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화려한 소비와 소소한 일상 사이
야간경제의 미래
‘야간경제’를 논할 때 우리는 흔히 저성장 극복을 위한 경제 활동의 시간적 확장이나 도심 쇼핑센터, 문화 공간에서의 화려한 소비를 떠올린다. 이는 분명 야간경제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보통의 소시민과 중산층에게 밤은 내일의 출근을 준비하며 가족과 온기를 나누는 평화로운, 그리고 여유로워지고 싶은 시간이기도 하다. 저녁을 먹고 식기세척기를 돌린 뒤 텔레비전을 보거나 책을 읽고 그러다 잠깐 밀린 집안일을 마무리하는 평범한 일상 말이다. 때로는 가끔 강남에서 친구를 만나 만화 카페도 가고 종로에서 오랜만에 대학 동기와 함께 청계천도 거닐고, 퇴근길 간단한 샌드위치를 먹은 뒤 양재천을 조깅하고 시원한 라거 한 잔을 즐긴 후 샤워하는 작은 즐거움 역시 생생한 야간경제다. 1인 가구와 맞벌이 가정이 늘어난 서울에서 밤은 더 이상 낮의 연장이 아니라 각자의 리듬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자신만의 시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야간경제를 논할수록 화려한 통계 이면에 있는 평범한 저녁의 의미 있는 밀도를 함께 들여다봐야 할 필요가 있다. 야간경제는 도심의 역동적 소비부터 개인이 누리는 온전한 휴식까지 삶 깊숙이 스며 있다.
서울시가 야간경제 활성화에 나선 배경에도 두 개의 축이 있다. 하나는 지역경제의 활력이다. 저성장이 구조화되고 주간 상권만으로는 성장의 여지가 좁아진 상황에서, 도시가 활동하는 시간을 저녁과 밤으로 넓히는 것은 골목상권과 소상공인에게 새로운 매출의 기회를 여는 일이다. 비어 있던 낮 시간대에 방문과 체류, 소비가 더해지면 같은 공간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는 그만큼 커진다. 다른 하나는 시민의 삶의 질이다. 노동 시간이 길고 여가 시간이 부족한 사회에서 저녁은 시민이 온전히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몇 안되는 시간이며, 이런 가구 구조가 확산하면서 그 시간의 밀도는 더욱 중요해졌다. 운동과 문화, 휴식을 집 가까운 곳에서 누리도록 도시의 시간을 넓히는 일은 곧 시민이 저녁을 되찾는 일이다.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눠본 야간경제
세계 주요 도시의 밤은 저마다 다채롭다. 뉴욕과 런던이 공연과 펍 중심의 상업 소비에 집중되어 있다면, 암스테르담은 야간시장Night Mayor 제도를 통해 야간의 활동과 소비 지출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을 시·업계·주민이 함께 조율해온 거버넌스의 원조다. 도쿄는 도심 유흥과 주거지 인근의 일상적 휴식이 얽혀 있는 대표적인 도시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풍경을 시민의 소비 지출액이나 유동 인구로 야간경제의 정도를 측정하는 데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지출액 중심의 지표는 화려한 상업 공간을 과대평가하는 반면, 조용한 휴식과 돌봄의 가치를 통계 바깥으로 밀어낸다. 이런 의미에서 야간경제의 다층적인 모습을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시간(가로축)과 활동 성격(세로축)을 유형화하기 위해 사분면에 그려보자. 아래 그림처럼 네 영역을 나누면 각 정책과 사업이 어느 시간대, 어떤 가치를 겨냥하는지 한눈에 짚을 수 있다.
1사분면 ‘심야×문화’는 ‘깊은 밤, 온전히 나를 채우는 시간’이라 이름지어 볼 수 있고 24시간 웰니스나 심야 공연 등 도시의 정서적 앵커가 된다. 2사분면 ‘저녁×문화’는 수변 조깅이나 야간 도서관 이용 등 삶의 질을 높이는 ‘퇴근 후 감성과 미학을 켜는 시간’이다. 3사분면 ‘저녁×소비’는 전형적인 ‘퇴근길 미식, 맥주 한잔’으로 노포와 골목 맛집을 발굴해 지역의 먹거리를 야간 콘텐츠로 키우는 서울시의 ‘달빛야장’이 이 영역에 속한다. 4사분면 ‘심야×소비’는 ‘잠들지 않는 도시의 생생한 활력’ 유형으로 24시간 배달과 야시장 등 경제적 활력을 담아낸다. 네 영역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고 한 사람의 일주일의 삶 안에서 자연스럽게 겹쳐 흐르며, 그렇게 만들어내는 밤의 총량은 절대 작지 않다. 이 프레임워크는 도시가 시민의 입체적인 밤의 라이프 스타일을 수용하는 틀을 제공한다.
사분면 중 공공정책이 적극 개입할 영역은 ‘퇴근 후 감성과 미학을 켜는 시간’(2사분면)과 ‘깊은 밤, 온전히 나를 채우는 시간’(1사분면), 즉 문화와 휴식 영역, 그리고 이를 떠받쳐 주는 ‘안심 인프라’다. 상권의 소비는 시장이 스스로 활성화하는 힘을 갖고 있지만, 조용한 휴식과 여가는 이를 누릴 수 있는 인프라와 어메니티가 먼저 제공돼야 비로소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서울시의 ‘우리동네 활력충전소’, ‘7979 서울 러닝크루’는 ‘퇴근 후 감성과 미학을 켜는 시간’을 지원하는 정책이다. 여기에 ‘반딧불이 버스’와 ‘AI 기반 인파감지 CCTV’, ‘거점별 응급의료 대응체계’, ‘서울보안관’, ‘청결기동대’ 사업이 결합해 밤을 안전하고 깨끗한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이런 인프라는 화려하지 않지만, 밤을 두려움의 시간에서 회복의 시간으로 바꾸는 조용한 전환점이 된다. 특히 여성과 고령자, 야간 근무자처럼 밤에 더 취약한 시민일수록 이런 기반의 체감도가 크다는 점도 정책 설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지점이다.
야간경제가 가져올 유연한 풍요
야간경제가 도시에 남기는 가장 뚜렷한 효과는 활력Urban Vitality이다. 도시경제학에서 소비는 단순한 지출의 합이 아니라 도시의 활력을 만들어내는 일차적 동력으로 이해된다. 에드워드 글레이저Edward Glaeser 등이 ‘소비도시Consumer City’ 개념으로 정리했듯, 오늘날 도시의 경쟁력은 무엇을 생산하는지만큼이나 얼마나 매력적인 소비·여가의 경험을 제공하는지에 달려 있다. 식당·카페·공연장·상점의 활동은 거리에 사람과 불빛을 불러들이고, 조셉 제이콥스Joseph Jacobs가 말한 ‘거리의 눈Eyes on the Street’을 늘려 안전과 매력을 스스로 재생산한다. 소비가 유동 인구와 체류를 낳고 이것이 상권 매출과 도시의 매력, 나아가 관광 유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출발점이기에, 야간 소비 활동이 도시 활력에 미치는 영향은 특히 크다.
야간경제의 참된 지향점은 소비 지출 확대가 아닌 ‘삶의 호흡이 스며든 유연한 풍요’다. 이를 위해 첫째, 특정 거점의 화려함보다 골목 조명, 벤치, 도로 청결 등 도시 전체를 묵묵히 관리하는 행정의 성실함이 선행해야 한다. 서울시가 DDP·남산·광화문·한강을 ‘4대 야간 랜드마크’로 육성하며 그 활력을 인접 상권과 생활권으로 확산시키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의미를 지닌다. 다만 그 화려함이 빛을 발하려면, 동네 골목의 가로등이 꺼지지 않는 것이 더 많은 시민의 밤을 바꾼다는 기본이 먼저 서야 한다. 둘째, 심야 무인 점포·펍·카페 등 밤에 문을 여는 민간의 자생력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필요도 있다. 이들 주변에 보안·조명 시설을 지원하고 야간 노동자 처우를 함께 살피는 것만으로도 이런 민간 생태계는 훨씬 오래, 건강하게 지속된다. 셋째, 도시가 성숙할수록‘Urban Maturity’ 밤에는 다채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교차하므로, 타인을 배려하고 다양성을 품어내는 공존 생태계를 가꿔야 한다. 혼자 걷는 사람과 무리 지어 노는 사람, 야간 근무를 마친 노동자와 늦게까지 노는 청년이 같은 거리를 불편 없이 나눠 쓸 수 있어야 진짜 성숙한 밤이다. 결국 야간경제 정책의 성패는 시민 개개인이 자신의 속도로 밤을 살아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도시는 기본을 가꾸고 성숙함을 더할 때 비로소 삶의 호흡이 스며든 유연한 풍요를 안겨줄 수 있다.
글 우영진 서울연구원 경제혁신연구실 연구위원·경제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