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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경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극장운영부 과장
모두예술극장은 2023년 10월 개관한 국내 유일의 장애예술 특화 공연장입니다. 장애예술인이 마음껏 자신의 무대를 펼치는 동시에, 다양한 관객이 편안하게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예술가와 관객 양쪽을 고려해 조성됐습니다. 저는 극장운영부에서 공연 기획을 맡아 작품 개발과 제작부터 국내외 공연 기획, 해외 초청 공연까지 전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극장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접근성’입니다. 이는 관객뿐 아니라 창작자에게도 해당합니다. 장애예술인이 공연장 안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며 제약 없이 창작할 수 있어야 하고, 관객 역시 불편 없이 공연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객석 간 간격을 넉넉히 확보하고 휠체어석도 무대 가까이에 마련했습니다. 장애인을 위해 특별한 편의를 제공한다기보다,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가 충족되는 공연장을 만들자는 데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애를 어떤 시선과 눈높이에서 바라보는가’입니다. 장애인의 권리나 존재를 직접 주장하는 작품만을 찾기보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삶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작품에 관심을 둡니다. 제작 과정에서 신경쓰는 부분은 참여자의 장애 유형에 따라 필요한 조건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시설이나 동선 같은 물리적 접근성뿐 아니라 심리·인지적 접근성까지 함께 고려합니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정해진 매뉴얼을 적용하기보다 작품마다 참여자들과 조율하며 가장 적합한 방식을 찾아갑니다. 거의 모든 제작 과정이 새로운 시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모두예술극장은 접근성을 특정 담당자의 업무로 분리하기보다 기획과 홍보·마케팅, 하우스 매니지먼트, 관객 서비스 등 각 업무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려고 합니다. 최근에는 특히 접근성 자체가 작품의 미학이나 표현 방식이 되는 ‘창의적인 접근성’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칠레와 네덜란드 공동 제작 공연을 소개하며 음성 해설을 제공한 적이 있는데요. 한국어 버전에서는 단순히 장면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극적 성격을 더했습니다. 전문가와 함께 대본을 수정해 음성 해설 자체가 작품의 일부처럼 들리도록 만든 것이지요. 이 방식은 시각장애인뿐 아니라 비장애 관객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결국 접근성 서비스 역시 각 작품에 가장 잘 맞는 방식을 계속 찾아가며 발전하는 셈입니다.
장애예술인과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작업 방식을 맞춰가며 공연을 만들다보면 예상하지 못한 일이 많이 생깁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만든 공연이 무대에 오르고 관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또 이동 자체가 쉽지 않은 장애예술인이 예술을 하기 위해 극장에 와서 무사히 작업을 마치는 모습을 보면 이 공간이 존재하는 의미를 실감하기도 하고, 관객층이 조금씩 넓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도 큰 기쁨입니다.
11월 모두예술극장에서 <나는 태어나지 않기로 했다>를 선보입니다. 한 생명이 태어나기 전 바깥세상을 인터뷰하고 자신의 탄생 여부를 결정한다는 SF적 설정의 작품입니다. 장애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인물과 농인 서사가 포함돼 있어 농인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인간의 삶 속에 장애인의 서사가 자연스럽게 포함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접근성은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거나 자막과 수어 통역을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두에게 똑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공연을 각자의 방식으로 충분히 경험하는 데 있습니다. 장애 유형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하나의 정답은 없습니다. 저희에게 접근성이란, 완성된 답을 적용하는 일이 아니라 예술가와 관객에 맞춰 계속 새로운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이 생기기도 합니다. 비장애 예술가들이 장애예술인의 작품을 보며 익숙하지 않았던 감각과 표현 방식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고요. 결국 접근성은 누군가의 편의를 넘어 공연예술의 감각을 확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장애예술 창작자가 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를 바랍니다.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장애예술인이 아직 많지 않고, 특히 작가나 연출가·안무가처럼 작품의 원천을 만들고 전체를 이끄는 창작자는 더욱 부족합니다. 모두예술극장을 바탕으로 창작자들이 계속 탄생하고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냈으면 합니다. 그렇게 장애예술 생태계가 성장하고, 장기적으로는 ‘장애예술’이라는 구분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다양한 예술가가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공연예술계로 나아가는 데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최근 모두예술극장에서 선보인 작품 “9월 16일부터 20일까지 공연한 <크립스Creeps>는 1970년대 초 북미에서 발표된 희곡으로, 보호 작업장 화장실에 모인 지체장애인 남성 다섯 명이 자신의 삶과 자아실현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오래전에 쓰인 작품이지만 ‘장애인 역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추구한다’는 질문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글 박채림 [문화+서울] 에디터 | 사진 박해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