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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5월호

예술과 기술, 그다음 좋아진 세상이
좋은 세상인가?

1683년 설립된 영국 애시몰린 박물관은 루브르보다 110년, 대영박물관보다 70년 앞선 세계 최초의 대학 박물관이다.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작품이 소장된 그곳에 얼마 전 나의 박사학위논문 ‘Empty Garden’이 한국 현대 작가의 작업으로는 처음 정식 구입, 영구 소장돼 국내외의 주목을 받았다. 논문이자 작품인 이 작업은 2020년 옥스퍼드 대학 학위논문 심사에서 만장일치로 ‘수정 없음No Corrections’ 판정받은 뒤, 다시 5년에 걸친 박물관의 독립 심의를 거쳐 컬렉션에 편입됐다. 왜 하필 ‘빈 정원’이었을까.

‘Empty Garden’은 길이 10미터의 한지 두루마리 아홉 권으로 이뤄져 있다. 독자는 페이지를 넘기는 대신 몸을 움직이며 그것을 따라 읽는다. 텍스트를 읽는 일이 곧 공간을 거니는 일이 되도록 만든 것이다. 이 작업의 출발점에는 박사 과정 중 다리를 심하게 다쳐 오래 고생하던 경험이 있다. 몸이 약해지고 이동이 어려워지자 나는 오히려 몸과 감각, 그리고 움직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 내게 중요한 단서가 된 것은 조선 문인의 ‘의원意園’ 개념이었다. 그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정원이 아니라, 더 이상 멀리 산수를 유람할 수 없는 이들이 마음속에 가꾸던 정원이다. 없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허구만은 아니다. 비어 있지만, 그 빈자리 속에서 감각과 사유가 다시 살아나는 공간이다.

그러나 오늘의 기술 문명은 비어 있는 것을 좀처럼 견디지 못한다. 무엇이든 기록하고 저장하고 계산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야 안심한다. 우리는 데이터를 말할 때 거의 언제나 같은 비유를 쓴다. 자원, 연료, 자산. 채굴하고, 처리하고, 축적하고, 소비하는 대상이라는 뜻이다. 생성형 AI는 이 질서를 극단까지 밀어붙인다. 수많은 이미지와 문장을 순식간에 만들어내고, 알고리즘은 감정을 분류하며, 플랫폼은 기억을 대신 저장한다. 효율은 높아졌지만, 그만큼 인간의 감각은 점점 희미해진다. 모든 것이 더 빨라지고 더 편리해졌는데, 정작 우리는 더 깊이 느끼고 있는가. 세상은 좋아졌는지 몰라도, 과연 그것이 좋은 세상인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정원으로 돌아가보자. 자연미를 추구하는 한국의 정원은 자연을 완전히 지배하거나 과도하게 설계된 대상으로 만들지 않는다. 햇빛의 방향을 읽고, 물의 흐름을 살피고, 바람과 그림자의 변화를 기다린다. 때로는 손대지 않는 것이 가장 적극적인 행위가 되기도 한다. 비워두는 것 역시 하나의 형식이다. 동아시아 건축에는 ‘차경借景’이라는 말이 있다. 바깥의 풍경을 안으로 빌려와 공간의 일부로 삼는다는 뜻이다. 나는 우주야말로 차경과 가장 잘 어울리는 풍경이라고 생각한다. 먼 하늘과 별빛을 바라보며 그것을 마음 안으로 들여오는 순간, 무한한 우주도 하나의 정원이 된다.

나는 이러한 태도를 ‘데이터 가드닝Data Gardening’이라고 부른다. 데이터를 즉시 소비되는 정보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스며들고 해석과 돌봄이 개입하는 대상으로 대하는 일이다. 빠르게 생산하고 폐기하는 대신, 멈추고, 살피고, 기다리며, 때로는 비워두는 것. 예술가는 이제 데이터를 더 많이 소유하는 사람이 아니라, 데이터와 감각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가꾸는가를 묻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데이터가 ‘정보’의 차원에 머무를 때 그것은 곧바로 소모되지만, 감각과 사유를 통과할 때 비로소 ‘지혜’의 차원으로 옮겨갈 수 있다.

이 생각은 나의 최근 작업에서도 이어진다. 지난해 지드래곤과 협업한 <굿모닝, 미스터 지드래곤>은 인간의 생체 데이터를 감정의 지도처럼 변환한 뒤, KAIST의 위성 기술을 통해 우주로 전송하는 실험이었다. 그 작업에서 데이터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몸에서 출발해 우주를 향해 건네는 하나의 신호이자 의례였다. 또 다른 작업 <시네 포레스트: 동화>에서는 800개의 AI 에이전트와 대규모 합창단, 오케스트라, 그리고 관객의 움직임이 함께 분당 중앙공원 숲 전체를 하나의 미디어 생태계로 만들었다.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와 몸의 경험이다. 사람은 화면을 바라보는 관객에 머무르지 않고, 걷고 숨 쉬고 머무르며 풍경 속에 스스로를 놓게 된다.

나는 포스트 AI 시대에 가장 먼저 사라질 수 있는 것이 이런 ‘분위기’라고 생각한다. 분위기는 언어로 설명되기 전에 몸이 먼저 감지하는 것이다.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피부가 먼저 알아채고, 눈보다 호흡이 먼저 반응하는 감각이다. 모든 것을 즉시 산출하고 즉시 반응하게 만드는 체계 속에서, 우리는 설명되지 않는 여백과 머뭇거림, 그리고 천천히 형성되는 감정을 잃어가고 있다.

서울의 문화도 이 질문 앞에 다시 서야 한다. 기술을 더 빠르게 도입하는 도시가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기술 앞에서 예술의 힘으로 잠시 멈출 수 있는가, 효율과 속도의 명령에서 한 걸음 물러나 인간의 감각과 몸이 다시 살아날 자리를 만들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정원은 그런 공간이다. 생명이 자라고 쇠하고 다시 돌아오는 시간을 품은 채, 돌봄과 기다림과 비움이 함께 존재하는 장소다. 도시 역시 그래야 한다. 그래야 서울은 단지 더 좋아진 도시가 아니라, 정말로 좋은 도시가 될 수 있다.

이진준 미디어 아티스트, KAIST 아트앤테크놀로지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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