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는 지금 스크린 스타는 왜 런던 무대로 향할까
올가을 런던 극장가는 세계적인 배우들의 이름으로 가득하다. 로열 코트 시어터Royal Court Theatre에는 틸다 스윈턴Tilda Swinton이 39년 만에 <맨 투 맨Man to Man>으로 돌아왔고, 내셔널 시어터National Theatre에는 케이트 블란쳇Cate Blanchett과 독일 배우 니나 호스Nina Hoss가 함께 무대에 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로 유명해진 게이튼 마타라조Gaten Matarazzo는 뮤지컬 <렌트> 에 출연하고 있다.
런던이 세계적인 배우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영어권 공연시장의 중심지 중 하나라는 점이다. 영국 배우뿐 아니라 미국과 호주·캐나다 등지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이 별도의 언어 장벽 없이 런던 무대에 설 수 있다. 호주 출신 케이트 블란쳇과 캐나다 출신 샌드라 오Sandra Oh처럼, 배우들은 스크린과 무대,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를 오가며 활동한다. 런던은 영어권 배우들이 만나는 국제적인 작업 공간이기도 하다.
공연 제작사 입장에서도 런던의 매력은 커지고 있다. 브로드웨이는 세계에서 가장 큰 상업 공연시장 가운데 하나지만, 높은 제작비와 운영비가 새로운 작품을 올리는 데 부담으로 작용한다. 웨스트엔드 역시 제작비 상승 추세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브로드웨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운영비와 영국의 공연 제작 세액공제 제도가 제작사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한다. 내셔널 시어터나 로열 코트 시어터처럼 공적 지원을 받는 극장에서는 상업 극장보다 적은 초기 비용으로 작품을 개발할 수 있다. 제작자들이 뉴욕에서 곧바로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는 대신 작품을 개발하고 시장성을 확인하기 위해 런던을 주목하는 이유다.
수많은 공연이 경쟁하는 시장에서 스타 캐스팅은 강력한 흥행 전략이다. 유명 배우의 이름은 작품을 잘 모르는 관객에게도 공연을 선택할 이유를 제공한다. 스타의 출연 소식은 공연 전문 매체뿐 아니라 일반 언론과 소셜미디어로 확산하고, 영화와 드라마의 팬들이 새로운 공연 관객으로 유입된다.
2024년 런던에서 공연된 제이미 로이드Jamie Lloyd 연출 <로미오와 줄리엣>은 스타 캐스팅의 위력을 실감하게 한 작품이었다. 할리우드 스타 톰 홀랜드Tom Holland가 로미오를 연기한다는 소식에 12주간의 공연이 순식간에 매진됐다. 한 자리쯤은 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개막을 앞두고 다시 풀린 좌석은 세 배 가까이 비싸진 상태. 무대에서 톰 홀랜드를 볼 기회가 또 있을까 싶어 생애 가장 비싼 공연 티켓을 구매했다. 좌석은 앞에서 여섯 번째 줄 정중앙이었다. 톰 홀랜드가 무대에 등장하자 객석이 술렁였다. 앞자리에 앉은 두 관객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공연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객석을 빽빽이 채운 관객들을 보며 유명 배우의 강력한 힘을 확인했다.
스타 캐스팅의 위력을 실감하게 한 톰 홀랜드 주연 <로미오와 줄리엣> ©Marc Brenner
그렇다면 이처럼 많은 관객을 움직이는 스타들은 왜 다시 무대에 서는 것일까. 톰 홀랜드는 2008년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로 웨스트엔드에 데뷔했고,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16년 만에 무대에 돌아왔다. <렌트>에 출연 중인 게이튼 마타라조 역시 아홉 살에 브로드웨이 무대에 데뷔한 배우다. 이들에게 무대 출연은 새로운 분야로의 진출이라기보다 자신의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틸다 스윈턴의 <맨 투 맨>은 무대 복귀가 갖는 또 다른 의미를 보여준다. 그는 1987년 스물일곱 살에 이 작품을 연기했고, 39년이 지난 올해 같은 작품과 창작진을 다시 만났다. 그 사이 세계적인 영화배우로 성장한 틸다 스윈턴이 젊은 시절의 배역을 다시 연기한다는 사실 자체가 작품의 의미를 확장한다. 무대는 영화처럼 장면을 나눠 촬영하거나 편집할 수 없다. 배우는 매 공연 관객 앞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인물을 살아내야 한다. 오랜 경력을 쌓은 배우에게도 새로운 도전이 되는 이유다.
연극 <맨 투 맨>으로 무대에 복귀한 틸다 스윈튼 ©Ruediger Glatz
물론 스타의 무대 복귀를 마냥 낭만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유명 배우의 출연료와 한정된 일정은 제작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스타 캐스팅을 중심으로 설정된 높은 티켓 가격은 오히려 관객의 접근성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공연계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것은, 관객 한 사람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점이다. 공연을 자주 보는 사람조차 바쁘고 피곤한 날에는 극장까지 가는 일이 쉽지 않다. 한 번도 공연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그 즐거움을 설명하고 실제로 객석에 앉게 만드는 일은 더욱 어렵다. 그러나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한다면 낯선 작품도 친숙하게 느껴질 수 있다.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본 공연이 평생의 문화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듯이, 스타를 보기 위해 찾은 극장도 새로운 관객에게 공연예술을 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스타 캐스팅이 모두를 단골 관객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스크린에서 얻은 배우의 명성이 새로운 관객을 극장으로 데려오고, 극장은 배우에게 다르게 연기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두 매체는 서로의 성장을 뒷받침한다. 스타의 이름이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인다면, 그 관객을 다시 극장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은 결국 무대에서 경험한 공연의 힘일 것이다.
글 정재은 공연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