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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1월호

페이퍼로그 우리의 예술에 ‘왜’ 기술이 필요할까

최해인 아트코리아랩 예술기술융합팀장

장르 이름으로 구분되기를 지양하는 흐름에도 불구하고 예술 장르마다 그 특성과 예술가의 성격이 무척 다릅니다. 그 가운데 시각과 공연을 아우르는 일을 해오고 있는데요.

2015년 예술경영지원센터에 입사했으니 10년이 훌쩍 넘었네요. 초창기에는 공연예술을 중심으로 한 수교 사업을 담당했고, 시각예술본부와 공연예술본부를 거쳐 현재 아트코리아랩에 있습니다. 공연과 시각은 달라서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저는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했기에 익숙함을 장점으로 공연 시장과 산업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시각예술에는 산업과 시장이 좀 더 분명하게 존재하고 뚜렷한 타깃이 있어 사업을 좀 더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점이 좋았습니다.

지금은 아트코리아랩에서 새로운 시장을 탐색하고 있고요.

예술경영지원센터는 본래 서울아트마켓을 중심으로 공연예술의 유통을 지원하는 데 목표를 두고 출발해 점차 확장해왔는데요. 약 10년 전 예술경제본부가 생겨나면서 단발성 공연이나 전시를 넘어 예술이 지속 가능한 산업이 될 수 있도록 집중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희가 주목한 것은, 현장에서 예술과 기술이 만나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새롭게 발생하는 시도들을 어떻게 하면 더 확장시키고 잘 해낼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여러 차례 좌담회FGI를 열어 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들었고요. 공공으로서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 끝에 아트코리아랩이 출범했어요. 2023년 10월 광화문에 공간과 인프라를 구축하고, 현재까지 이와 연계되는 사업을 기획·구상·운영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예술 기술’의 창·제작부터 산업화까지 전 주기로 지원하며, 일부는 유통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사항을 함께하기도 합니다.

창작 공간이라면 으레 어둡고 드넓은 작업실을 상상하기 마련인데, 경복궁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근사한 위치가 인상적이에요.

거점이 되는 공간의 입지를 정할 때부터 시장조사를 활발히 했어요. 기존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다양한 공간이 시내 중심에 위치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걸 파악했고요. 오늘날 정부 정책 안에서 문화예술의 위치가 전보다 훨씬 중요해진 것처럼, 새롭게 문 여는 아트코리아랩은 공간에서부터 그러한 기조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술기업이 성장하기 위해 상징적인 공간에서의 시작이 필요하다고도 봤고요. 그래서 이곳 공간을 어렵게 확보했습니다.(웃음)

융합예술의 중요성은 점점 더 심화하고 시대적 산물이라는 점에도 공감하지만, 여전히 명확하게 정의하기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우리 안에서 ‘기술과 예술’이라고 하지 않고 ‘예술(과) 기술’이라고 부르는 건, 작품에 어떤 기술이 사용되든 그것이 반드시 첨단 기술High Technology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아날로그에 가까운 기술 혹은 엄청나게 고도화되고 최신의 기술일 수도 있겠죠.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보다 ‘왜’ 사용하느냐는 질문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술이란 결국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 혹은 방법이고,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자신이 바라본 사회 혹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그것을 위해 사용되는 도구든 주제든 기술과 관련한 것이라면, 폭넓게 아트코리아랩이 지원할 수 있는 범주로 여깁니다. 단순히 기술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라는 언어를 배워서, 예술가로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관해 계속해서 질문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이 저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창작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어떤 지원일까요.

처음 아트코리아랩이 생길 때는 예술가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당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나도 기술을 사용해보고 싶은데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저희의 각종 인프라와 다양한 사업을 통해 원한다면 누구나 배워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트랙은 여전히 운영되고 있고요. 3년여 간 300명 가까운 작가들을 만나면서 단발성 사업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하나의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지금은 작품을 발표한 뒤 다음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어떤 플랫폼을 통해 유통을 지원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실험이 확산하고, 유통으로 연결되는 순환 구조를 만드는 단계에 있어요.

그간 여러 방면으로 경험한 축제 혹은 아트마켓 중에서 하나를 소개해주신다면.

‘예술 기술’ 플랫폼에 있어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곳이 아르스 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인데요. 저희도 올해 처음으로 페스티벌에 다녀왔습니다. 이곳에선 기술이 얼마나 잘 구현되고 작동하는지보다 우리가 왜 기술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지에 관한 담론이 형성되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예술과 기술이 만나 얼마나 아름답고 기술적으로 고도화된 작품을 만들어냈는지 평가하는 게 아니라, 예술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기술을 통해 어떻게 구현되는지, 또 기술의 이면을 예술가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나아가 기술로 인해 변화하는 사회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어서 관점을 달리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이 시장의 특성이라면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아직은 새롭게 생겨나고 있는 신scene이기 때문에, 완전하게 정리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아요. 모든 예술이 그러하지만, ‘예술 기술’에 있어서는 실험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계속해서 시도한다면, 작가만의 세계관이 형성되고 그 시간이 쌓여 좋은 담론을 만들어낼 것으로 믿습니다.

일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언제였나요.

교육 단계부터 지원하다보니 작가들의 작업이 오랜 기간에 걸쳐 성장하는 것을 지켜볼 때가 있어요. 연극으로 시작한 연출가가 아트코리아랩에서 XR 기술을 배워 자신의 연극적 방법론에 적용하고, 그 작품으로 프랑스 뉴이미지 페스티벌NewImages Festival 같은 아트마켓에 진출하는 등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저희가 지향하는 바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느낍니다. 개인적으로 어떤 분야든 지속적이고 중장기적인 지원이 있어야만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한 시간이 쌓여야만 우리만의 독특한 무언가를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센터가 올해 개소 30주년이 됐어요. 처음엔 아주 작은 미디어아트 페스티벌로 시작했지만, 그 시간이 쌓여 이제는 ‘예술 기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모두 자신의 작품을 유통시켜보고 싶은 플랫폼이 됐죠. 기술은 굉장히 빠르게 변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일부일 뿐, 우리는 결국 기술 없는 사회에서 살 수 없기에 계속해서 ‘예술 기술’에 관심을 갖고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은 그걸 발전시키기에 너무나 좋은 지리적 환경을 갖추고 있거든요. ‘예술 기술’이 관객에게 사랑받으며 시장이 성장하고 산업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서도 변함없는 예술의 힘이라고 느끼는 것은.

저는 좋은 작품을 마주할 때면 여전히 감동해요. 그게 제가 이 일을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이고요. 아주 오래전 인턴십으로 문화예술계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보내는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는 게 너무 좋았어요. 작품이 사랑받고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을 볼 때, 내가 하는 일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느껴요. ‘공연이 끝났을 때 내가 무대 위가 아니라 무대 옆에 있어도 여전히 행복할까?’라는 질문에 저는 언제나 여전히 행복하고, 더 행복했어요. 그래서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술과 기술, 산업이 상상하고 실험하는 현장이 궁금하다면 아트코리아랩의 지원으로 발굴된 실험적인 작품과 비즈니스 모델 등 다양한 성과가 현장과 맞닿을 수 있도록 아트코리아랩 AI-융합 페스티벌이 11월 4일부터 8일까지 닷새간 스페이스-S50과 아트코리아랩에서 열린다. ‘SENSE THE M.O.M.: AI 시대, 몸의 감각을 다시 묻다’라는 주제 아래 피지컬 AI가 창·제작과 산업화에 미친 영향에 관해 담론을 나누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artskorealab.kr

글 김태희 [문화+서울] 에디터  |  사진 Studio K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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