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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SEOUL

5월호

복지국가와 예술 유령의
시간을
수놓다

어두운 공중에 샹들리에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유리 알갱이처럼 보이는 결정들이 아래로 흘러내리며 빛을 흩뿌린다. 빛이 흔들리자 형상이 뒤따라 아른거리고, 표면은 그 떨림을 붙잡듯 미세하게 반짝인다. 자세히 보면, 이 샹들리에의 윤곽은 희미하다. 어느새 빛은 얼룩으로 변한다. 금빛이 붉게, 붉은빛은 다시 보랏빛으로 스며들며 형상이 서서히 번진다. 시선은 더 이상 사물의 외곽을 따라가지 못하고, 표면에 맺힌 떨림을 더듬듯 머문다.

함경아의 자수 작품 <당신이 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다섯 개의 도시를 위한 샹들리에> 연작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형상은 지워지고, 비단실의 광택과 바늘 자국이 남긴 점상의 흔적만이 남아 있다. 작품 제원에 기입된 노동 시간은 화면 위의 실타래와 호응한다. 샹들리에는 보이지 않는 시간의 더께를 가시화하고, 시간이 매달려 있는 구조가 된다. 제목이 암시하듯, 우리가 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유령의 현전이다.

함경아는 대문 밑으로 날아든 북한 삐라를 계기로 2008년부터 자신만의 ‘예술적 삐라’를 북으로 보내기 위해 자수 작업을 선보였다. 삐라는 적대적인 체제의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공중에 흩뿌려진다. 이 전단을 누가 만들었는지, 어떻게 이동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체제를 뒤흔들고자 하는 목적과 내용만이 중요하다. 함경아의 작업은 이 일방적 전달 구조를 뒤집는다. 메시지의 내용보다, 그 메시지가 어떤 경로를 거쳐 이동했는지를 더 중요하게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메시지를 보내는 대신, 메시지가 이동한 경로 전체를 화면 안으로 끌어들인다. 도안은 디지털 파일로 출력돼 중국과 러시아를 거쳐 북한의 익명 자수 장인들에게 전달된다. 이들은 수개월에 걸쳐 한 땀씩 바느질하고, 완성된 자수는 다시 중개인의 손을 거쳐 작가에게 돌아온다.

도안은 국경과 검열을 통과해야 한다. 무사히 도안이 전달되더라도 자수 장인이 어떻게 작업할지 통제할 수 없다. 무수한 블랙박스를 지나면서 도안과 실제 자수의 결과물은 전혀 다른 색감과 형상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간극은 오히려 작업 과정을 가시화한다.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 추상화된 형상은 모순을 폭로한다.

이 과정에서 이름 없이 이동하고 기록 없이 소모된 유령들이 화면 위로 돌아온다. 삐라가 내용을 남기고 과정을 지운다면, 함경아의 자수는 형상을 희미하게 해 제작과 전달의 과정을 드러낸다. 자수는 유령을 재현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도록 배치된 시간이 오히려 가장 또렷한 흔적으로 남는다. 자수刺繡와 자수自首가 포개진다. 지워진 존재가 형상의 표면을 통해 거꾸로 모습을 드러낸다. 화면 위에 꿰어진 실이 만들어내는 밀도는 보이지 않는 시간을 자수한다.

이 샹들리에와 자수를 볼 때,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바뀐다. 사회 안전망과 제도는 이미 존재하는 불확실성을 은폐하고 지연한다. 우리는 제도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처럼 느끼지만, 실제로는 많은 불안정이 보이지 않게 가려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회 제도 안에서 노동은 ‘고용’, ‘생산성’, ‘참여율’ 같은 지표로 쉽게 환원된다. 그리고 삶을 실제로 떠받치는 돌봄과 가사, 헌신의 시간은 그 바깥에 남겨진다. 관건은 사회적 보호를 확대하는 데 있지 않다. 어떤 시간과 노동을 우리 사회가 호명하고 인정할 것인지에 있다. 즉, 무엇을 ‘노동’이라고 부르고 가치 있다고 여길 것인지의 문제다. 가족과 일상, 사랑과 의무로 여겨져 이름 붙지 못한 시간들. 낸시 폴브레가 말하듯, 사회를 지탱하는 힘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환원되지 않는 ‘보이지 않는 가슴The Invisible Heart’에 놓여 있다.

함경아의 샹들리에는 유령이 남기고 간 발자국처럼 매달려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샹들리에의 형상만을 보지 않는다. 그 형상을 가능하게 한 시간과 노동의 흔적을 감각한다. 이 흔적은 우리가 복지국가의 성벽 안에서 안락함을 누리고 있을 때, 그 안으로 흩뿌려진 삐라처럼 작동한다. 설득하거나 설명하지 않으면서 사회 제도가 의지해온 조건을 드러낸다. 보이지 않는 조건들이 시야에 들어올 때, 제도는 멈춰 선 구조가 아니라 끊임없이 다시 짜여야 하는 과정으로 변모한다. 오래도록 비가시화된 노동과 시간이 비로소 호명되고, 목소리를 얻는다.

공중에 매달린 샹들리에처럼, 그 흔적들은 어디에도 완전히 닿지 못한 채 미세하게 흔들린다. 빛나는 장식처럼 보이던 세계의 형상 또한, 보이지 않는 시간 위에 매달린 채 조용히 흔들린다.

→ 62쪽 함경아, <당신이 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다섯 개의 도시를 위한 샹들리에 BR 01-04>, 2016-17

최정상 보건복지부 행정사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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