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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호

로컬 리포트 작은 정성이 빚어내는 명품 문화도시

송파문화재단 황대성 대표이사

“지극히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작은 차이가 결국 명품을 만들거든요.”

황대성 송파문화재단 대표이사에게 경영 철학을 묻자, 그는 뜻밖에도 조선의 임금 정조 이야기를 꺼냈다. 영화 <역린>에서 정조가 『중용』 23장의 가르침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유독 인상 깊었단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이 쌓이고, 그 정성이 마침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는 것. 황 대표가 오랫동안 마음에 새겨온 신념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명품이라는 게 처음부터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바느질해야 좋은 작품이 되는 것처럼, 직원들도 각자 맡은 일을 정성껏 해낸다면 그게 결국 명품 문화도시를 만드는 힘이 됩니다.”

그의 이야기는 거창한 문화정책보다 평범한 일상의 태도에서 시작됐다.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고, 주어진 여건을 탓하기보다 방법을 찾으려는 사람. 한 시간 남짓 이어진 대화에서 드러난 황 대표의 속내다. 그가 살아온 발자취를 돌아보면 이 신념이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삶을 관통해온 태도임을 느꼈다.

지난 8월 송파문화재단 제4대 대표이사로 취임한 그는 1994년 제1회 한성백제문화제를 직접 기획한 인물이다. 젊은 공무원이 30여 년 세월을 돌아 이제 송파의 문화정책을 이끄는 자리에 선 것이다. 그러나 그가 걸어온 길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고위공직자의 반듯한 이력과는 조금 다르다. 학업을 중단한 청년, 책을 팔러 다니던 방문판매원, 공장에서 일하며 대학 진학을 준비한 노동자의 시간이 이력 앞쪽에 놓여 있다.

책을 팔던 청년, 63만 구민의 문화예술을 책임져

“제가 대학을 스물일곱에 들어갔어요. 고등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고요. 중학교 때는 공부를 꽤 잘했는데 집안 형편 때문에 계속 공부할 수가 없었죠.”

담담한 말투였지만 그가 들려준 젊은 시절은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를 여읜 뒤 생계를 위해 일해야 했고,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를 거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취업을 위해 여러 곳을 찾아다녔지만 면접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결국 선택한 일 가운데 하나는 집마다 찾아다니며 어린이 전집을 판매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초인종을 누르고 누가 나오면 두려워서 도망갔어요. 그러다가 조금씩 요령이 생기더라고요.”

웃으며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당시의 막막함과 청년 특유의 패기가 함께 묻어났다. 계몽사에서 책을 팔던 경험은 낯선 사람 앞에 서는 법을 가르쳐줬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공부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중학교 시절 1~2등을 다투던 친구가 명문 대학에 진학한 모습을 떠올리며 자신도 반드시 대학에 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구로공단의 한 사업장에서 일하며 진학 자금을 모았다. 당시 월급은 약 10만 원, 야근을 하면 13만 원까지 받았다. 생활비를 아끼고 돈을 모아 입시학원에 다녔다. 남들이 자신의 처지를 어떻게 바라보든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생각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들어간 곳이 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 서울시의 장학생 제도를 통해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받았고, 졸업 후에는 서울시 7급 공무원으로 공직에 입문했다. 대학에 늦게 들어갔지만 누구보다 절실하게 공부한 청년에게 새로운 길이 열린 순간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송파구를 선택한 이유다. 당시 팀장에게 가장 가기 어려운 자치구가 어디냐고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송파구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른 뒤 빠르게 성장하던 송파는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선호도가 높은 근무지였다.

“남들이 가장 가기 어렵다는 곳이 송파라고 하네요. 그래서 거기를 보내달라고 했어요. 당시에는 제가 패기가 넘쳤던 것 같습니다.(웃음)”

그는 자신의 선택을 지금도 유쾌하게 회상한다. 시청에 남았다면 다른 길이 열렸을지도 모르지만, 남들이 가기 어렵다는 곳에서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던 젊은 날의 선택이다. 그렇게 시작된 송파와의 인연은 30년 넘게 이어졌다. 그사이 도시는 몰라보게 달라졌고, 그 역시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문화행정의 여러 장면을 만들어냈다.

한성백제문화제로부터 송파와 함께한 30여 년

1994년, 황 대표는 송파구청의 젊은 공무원이었다. 송파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지만 도시의 오랜 역사적 정체성이 지금처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석촌동 고분군을 품은 송파가 한성백제의 도읍지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송파만이 가진 역사적 자산을 주민과 함께 나누는 축제를 만들고 싶었다.

“당시에는 송파가 한성백제 500년 도읍지라는 사실을 알리는 게 중요했어요. 구민이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역사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싶었던 거죠.”

그렇게 한성백제문화제가 탄생했다. 기획안을 작성하는 일부터 실제 행사를 실행하는 과정까지 직접 맡았다. 작은 출발이었지만 오늘날 송파를 대표하는 역사문화축제로 성장했다. 2025년 제25회를 맞은 한성백제문화제에는 약 51만 명이 찾았다.

그가 남긴 흔적은 축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석촌호수에 자리한 전통예술 공연장 서울놀이마당의 운영을 송파구가 맡도록 하는 데 관여했고, 이후 송파어린이도서관과 글마루도서관 등을 조성하는 데도 참여했다. 특히 작은도서관을 설명하면서 그는 집에서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걸어가도 책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누구나 일상 가까이에서 문화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의 경험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2019년 송파구청에서 정년퇴직한 뒤에도 그의 도전은 계속됐다. 민간 기업을 거쳐 송파구시설관리공단 이사장으로 3년간 조직을 이끌었다. 문화행정과 교육·홍보를 경험한 공무원에서 기관 운영을 책임지는 경영자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그가 조직을 이끌면서 강조해온 또 하나의 좌우명은 ‘하려고 하면 방법이 보이고, 안 하려고 하면 핑계가 보인다’는 말이다.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시작조차 하지 않는 태도를 경계한다. 먼저 방법을 찾고 실행해본 뒤,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노력해보고 최선을 다해야죠. 하기도 전에 힘들다고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이 같은 태도는 송파문화재단의 운영에도 이어진다. 그가 내세운 경영 방침은 ‘목표는 크게, 실행은 빠르게, 결과는 책임 있게’다. 다만 새로운 사업을 무조건 늘리는 것보다는 구민의 삶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는지 살피겠단다. 직원들의 전문성과 자부심을 높이는 일 역시 중요하게 생각한다.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정성을 다할 때 조직도 성장하고 시민에게 돌아가는 문화 서비스의 질도 높아진다는 믿음이다.

한성백제에서 K-컬처까지

황대성 대표가 바라보는 송파의 경쟁력은 역사와 현재가 한 도시에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한성백제의 유적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유산, 올림픽공원과 석촌호수, 롯데월드타워가 한 공간에 어우러져 있다. 여기에 K-팝과 잠실 일대 MICE 산업까지 더해지면 도시가 가진 문화적 가능성은 더 커진다.

“1994년에 한성백제문화제를 시작할 때는 송파의 역사와 정체성을 알리는 게 중요했어요. 이제는 그 역사 위에 동시대의 문화와 기술을 더해야 합니다. 송파만의 K-컬처 브랜드를 만들어야죠.”

그는 개별 시설이나 관광 명소를 홍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와 공연예술, 관광과 디지털 기술을 하나의 문화적 경험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잠시 방문하고 떠나는 도시가 아니라 머물면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는 도시로 송파를 발전시키겠다는 것. 이를 위해 문화예술 기관과 지역 기업, 관광업계를 비롯한 민간과의 협력도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나 화려한 문화관광도시를 만드는 일만이 재단의 역할은 아니다. 그는 지역예술인과 청년예술가가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공연장과 문화 공간을 활용해 발표 기회를 넓히고, 공공 재원과 기업 후원, 메세나를 연결해 창작지원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단순히 지원금을 전달하는 기관이 아니라 예술가와 관객, 공공과 민간을 연결하는 문화 플랫폼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세대에 대한 관심도 크다. 오랫동안 교육행정을 경험한 그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성장할 기회를 만드는 것이 지역문화의 장기적인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공연장과 도서관,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활용해 아이들이 다양한 예술을 접하고, 관심과 재능을 지속적인 활동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돕겠다는 계획이다.

그렇다면 임기를 마쳤을 때 어떤 평가를 받고 싶을까. 황대성 대표는 화려한 업적이나 특정 사업의 성공을 먼저 이야기하지 않았다. 구민이 일상에서 문화를 더 가까이 느끼고, 예술인이 새로운 창작 기회를 얻으며, 직원들이 자신의 일터에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송파문화재단이 구민의 일상을 실제로 바꿨다, 송파의 문화적 가능성을 한 단계 키운 기관이 됐다. 그 이야기면 충분합니다.”

책을 팔던 청년에서 송파의 문화행정을 이끄는 대표이사에 이르기까지, 황대성의 인생에는 수많은 굴곡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매번 할 수 없는 이유보다 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30여 년 전 자신이 기획한 축제가 도시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성장한 송파에서, 그는 다시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지극히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한다는 그의 오래된 신념이 이번에는 어떤 문화적 결실로 이어질지 기대하게 된다.

글 이규승 서울문화재단 시민문화협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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