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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SEOUL

10월호

너무 시끄러운 고독

“좀 다르게 살고 싶어.”

불쑥 그런 말이 나온다. “건강도 좀 챙기고, 먹는 것도 바꿔야겠어.” 수화기 너머에서는 그의 말을 진지하게 듣는 분위기가 아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좀 하다가 바쁘다고 끊자고 하는 아내에게 배우 밥(빌 머리 분)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오가는 대화는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선 안 된다. 오래된 관계가 유지되는 모범 답안이 그렇다. ‘다르게’라는 말은 모호하고 예측되지 않는 것. ‘다르게’를 원할 순 있지만, 원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밥은 가족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다르게’를 떠올린 참이다. 그는 ‘다르게’를 다시 주머니 안에 깊이 밀어 넣고 술을 마시러 가서 옆자리에 앉은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다.

낯선 도시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게 된 두 사람의 이야기는 제법 건강한 고독과 아무래도 괴로운 외로움을 오가지만 아무래도 후자 쪽에 무게추가 기운다. 소피아 코폴라Sofia Coppola 감독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원제는 ‘Lost in Translation’. ‘잘못된 제목’으로 퍽 자주 언급되는 이 작품의 영어 제목은 ‘통역하면서 사라지는(사라진) 것들’을 뜻하기도, 그래서 ‘통역의 불가능성’을 뜻하기도 한다. 미국인인 두 주인공이 말이 통하지 않는 일본 도쿄에서 우연히 만난 짧은 시간을 담아낸 이야기이니만큼, ‘통역’이라는 단어는 관계의 불통을 설명하기에 제법 그럴듯해 보인다. 다른 언어를 쓰는 곳에 갔더니 말이 안 통하고 답답하더라는 이야기. 하지만 이 영화에서 결정적인 불통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 심지어 가장 가깝다고 여겨지는 가족 사이에서 생겨난다. 예를 들어, “좀 다르게 살고 싶어” 같은 말. ‘다르게’를 원한다는 것은 지금 가진 것을 바꾸고 싶다는 말이고, 지금 가까운 사람에게 그 표현은 공격적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밥은 한때 잘나가던 배우다. 그의 주요 수입원에는 일본에서의 맥주 광고가 포함된다. 광고 촬영을 위해 도쿄 출장을 온 밥은 껑충하게 솟은 키처럼 도시를 오가는 빼곡한 사람들 사이에서 고립된 듯 보인다. 도쿄에서 그만 혼자인 건 아니다. 샬럿(스칼릿 조핸슨 분)은 사진작가인 남편을 따라 도쿄에 방문한 참이다. 남편은 늘 바쁘게 돌아다니지만 샬럿은 뻔한 관광지를 좀 다니고 나니 호텔에 틀어박혀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심지어 남편은 여자 배우와도 미묘한 사이처럼 보인다. 그런 샬럿과 밥은 한 호텔에서 지내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로 대화를 나눈 두 사람은 종종 시간을 같이 보내기 시작한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가 로맨스에 대한 영화인가? 그렇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내게 이 영화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이라는 형태를 한 외로움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당신에게 빠져들었다. 그때의 나였기 때문에 나는 당신에게 빠져들었다. 그들이 마주치는 장소가 낯선 도시의 호텔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운명적이다.

계절이 바뀌어서, 새로워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른 공기 속에서 다른 것들을 눈에 담을 수 있는 시도가 여행이기 때문에 가능한 자주 여행하려고 노력하는 나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풍경 속에서 호텔이라는 공간이 가진 광택에 끌렸다. 도쿄에서는 모든 것이 반짝거린다. 밤거리의 네온 불빛은 어지럽게 뒤엉킨 불꽃놀이 같다. (영화에서처럼 고급) 호텔에서는 모든 물건이 손자국 없는 광택을 지닌다.

지나다니는 자동차들은 종종 거울처럼 도심의 밤 풍경을 반사해낸다. 대도시에서 빛은, 때로 절제되고 때로 과장되며 우리의 시선을 분산시킨다. 그렇게 빛나는 것들은 우리를 끌어당기고 또 소외시킨다. 매일 반복되던 풍경 속에서는 어렵지 않던 ‘어제처럼’ 살아가는 일이 갑자기 덜컥거리며 멈춰 서는 것이다. 사소한 몸짓들마저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 질문에 공명할 수 있는 누군가가 없다는 것이 유달리 쓸쓸하게 느껴진다.

그곳에서 유머 감각이 비슷한, 같은 나라에서 온 두 사람이 만난다. 밥과 샬럿은 그렇게 가까워진다. 성적 긴장이 ‘없지는 않다’는 수준으로 찰박거리는 이 둘의 만남은 도쿄 탐색으로 이어지지만, 외부 세계를 탐색하는 것만큼이나 내면의 무언가를 꺼내놓는 일이 중요해 보인다. 그들이 인생을 건 중요한 대화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필요할 때 거기 있어주는 사람과 아무 말이나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쪽에 가깝다. 마치 외로움을 의인화한 것 같은 스칼릿 조핸슨과 빌 머리의 표정은 자주 백지처럼 느껴진다. 기분을 읽기가 쉽지 않아서다. 활짝 웃는 얼굴일 때 오히려 가면을 쓴 것 같다. 애매한 친구처럼 어울리던 둘에게도 관계의 끝은 온다. 드디어 밥이 귀국해야 하는 날이 찾아왔으니까.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그녀Her>를 만든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 감독과 한때 부부였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가 개봉했을 때 이 영화가 둘의 부부관계에 대한 이야기라는 뒷말이 제법 돌았다. 샬럿의 남편과 얽히는 여자 배우가 실제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실명이 오갔다. 그런데 소피아 코폴라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소문에 의하면 ‘자캐’일) 샬럿의 입장에서 진행시키지 않았다.

샬럿과 밥은 거의 동등한 분량이며, 오히려 밥의 심리야말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마지막 장면에서 대사를 하는 사람도 밥이다. 마지막, 도쿄를 떠나던 밥은 차창 밖으로 보이는 샬럿을 보고 급하게 차를 세워달라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마지막으로 마주 서고, 포옹한다. 샬럿을 꼭 끌어안은 밥은 얼굴을 샬럿의 머리에 파묻다시피 하고 무언가를 속삭인다. 우리에게 그 말은 영원히 들리지 않는다. 엉뚱한 상상이 들었다. 어쩌면 샬럿보다 세상 경험이 많은 밥은 영화를 만드는 시점의 소피아 코폴라 자신이 아닐까. 어떤 외로움은 삶에서 떨쳐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몇 년 뒤 스파이크 존즈는 스칼릿 조핸슨을 목소리 출연시킨 <그녀>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이혼한 남자가 인공지능 운영체계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두 영화가 ‘도심, 외로움, 대화’를 둘러싼 즐거움과 이별을 탐색하는 방식은 나란하지만 만나지 않는 평행선처럼 보인다. 두 영화 모두 이별을 다루지만 내겐 언제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이별 쪽이 더 선선하게 다가온다. 어떤 진심은 영원을 기약하지 않아서 깊어진다. 거기에 굳이 사랑이라는 말을 보태지 않으며.

*이 글의 제목은 보후밀 흐라발Bohumil Hrabal의 소설 제목 ‘너무 시끄러운 고독’에서 가져왔다.

이다혜 작가·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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