 국제 디지털아트 비엔날레International Digital Arts Biennial, BIAN를 세운 인물이다. 2024년 언폴드엑스에 작가로 참여한 인연이 있다.

그가 내건 주제는 ‘리얼리티 체크Reality Check’. 알고리즘과 AI 에이전트가 기억과 관계, 욕망까지 매만지는 시대에 ‘자아는 어디서 끝나고 시뮬레이션은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묻는다. 그는 전시 서문에 “문제는 단순히 무언가가 실재인지 인공인지의 여부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현실로 받아들이는지를 어떻게 결정하는가에 있다”고 썼다. 7개국 28팀이 전시 작품 24점과 퍼포먼스 5편 등 전체 29점을 내놓는다.

상賞도 생겼다. ‘서울 언폴드엑스 어워즈’가 출범한다. 첫 회인 2027년에는 인터랙티브 아트 부문으로 출발하며, 올해 후보를 추려 내년에 수상작을 발표할 예정이다. 북미·남미·유럽·아시아·중동 등 대륙별 전문가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작품을 추천하고, 서류 심의로 후보 10점을 뽑아낸다. 11월 초 후보작이 공개되면 시민 누구나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작가를 발굴하던 플랫폼이 이제 세계 아트앤테크 분야의 기준을 세우는 역할로 성장할 전망이다.

아트앤테크의 첨예한 현재

해외 미술관에서나 마주칠 이름들을 직접 만날 수 있어 반가운 자리다. 2010년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골든 니카 수상자인 료이치 구로카와?川良一가 신작 <이-엑스/엔디-오>를 최초로 공개한다. 여러 생물종의 골격 데이터를 알고리즘으로 쪼개고 비틀어 3채널 오디오 비주얼 설치 작업으로 다시 짰다. 뼈는 오랜 세월 환경에 맞춰 깎인, 시간이 빚은 기능미의 결정으로, 그 대칭과 질서가 화면 속에서 해체됐다가 환영 같은 형상으로 되살아난다. 제목은 외골격exo-과 내골격endo-의 접두사를 뒤섞은 것이다. 안과 밖,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8분 동안 넘나드는 작품이다.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스코틀랜드관 대표 작가였던 레이철 매클린Rachel Maclean의 <덕>2023은 웃기고도 섬뜩하다. 16분짜리 단편 영화의 무대는 누구나 아는 영국 첩보 스릴러의 세계다. 영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 역으로 익숙한 숀 코너리가 단서를 모으고 팜파탈을 상대하다, 죽음에서 돌아온 매릴린 먼로를 보고 무너져간다. 화면 속 배역들을 모두 작가 자신이 연기했다. 얼굴과 목소리는 전부 딥페이크로 갈아 끼웠다. 2024년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뉴 애니메이션 아트 부문 영예상 수상작이다.

알렉산드라 데이지 긴즈버그Alexandra Daisy Ginsberg의 <대체물>2019은 사라진 생명을 불러낸다. 2018년 마지막 수컷 북부흰코뿔소 ‘수단’이 죽었다. 작가는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연구를 바탕으로 이 동물을 디지털 에이전트로 되살렸다. 폭 5미터 화면 속 실물 크기 코뿔소는 가상의 방을 익혀 갈수록 픽셀 덩어리에서 살갗 가진 짐승으로 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숨결은 가짜다. 있는 생명을 지키지도 못하면서 새 생명 만들기에 몰두하는 인간의 역설적 현실이 숨어 있다.

스페인과 에스토니아 출신 듀오 바르바라&마르Varvara & Mar의 <건초더미에서 바늘 찾기>2024는 불가능한 상황을 의미하는 관용구를 실험으로 옮겼다. 로봇 팔이 건초를 집어 자석에 대보고, 바늘이 붙었는지 확인하고, 다시 집는다. 바늘을 찾으면 방울을 울려 성공을 알린다. 끝없이 불어나는 데이터에서 정보를 골라내야 하는 오늘날의 AI를 보여주는 듯하다고 할까? 이 단순한 일에 카메라와 센서, 머신 비전, 연산 자원, 사람의 엔지니어링이 얼마나 드는지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퀘백 작가들은 사물의 감각으로 질문한다. 사뮈엘 생토뱅Samuel St-Aubin의 <번영>2017은 흩어진 쌀알을 한 톨씩 집어 옆판에 가지런히 내려놓는 기계다. 공장 기계를 닮았지만 느리게, 낟알마다 모양과 방향을 살핀다. 피터 반 하프턴·마이클 몬태나로·가넷 윌리스의 <온 에어>2025는 관객의 목소리를 나팔 모양 악기로 빨아들여 라텍스 풍선에 가둔다. 압력이 차오르면 밸브가 열리고, 갇혔던 말들이 탄성막을 향해 이동하고 소리와 빛의 불협화음으로 터져 나온다. 몬트리올 듀오 aenl(안나 에일러Anna Eyler&니콜라 라푸앵트Nicolas Lapointe)의 <데이터의 홍수>2026는 전시 기간 내내 물이 차오르는 실시간 시뮬레이션이다. 매일 수위가 오르고 잔해가 쌓여 끝내 영상 자체가 잠기고 만다. 악마의 눈, 수정구슬 같은 부적 이모지가 그 위를 떠돈다. 케빈 뒤보Kevin Dubeau의 <하이퍼-크래시>2025는 길가에서 찍은 자동차 사고 파편 사진을 출발점 삼아 생성형 AI로 엮어낸 단편 영화다. 토론토의 0x데프비프0xDEAFBEEF는 손으로 벼린 쇠 케이스에 C언어 코드를 심었다. <글리치박스>2021-25와 <신스 포엠 오실로스코프>2021-26는 관람객이 직접 작품을 만져 소리와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작품이다. 일본 후지시마 사코藤嶋?子의 <리:플레이>2026는 관객이 남긴 말이 한밤의 가상 도시를 떠도는 등장인물에게 쌓여 단 한 번도 동일하게 반복되지 않는 게임이다.

0x데프비프, <글리치박스>, 2021-25

aenl(안나 에일러&니콜라 라푸앵트), <데이터의 홍수>, 2026

동시대를 향한 작가들의 질문

차세대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를 꿈꾸는 국내 작가 12명은 모두 신작을 들고 왔다. 올해 융합예술 지원사업에 선정된 작가들이다. 오명석의 <읊는 기계>는 장소성을 잘 활용한 작품이다. 전시실은 옛 서울역사다. 작가가 서울역을 다룬 대한뉴스와 문화영화의 소리를 모아보니 3분의 2가 현장음이 아닌 누군가가 읊은 내레이션이었다. AI 에이전트 셋이 모듈러 신시사이저 한 대를 나눠 쓰며, 국가가 읊은 소리를 자르고 붙이고 지운다. 하나는 출처가 들리도록, 하나는 출처를 벗어난 음악을, 또 하나는 방 안의 관객을 읽는다. 지휘자도 악보도 없지만 셋이 부딪히는 과정이 곧 연주가 된다.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이진의 <모라>는 공기를 붙잡는다. 팬 여러 대가 만든 기류가 허공에 보이지 않는 틀을 세우면, 그 안에서 연기의 고리가 스스로 닫혀 돌고 돈다. 흩어지려는 힘과 붙드는 힘이 맞서는 동안에만, 힘의 평형이 유지될 때만 형태가 갖춰진다. 무너졌다 다시 맞춰지기를 되풀이한다. 라틴어 ‘모라’는 지연과 유예를 뜻한다.

둘dul의 <과공명>은 온몸으로 경험하는 작품이다. 48개 스피커가 둥글게 선 구조물 안에 들어서면 뎁스 카메라가 위치를 잡아내고, 관객과 관객 사이에 보이지 않는 음향 선이 그어진다. 선 위에 서면 소리가 커진다. 요청한 적도 없지만, 거부할 수도 없는 연결인 셈이다. 벗어나려면 시스템이 나를 사람으로 알아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웅크리고, 눕고, 몸을 비트는 식으로. 연결에서 풀려나는 순간 관객은 하나의 오류가 되는 것인데, 초연결 사회에서 찾은 자유가 해방인지 또 다른 소외인지 묻는 작업이다.

전석희의 <잠시 나의 손이었던>은 VR 헤드셋을 쓰고 컨트롤러 없이 맨손으로 감상할 수 있다. 15분짜리 경험극이라 생각해도 좋겠다. 관객은 로봇손 공장의 작업자가 되어 손을 조립하고, 나와 함께 움직이는 손을 늘려 간다. 그러다 내가 만든 손이 불량 판정을 받아 회수되고, 끝내 내 손마저 제멋대로 움직인다. 고무손 실험에서 출발한 작품은 ‘내 손’이라는 감각이 얼마나 쉽게 생겨나고 사라지는지 묻는다. 가상 세계가 사라지고서야 비로소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진짜 손이 보인다.

김호남의 <웅성거림을 위한 블러스케이프>에서는 개조한 기차 모형 두 대가 레일 위를 달린다. 필름이 영사기를 지나는 대신, 광학 장치를 실은 기차가 필름 레일 위를 지난다. 이 기차는 벽에 흐릿한 풍경을 찍어 남긴다. 기차가 떠난 역사를 다시 달리는 기차다. 김정환의 <행위하는 물질>은 탄성 천이 출렁이는 키네틱 설치 작품이다. 관객의 작은 개입이 번져 나가 전체의 물결을 바꾼다. 민경오의 <림보>는 전자 종이 모듈 약 70개로 이뤄진다. 입자가 재배열되면 종이 위 이미지가 바뀐다. 박은영의 <부드러운 구석>은 천과 주름, 종이접기 기법으로 만든 부드러운 로봇이다. 일을 대신하지는 않고 곁에 머무는 로봇이다.

박은영 《PLEATS: Interior Scenes with Soft and Affective Robots》 2021년 전시 전경

도시를 반짝이게 하는 예술

올해 언폴드엑스는 전시장 밖으로까지 확장된다. 새로 생긴 ‘언폴드엑스 스크린’은 코엑스 아티움, 서울역, 광화문 룩스의 대형 전광판에 미디어아트를 띄운다. 스크린 기반 트랙으로 뽑힌 작가 4명이 3분 남짓한 신작을 송출한다. 고휘의 <라르고>는 전광판 주변의 소리를 모아 천천히 이미지를 쌓아간다. 김보슬의 <해이라-얽힌 세계>는 해수면 상승 뒤 심해로 이주한 인류의 도시를, 문소현의 <2026년 꼭 봐야 할 전시>는 들어갈 수 없는 가상 전시의 광고를 띄운다. 정성진의 <경로를 재생성합니다>는 서울의 건물과 도로 데이터로 어디에도 없는 도시를 짓는다. 한·중·일 교류 프로그램으로 초청된 일본 에하라 사에코江原彩子의 <꽃의 자취>와 중국 페이 준의 <생명정원>도 만날 수 있다. 광고가 차지했던 도시의 화면이 잠시 동안이나마 질문하는 예술적 표면이 된다는 사실이 반갑다.

개막일인 11월 26일 오후 4시 문화역서울284 중앙홀에서는 두 편의 개막 퍼포먼스가 열린다. 몬트리올의 작곡가이자 디지털 아티스트 미리암 블로는 <하이퍼모빌리티>2022/2024에서 정제된 테크노 사운드를 프로젝션 작업과 결합해 관객들의 머리 위로 빛의 평면을 조각한다. 료이치 구로카와는 2005년부터 이어온 프로젝트의 세 번째 버전 <nD>를 40분간 펼친다. 두 화면이 맞선 양면화 형식으로 구성된다. 야간 프로그램 ‘언폴드엑스 이브닝’은 11월 28일과 12월 5일, 두 차례 토요일 저녁에 열린다. 스페인의 인지과학자 알베르트 바르케 두란Albert.DATA은 <시냅티콘>에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로 읽은 자신의 뇌파를 AI가 문장으로 풀고, 그 문장을 다시 영상과 소리로 바꾼다. 생각마저 읽히는 시대의 정신적 사생활을 묻는다. 일본 그룹 오픈 릴 앙상블은 낡은 릴테이프 레코더를 ‘마그네틱 민속악기’로 연주한다. 테이프를 돌리고 치고 당기며 방금 녹음한 소리를 되감아 비튼다. 서울의 음악가 라이언클래드는 샘플러로 빚은 글리치 사운드를, 비주얼 아티스트 유시yusi.는 서브컬처 감성의 라이브 영상을 맞붙인다.

2022년 MUTEK 몬트리올에서 선보인 미리암 블로의 퍼포먼스 <하이퍼모빌리티> ⓒBruno Destombes

현실인지 묻는 축제가 결국 가장 현실적인 질문으로 돌아온다. 비물질처럼 보이는 AI는 데이터센터와 전기와 물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 바늘 하나 찾는 데도 연산이 들고, 화면은 물에 잠긴다. 올해 언폴드엑스가 펼쳐 보이는 것은 작가와 작품만이 아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온 현실의 주름을 드러낸다.

글 조상인 서울경제 문화부 미술전문기자

위로 가기

문화+서울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