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공포로 다가온 ‘자연의 섭리’
스크린 너머의 세상
유행을 따르는 초상화가는 예의를 차린 아첨꾼과 같다고 마크 로스코는 썼다. 그렇다면 인간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전시하는 현대의 사진이나 영상은 어떨까. 보정을 완벽하게 마친 사진이나 보정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이상적인’ 얼굴과 몸을 드러내는, 모든 세부가 매끈한 영상들. 대중을 상대하는 이미지의 태반을 차지하는 흠 없는 이미지들. 마크 로스코는 광고 예술가들의 예술은 광고주의 내면을 파악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고 이어 말했는데, 개인이 운영하는 소셜미디어의 이미지들 역시 광고 이미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 피부를 주름 없이 유지하는 법, 울퉁불퉁한 허벅지를 매끈하게 하는 법, 여기를 깎고 저기를 다듬고 이상적인 외모로 사진을 보정하는 법. 언제나 즐거운 일만이 벌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인스타그램 이용자는 구독자가 많아지면 실제로 광고 계정(‘팔이피플’이라 불리는, 자기 계정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이 된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실제 나이로 보여서는 안 된다는 강박은 특히 여성들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곤 한다. 남에게 보이는 일을 업으로 삼은 여성이라면 그 강박은 더할 수밖에 없다.
인기와 명성을 누렸던 할리우드 배우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 분)은 현재 에어로빅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마치며 “자신을 아껴주세요”라는 멘트를 하는 엘리자베스가 그 자신의 삶을 아끼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어느새 다가온 50번째 생일은 엘리자베스에게 기대보다는 불안을 안긴다. 나이 든 엘리자베스에 적대적인 프로듀서의 말을 우연히 엿듣게 된 후, 그나마 기대고 있던 에어로빅 강사로서의 커리어도 끝나려는 기미를 보인다. 프로그램 녹화를 마치고 귀가하던 길,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사진이 붙어 있던 도로 광고판이 철거되는 모습을 보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자동차가 많이 부서졌지만 정작 엘리자베스는 크게 다치지 않았고,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그녀는 수상한 쪽지를 발견한다. 도통 신뢰할 수 없는 약물 암시장을 통해 ‘더 나은 나’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접한 엘리자베스는 약물로 의식을 잃었다 깨어난다. 엘리자베스의 (마치 원피스의 등 부분에 달린 지퍼를 내린 것처럼 깨끗이 절개된) 등을 가르고 몸속에서 빠져나온 것은 젊고 아름다운 분신 수(마거릿 퀄리 분)다. 여기에는 규칙이 있다. “각자 7일씩 균형을 유지한다. 명심할 한 가지, 당신은 하나다.”
엘리자베스와 수는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각자가 7일의 시간만을 가질 수 있다. 둘은 하나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떻게? 코랄리 파르자Coralie Fargeat 감독의 영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는 그 ‘어떻게’의 과정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수는 엘리자베스로서의 자의식(초로 여성의 자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젊은 여성이다. 50세 생일을 맞은 엘리자베스가 해고 당한 에어로빅 프로그램의 새 진행자로 발탁된 수는 자신의 얼굴을 알리고, 섹스를 하는 등 자신의 시간을 한껏 즐기려고 한다. 7일이 지나고 엘리자베스가 의식을 찾으면 수가 그동안 어떤 성취를 이뤘는지를 씁쓸하게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7일간의 균형은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는 듯 보이지만, 수가 시간을 ‘더’ 원하면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7일을 활동하고 7일을 공백으로 살아야 하는 방식으로는 커리어를 제대로 키울 수 없다. 수는 더 많은 시간을 갖기 위해 엘리자베스의 체액을 자신에게 주입한다. 문제는 뒤늦게 깨어난 엘리자베스에게 생긴다. 수가 누린 시간만큼 엘리자베스는 가속 노화한다. 잔뜩 붓고 주름진 손가락을 보고 경악하기도 잠시, 엘리자베스의 머리가 빠지고 관절이 굳고 주름이 생기고 피부가 늘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엘리자베스는 수에게 복수하기로 한다. ‘당신은 하나다’라는 말처럼, 엘리자베스가 과식하자 수는 몸매에 변화가 생겼다는 강박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7일은 젊은 나로, 7일은 원래의 (나이 든) 나로 보내게 해주는 약물이 생긴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처음에는 시간의 이상적인 균등 분배가 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엘리자베스와 수의 생활은 ‘당신은 하나다’라는 말이 섬뜩한 예언이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까지 악화 일로를 걷는다. <서브스턴스>는 보디body 호러인데, 보디 호러는 공포 영화 중에서도 인체의 훼손이나 변형에 중점을 둔 하위 장르를 일컫는 말이다. 대표적으로는 소설을 영화로 만든 <플라이The Fly>(1958년과 1986년 두 번 영화화됐다)가 있는데, 순간이동장치를 만든 과학자가 실험 중 사고로 파리와 DNA가 섞이면서 괴물로 변하는 내용을 다루는 식이다.
그런데 <서브스턴스>의 보디 호러는 기본적으로 자연의 섭리에 해당하는 ‘노화’라는 점이 눈에 띈다. 젊음과 아름다움을 절대명제로 삼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종속돼 살아온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언제든 수의 시간을 멈출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이제 자기에게 남겨진 유일한 가능성이 수에게 달려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늙고 추해진 자신의 시간을 홀대하는 것은 수만큼이나 엘리자베스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서브스턴스>를 슬프게 한다. 여성이 자신을 학대하는 방법으로서의 과식 역시 흥미롭다. 밤늦게 음식을 잔뜩 먹고 집을 어지럽혀 두고 잠들면, 이튿날의 나는 전날의 나를 혐오한다는 자기혐오의 원리. 여성들이 자기를 망치고 괴롭히고 통제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식이장애를 떠올려보라. 거식증과 폭식증은 정반대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 통제와 자기혐오라는 엔진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여기에, 비가역적인 노화가 끼얹어진다. 그냥 열심히 살아갈 뿐인데,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나일 수 없다는 공포. 영화의 마지막, 엘리자베스와 수가 합쳐진 엘리자수의 등장 장면은 보디 호러의 전형으로 보이지만 <서브스턴스>를 이루는 심리적 공포의 근간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노화라는 점이 섬뜩하다. 당신은 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글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