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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SEOUL

10월호

새소리와 영원 사이에서,
메시앙의 아름다운 불가능성

시미언 피스 체니Simeon Pease Cheney의 아름다운 새소리 청취록, 『야생 숲의 노트』 서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지난여름 어느 날 아침, 되새chewink가 내가 오래된 회의 음악이라고 이름 지은 아름다운 곡조로 노래하는 것을 들었다. 다른 어떤 되새들도 그 곡조로 노래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지만, 그때 노래하던 그 되새는 같은 새라도 얼마나 다양하게 노래할 수 있는지 놀라운 증명을 해 주었다. 박새는 몇 개의 긴 음으로 신중하게 노래한다. 천국이 이보다 더 순수할까.”

음악가들이 세계의 소리를 유심히 듣고 경탄하는 것은 꽤 낯설지 않은 일이지만, 어떤 음악가들은 그 지점을 좀 더 깊게 파고든다. 그런 이들은 음악이 인간의 창조물이 아니라, 세계가 들려준 것을 인간이 듣고 포착한 것이 음악이라고 믿는다. 그런 믿음 속에서 살아온 시미언 피스 체니가 마치 인류학자가 민족지를 남기듯 새소리를 꾸준히 채보하고 그 채보 상황을 자세히 기술했다면, 그 이후 세대는 그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간 작업을 선보인다. 바로 새소리로 이루어진 ‘음악’을 만드는 것이다.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은 프랑스 아비뇽 출신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 그리고 조류 연구자였다. 정교한 리듬 기법과 조성 이전의 선법을 폭넓게 사용했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만큼 종교적 심상으로 가득한 작품을 다수 남겼다. 세계를 누군가의 창조물로 바라보고, 그 안에서도 시간의 흐름을 세심하게 운용하는 데 깊은 관심이 있던 메시앙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대상 중 하나는 ‘새소리’였다. 소리 그 자체가 음향적으로 아름답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메시앙의 세계관에서 ‘성령’이 새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는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메시앙 또한 시미언 피스 체니처럼 빈 오선보를 들고 자연으로 나가 새소리를 채보했고, 그런 경험들은 그의 음악 곳곳에 깊게 반영되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피아노곡 ‘새의 카탈로그’다.

‘새의 카탈로그’는 새들에 관한 ‘음향적 생태보고서’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새소리를 집요하게 관찰한 작품이다. 숲종다리·알프스 노랑부리 까마귀·바다직박구리 등 수십 종의 새소리를 포착한 이 음악은 ‘새소리’라 뭉뚱그려져 있던 영역 안에 얼마나 많은 존재가 있고, 그들 각자가 얼마나 고유한 소리를 지니고 있었는지를 낱낱이 들려준다. 실제로 들려오는 새소리를 자세히 채보해 만든 이 곡들에서는 종마다 다른 음정 체계와 비대칭적인 리듬, 미세한 장식음까지 각 새가 지닌 특성이 선연히 드러나지만, 이 작품이 새소리를 그대로 옮겨오는 데 그치는 것은 아니다.

ⓒYvonne Loriod-Messiaen

예컨대 ‘황금 꾀꼬리Le Loriot’에서는 그 새소리가 피아노 음향으로 변환되어 울려 퍼지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메시앙은 “유동적이고, 금빛이며, 이국 왕자의 웃음과 같고, 아프리카나 아시아, 혹은 무지갯빛으로 가득하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미소들이 떠오르는 어떤 알려지지 않은 세계”를 떠올린다. ‘새의 카탈로그’는 그렇게 새소리로부터 메시앙의 심상, 나아가 때로는 새소리가 일순간 연상케 하는 그 서식지의 풍경까지를 모두 한자리에 불러와 일렁이게 한다.

메시앙의 음악에서 새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새의 카탈로그’만이 아니다. 메시앙이 포로수용소에서 작곡하고 초연한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는 제목 그대로 시간이 종말을 맞이하는 과정을 다루는 작품이다. 시간의 종말은 인간에게 주어진 세계, 메시앙 자신의 삶이 끝나는 시점을 이야기하는 것인 동시에 그가 믿은 신의 세계는 영원을 약속하는 곳이다. 그런 맥락에서 시간의 종말로 향하는 과정에는 무엇인가가 멈추는 것이 아니라 영원에 도달하려는 것만 같은 긴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의 종말이자 영원으로 향하는 여정의 한순간에는 새소리가 가득한 풍경이 펼쳐진다. ‘새들의 심연’이라 이름 붙인 악장에서 메시앙은 이렇게 쓴다. “심연, 그것은 시간이다. 그 슬픔과 권태를 지닌 시간. 새들은 시간의 정반대다. 그것은 빛과 별, 무지개, 그리고 환희에 찬 보칼리제(지저귐)를 향한 우리의 욕망이다.” 메시앙에게 새는 음향적인 탐구 대상이자 창조자의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간에 반하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다분히 종교적이고 신비로우며 수수께끼 같은 메시앙의 이 생각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새소리가 담긴 작품들에서 메시앙이 품고 있던 마음을 마주할 수 있다. 하나는 새소리를 채보한 것처럼 세계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려는 의지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 바깥의 세계를 꿈꾸는 열망이다. 유한한 인간 조건 안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음악이 근본적으로 이런 바람을 완전히 성취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메시앙의 음악은 때론 자연 그 자체가 현현하는 것처럼 들리고, 때로는 시간을 초월한 영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연의 복잡성은 음악에 온전히 담길 수 없고, 우리는 결코 영원을 소유하지 못하지만, 그의 작품 속에서 자연과 영원이 잠시 출현하는 순간을 경험한다. 유한한 몸과 음악으로, 자연과 영원을 더듬어보려는 어떤 음악가의 몸짓. 메시앙의 음악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실현 불가능한 것을 향해 손을 뻗는 몸짓이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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