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도시 읽기 달리는 크루와 걷는 시민이 함께하는 법
런던 북쪽 퀸스파크라는 작은 지하철역을 나서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출구를 나오면 바로 좁은 인도로 이어지는 작은 역이었는데, 마침 스무 명쯤 되는 사람들이 그 앞을 한꺼번에 뛰어가고 있었다. 한국에서 흔히 ‘러닝 크루’라고 부르는 러닝 클럽이었다.
계단을 올라오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출구 앞에 멈춰 서서 그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길어야 몇 초였을 것이다. 러너들은 금세 사라졌고, 사람들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별일 아닌 장면이었지만 서울이라면 누군가 휴대전화를 꺼내 영상을 찍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한국에서는 러닝 크루의 민폐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여러 명이 횡대로 뛰면서 보행로를 막거나, 한강 산책로에서 보행자에게 비키라고 하거나, 좁은 트랙을 단체로 차지한다는 불만이다. 실제로 2024년 서울 반포종합운동장에서는 60명 넘는 러닝 크루 때문에 혼자 걷거나 뛰기 어렵다는 민원이 이어지자 서초구가 트랙에서 5명 이상이 함께 달리는 것을 제한하기도 했다.
이런 갈등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2024년 토론토에서는 대형 러닝 크루의 보도 이용 인원을 제한해달라는 청원까지 등장했다. 30명가량의 러너가 인도를 달려오다 산책 중인 작은 개를 걷어찼다는 얘기가 나왔고, 일부 시민은 큰 그룹이 길을 점령하거나 길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비키라고 소리친다고 불평했다. 논란이 커지자 보행자를 만나면 대열을 좁히고 수신호를 사용한다는 자체적인 규칙을 만들었다.
뉴욕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도시 전문 매체 ‘커브드Curbed’에는 제목부터 “러닝 클럽 혐오자The Run-Club Haters”인 기사가 실렸다. 브루클린과 센트럴파크에서 대규모 러닝 크루가 길을 차지하면서 보행자는 물론 혼자 달리는 러너들까지 불편을 호소한다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러너들도 러닝 크루를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도시의 길에는 이미 오랫동안 형성된 흐름이 있다. 보행자와 자전거·자동차가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고, 그에 맞는 나름의 규칙도 존재한다. 여기에 스무 명, 서른 명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집단이 갑자기 들어오면 기존의 보행자, 자전거, 자동차 교통과 마찰이 생기기 마련이다. 특히 서울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러닝 크루 문화가 잘못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운동 애플리케이션 ‘스트라바Strava’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러닝 클럽 참여는 59% 증가했다. 조사 응답자의 58%는 운동 모임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귄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젊은 세대일수록 술집보다 운동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경향도 강했다. ‘스트라바’가 그해 보고서에 붙인 표현은 아예 “러닝 클럽은 새로운 나이트클럽Run club is the new nightclub”이었다. 건강한 도시 문화다.
런던의 여성 러닝 그룹인 ‘나이트 클럽The Night Club’은 혼자 밤길을 달리면서 위험과 불쾌감을 느낀 여성이 만들었다. 런던에서 일찍 해가 지는 겨울이 되면 퇴근 후 혼자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사라진다는 것이 직접적인 계기였다. 처음에는 아홉 명으로 시작했지만 몇 달 만에 많은 여성들이 참여했고, 지금은 글로벌 투어까지 할 만큼 큰 규모로 성장했다.
사람들은 저녁에 모여 술을 마시는 대신 몇 킬로미터를 함께 달린다. 운동을 하면서 사람을 만나고, 혼자 뛰기 불안한 사람에게는 안전도 제공한다. 대도시에서 새로 등장한 사교 문화 가운데 이만큼 건강한 형태도 드물다. 문제는 새로운 행동이 등장하는 속도를 도시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데 있다.
지금은 자전거 천국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암스테르담도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1960년대 이후 자동차 수가 급증하면서 좁은 도로를 둘러싸고 자동차와 자전거의 충돌이 심해졌다. 1970년 한 해에만 암스테르담에서 교통사고로 114명이 사망했다. 시민의 항의가 이어졌고, 시는 자동차 통행을 줄이고 일방통행과 과속방지턱을 도입하고 자전거도로를 늘려가며 해결책을 모색했다.
1982년 암스테르담시는 암스텔강 다리에서 자동차 차선 두 개를 없애 자전거 공간으로 바꿨다. 예상대로 처음에는 심각한 교통체증이 발생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운전자들이 새로 생긴 고속도로 쪽으로 이동 경로를 바꾸면서 교통 흐름은 다시 안정됐다. 암스테르담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처음부터 자전거를 잘 타고 서로 양보해 만들어진 도시가 아니다. 새로운 교통수단이 기존의 질서와 충돌했고, 시민과 정부가 그때마다 규칙과 공간을 다시 만들었다. 이 모든 과정에는 시간이 걸렸다.
서울에서도 이미 비슷한 과정이 시작되고 있다. 서울시는 직접 러닝 크루를 운영하면서 ‘런티켓’이라는 러닝 에티켓을 함께 가르친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작은 그룹으로 한 줄로 달리고, 속도를 낮추고, 소음을 줄이고, 수신호로 주변 상황을 알리는 방식이다. 러닝 크루를 없애는 대신 러닝 크루가 도시 안에서 움직이는 규칙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런던의 작은 지하철역 앞에서 러닝 크루가 지나가는 몇 초 동안 사람들은 잠시 길을 양보했다. 그 몇 초의 불편 때문에 사람들이 술집 대신 거리에서 만나고, 혼자 뛰기 불안한 시간에 함께 운동하고, 평소 운동하지 않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달리기 시작한 현상 자체를 문제라고 하기는 어렵다.
새로운 도시문화에는 거의 언제나 마찰이 따른다. 기존의 길과 규칙은 그 행동을 예상하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행동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기존 이용자들과 공존할 수 있도록 규칙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지금 서울에서 벌어지는 러닝 크루의 매너 논쟁은 그런 과정의 첫 단계일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행동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도시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도시다.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났다면, 충돌을 최소화하면서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
글 박상현 오터레터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