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문학창작촌을 활짝 열며
글자와 글자로 짜인 묵직한 대문을 활짝 열자 옹기종기 낮은 집이 마을을 이룬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새 식구를 맞이하는 연희문학창작촌의 새해 이야기.
연희문학창작촌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감탄하며 내뱉는 말이다. 고즈넉한 연희동, 그중에서도 울창한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곳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문학적 영감을 떠올리게 한다. 동시에 서울 도심에 위치해 다양한 문화 행사에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접근성은 작가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연희문학창작촌의 매력적인 요인이다.
연희문학창작촌은 서울시사편찬위원회 건물을 리모델링해 2009년 문을 연 문학 전문 창작공간으로, 지금까지 700명 넘는 작가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총 19개의 집필실은 작게는 6평에서 크게는 13평까지 다양한 크기로 마련돼 있으며, 집필과 생활이 모두 가능한 공간을 제공해 작가들이 24시간, 365일 창작에 몰두하도록 돕는다. 문학 작가들을 위해 이러한 쾌적하고 안전한 환경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연희문학창작촌 운영진의 주요 역할 중 하나다.
2025년 연희문학창작촌은 새롭게 함께할 입주작가 71명을 선정했다. 이들은 시, 소설, 어린이·청소년문학, 희곡 등 문학의 주요 장르뿐 아니라 비평과 번역 등 문학의 저변을 확장하는 분야에서 활약하는 이들로 구성된다. 국어 교과서에서 보던 익숙한 이름부터 신진 작가까지, 2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의 작가들이 이곳에 머무르며 창작 활동을 이어 나갈 예정이다. 특히 올해는 ‘그림책’ 분야를 독립적으로 분류해 공모를 진행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흔히 그림책은 어린이문학의 하위 범주로 여겨지지만, 그림책은 독립된 분야로 모든 연령의 독자가 향유할 수 있는 장르다. 이러한 시도는 그림책 작가들에게 큰 호응을 얻어, 올해 다수의 그림책 작가가 입주할 예정이다.
연희문학창작촌은 1968년에 지어진 건물로, 동시대적 기준에서 물리적 접근성이 부족한 점이 있다. 하지만 장애인을 포함해 다양한 사람들이 불편함 없이 창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운영과 서비스를 보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올해는 장애가 있는 작가들이 입주 공모에 지원하고, 최종 선정돼 함께 창작 여정을 이어가게 되었다.
연희문학창작촌이 문학 창작공간으로 자리잡으며 많은 찬사를 받고 있지만, 일부에게는 탁월한 작가들만 입주할 수 있는 곳이라는 선입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곳은 신진 작가에게도 문학적 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는 공간이다. 신진 작가를 위한 집필실을 마련하는 것은 등단과 같은 공인된 절차를 거친 작가들을 존중하되, 더 다양한 문학적 가능성을 포용하려는 연희문학창작촌의 노력의 일환이다.
최근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시적으로 그려낸 강렬한 산문”이라는 선정위원회의 평가와 함께, 한국 문학은 세계적 주목을 받게 됐다. 한강 작가의 주요 작품을 번역한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Deborah Smith가 2018년과 2019년 각각 두 달 동안 이곳에 입주한 일은 연희문학창작촌과 한국 문학의 국제적 연결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대인은 독서와 운동에 막연한 부채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는 건강한 몸과 사고를 향한 우리의 갈망을 반영한 것이다. 새해에는 용기를 내어 시집이나 소설책 한 권을 손에 들어보기를 권한다. 그 책 중에는 어쩌면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쓰인 작품도 있을지 모른다. 새해, 연희문학창작촌은 변함없이 작가들과 독자들에게 문학적 영감을 제공하며, 더 많은 이야기가 피어나는 공간으로 나아가기 위해 문을 활짝 열어둘 것이다.
글 이승주 연희문학창작촌 매니저
사진 Studio Ke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