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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용자는 미래에 있다”
이지희 아키비스트
2013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미술 아키비스트로 근무하고 계시지요. ‘미술 아키비스트’는 어떤 일을 하나요?
미술 아키비스트는 작가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기록·관리하는 사람입니다. 관람객은 완성된 작품을 보지만, 그것만으로 작가의 예술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아키비스트는 일기, 아이디어 노트, 드로잉 등 작업 이면의 자료를 수집·연구해, 대중이 작가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아카이브센터 개관 초기부터 함께해왔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오랜 시간 작품을 수집해왔지만, 2013년 입사 당시만 해도 작가의 세계 이면을 체계적으로 담는 아카이브 구축은 미비했습니다. 아틀리에에는 중요한 기록이 많았지만, 작가 사후에는 사라지거나 버려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에 미술관은 소멸 위기 자료를 보존한다는 사명 아래 1920~30년대생 근대 초기 작가의 기록 수집을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점차 미술계 전반의 인식과 환경을 서서히 변화시켰고요. 예를 들어 과거에는 대중이 이중섭을 ‘황소’로만 기억했다면, 이제는 드로잉·노트·편지화 등을 통해 그의 삶과 내면을 입체적으로 이해합니다. 아카이브는 미술사의 지평을 넓히고, 작가와 작품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엽니다. 기록으로 예술의 토대를 다지는 일, 그것이 아카이브의 가치이자 매력입니다.
아키비스트로서 ‘일의 기쁨’을 느낀 순간을 들려주세요.
아카이브 수집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작가의 작업실을 찾습니다.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고故 이성자 작가의 아틀리에를 방문했던 경험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이성자는 1950년대 프랑스 미술계에서 주목받으며 세계에 이름을 알린 추상화가입니다. 작가는 떠났지만,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멈춰 있던 시간으로 들어가는 듯한 감각을 느꼈습니다. 작가의 내밀한 삶에 스며드는 공감각적 경험이었죠. 그곳에 며칠 머물며 개인 기록을 읽다 보면 어느새 작가의 내면에 깊이 닿게 됩니다. 때로는 가족보다 더 깊이 그 삶을 이해하는 순간이 오는데요. 그때 아키비스트로서 말로 다 하기 어려운 기쁨을 느낍니다.
한 번은 다른 작가의 컬렉션을 정리하다 우연히 이중섭 작가가 자신의 그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작은 사진 한 장을 발견한 적도 있습니다. 미술계에 최초로 공개되는 사진이었지요. 요절한 고故 최욱경 작가의 가족조차 몰랐던 고등학교 시절 스케치북 뭉치를 정리하며, 작가의 작품을 내 손으로 직접 처음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작가와 일대일로 마주하는 순간, 이 일의 의미를 실감합니다.
이후에는 작가의 공간에 남은 기록에 ‘논리적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 이어집니다. 이 과정에서는 삶의 맥락을 훼손하지 않는 일이 중요합니다. 정리된 자료와 연구가 전시로 이어져 관람객에게 전달될 때, 일의 기쁨을 넘어 비로소 아키비스트의 역할이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긴 호흡의 작업인 만큼 아키비스트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일까요. 농담처럼 말하지만 ‘체력’과 ‘인내심’이 꼭 필요합니다. 아키비스트는 성과가 즉각 드러나지 않는 직업이기 때문입니다. 백남준 아카이브 전시 《백남준 효과》(2022년 11월 10일부터 2023년 2월 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를 준비할 때도, 전시 기간보다 수년간 이어진 자료 수집과 구술 채록, 인터뷰와 연구 과정이 더 길고 중요했습니다. 결국 이 일은 결과보다 과정을 견디고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사설탐정처럼 연도 미상의 드로잉 한 점을 두고 자료를 추적해 제작 시기를 밝혀내야 하지요. 그 과정 자체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아키비스트로서의 자질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2013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미술 아키비스트로 근무하고 계시지요. ‘미술 아키비스트’는 어떤 일을 하나요?
기록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직업적 철학이 궁금합니다. 자신의 소중한 기록을 선뜻 내어주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국공립기관에 속한 아키비스트에게 ‘공공성’과 ‘사명감’은 필수입니다. 100년 전에는 흔하던 백자가 오늘날 보물이 된 것처럼, 현재 작가의 스케치 한 점이 미래에 어떤 의미를 지닐지 알 수 없습니다. 때로는 아카이브센터가 더 많은 관람객을 맞이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우리의 이용자는 미래에 있다’고 대답합니다. 먼 미래의 연구자를 위해 오늘 기록의 가치를 보존하는 일이 바로 아키비스트로서 제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아카이브가 ‘보존’과 ‘관리’에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대중과의 접점을 넓히고 있습니다. 1980년대 기록학에서는 아키비스트와 이용자의 관계를 판옵티콘의 간수와 죄수에 비유했습니다. 훼손과 도난을 막는 관리 중심의 역할이었죠. 지금의 아키비스트는 다릅니다. 이용자의 목적과 취향에 맞춰 자료를 제안하는 ‘서비스 제공자’에 가깝습니다. 아카이브센터도 연말을 목표로 디지털 서비스를 준비 중입니다. 기존 텍스트 중심 정보에서 나아가, 이중섭·박수근·김환기·백남준 등 주요 작가의 아카이브 약 10만 점을 이미지로 열람할 수 있게 됩니다. 방대한 자료 중 의미 있는 콘텐츠를 선별해 보여주는 과정 또한 하나의 ‘큐레이팅’으로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아카이브센터의 향후 계획과 개인적인 바람이 궁금합니다. 그동안 국내 작가 자료를 축적해왔다면, 이제는 이를 확장하고 연결하고자 합니다. 자체 개발한 아카이브 시스템을 전국 국공립 미술관에 보급해 어디서든 표준화된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하반기에는 후배 아키비스트 양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할 예정입니다. 최근 일본 미술 아카이브 기관과 협약을 맺어, 일본에 남아 있는 근대 한국 작가 자료를 디지털화해 공개하는 작업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미국·프랑스 등으로 협력 국가를 넓혀 국립현대미술관을 한국 미술 아카이브의 국제 허브로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후배 아키비스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고 싶습니다. 처음 길을 닦은 사람으로서, 이 길을 따라오는 후배들이 더 넓고 풍부한 저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끌어주는 역할을 다하고자 합니다.
글 박채림 [문화+서울] 에디터
사진 Studio Ken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