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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5월호

예술가의 진심 금배섭,
몸으로
이야기하는

제4회 서울예술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2년 전인가 심사위원 특별상 후보가 됐다고 공연 자료를 제출하라는 연락이 왔는데 수상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자료를 제출하라는 연락을 받고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수상 소식에 놀랄 수밖에 없던 것 같아요. 상금도 있다고 해서 또 한 번 놀랐죠. 예술계, 특히 무용 관련 상에 상금이 있는 경우가 별로 없거든요. 무엇보다 대상은 시상식 현장에서 발표되는데, “무용 부문…”까지 들으면 제 작품이잖아요. 그런데 그때까지도 가만히 있다가 “누수”라고 제목을 듣고서야 ‘아! 우리 맞나보다’ 했어요. 그만큼 예상하지 못했고, 얼떨떨했습니다.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최우수상은 미리 발표된 덕에 소감을 준비했지만, 대상은 기대도 안 했거든요. 그래서 무용에 관한 평소 생각을 이야기했습니다. 무용을 늦게 시작해서 남들만큼 추려면 오래 살아야겠다, 뭐 이런 얘기를 했어요.

안무가로 활동하면서 상을 받는다는 건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수상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확실한 것은 저와 제 작품을 대중에게 더 알리게 된 것 같아요. 서울예술상 시상식을 통해 대중화에 한 발 다가간 느낌이랄까요. 좋으면서 걱정도 됩니다. 많은 분의 이해를 얻는다는 건 제 작품이 쉽게 읽히게 된 것 같은데,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니까요. 이 상의 의미는 조금 시간이 지나야 제대로 느껴질 것 같습니다.

아내인 김풍년 작가가 서울예술상 수상자로는 선배인데요.

김풍년 작가는 2023년 작품 부문에서 연극 <싸움의 기술, 졸>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어요. 그리고 이번 서울예술상에서 포르쉐 프런티어상을 받았습니다. 수상작은 극단 작당모의 <무릎을긁었는데겨드랑이가따끔하여>예요. 김풍년이 극작·연출을 맡고 저는 안무가로 참여했어요. 제가 안무한 춤판야무 <누수>에는 김풍년이 드라마투르그로 참여했고요. 사실은 상을 받게 된 것을 두 사람 다 얘기하지 않고 있다가 시상식 녹화 관련으로 문자를 동시에 받으면서 알게 됐어요.(웃음) 둘 다 ‘나만 받나, 어떻게 얘기하지’ 하고 고민하고 있었죠. 서로에게 잘 됐다고 축하했습니다.

제4회 서울예술상 대상 수상작
춤판야무 <누수>


사물의 성질과 무심함이 주는 재미를 찾아
작품 <누수>는 어떻게 만들게 됐나요.

처음에는 제목이 ‘누수’가 아니라 ‘광장’ 이런 느낌이었거든요. 광장에 대한 이미지를 찾다가 사람이 들어오고 뭔가 발생하고, 없어지고, 텅 빈 공간이 되는 곳. 그리고 어디로든 열려 있고, 무엇이 발생할지 모르는 생성과 소멸… 이런 걸 생각한 것 같아요. 그러다가 지원금 신청서를 쓰고 있는데 드라마투르그 김풍년이 “제목 하나 줄까?” 하면서 어디서 본 간판 이름이라며 ‘현대종합누수’를 제안했어요. ‘누수’라고 하니 뭔가 들어오고 빠져나가는 것과 맞는 것 같았고, 광장의 개념보다는 더 좁혀지니 좋을 것 같더라고요. 그러면서 이야기가 저로부터 출발해 나에게 들어오는 것은 무엇이고 또 빠져나가는 것은 무엇이며, 나간 것은 어디로 흘러서 무엇과 어떻게 만나지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작업했습니다.

창작하는 데는 얼마나 걸렸나요.

워크숍을 두 달 정도 진행했고, 연습은 넉 달 했습니다. 총 여섯 달을 보냈는데 그전부터 계속 생각을 품고 있었죠. 집중해서 파고들기보다 일상을 보내며 ‘누수가 뭐지’ 하는 질문을 계속 던진 것 같아요. 그 사이에 김풍년 작가의 단체에서 매주 여는 철학 수업에 무용수들과 함께했습니다. 그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워크숍을 하며 생각의 방향을 조금씩 정해갔어요. 처음부터 결론을 내리고 나아간 것이 아니라, 무용수들과 움직임을 찾아가며 이것이 누수의 감각인지 계속해서 확인하며 만들어갔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요즘 제 관심사인 것 같은데, 알 수 없는 것들이 연결돼 만나고 그로 인해 이상한 일들이 발생하는 과정 자체인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누수’는 나에게서 빠져나가는 것이지만, 아무 의지 없이 빠져나가지는 않을 거라 봅니다. 그 의지가 있다면 저는 그 방향으로 더 나아갈 것이고, 이는 어떤 부분을 잘라내고 나아가는 진화나 퇴화가 되겠죠. 결국 상실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알 수 없는 것들이 흘러가서 무언가를 이루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생각했어요. 이번 대상 수상처럼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시간이 흐른 뒤 이 경험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돌아보는 과정을 작품에 담고 싶었습니다.

안무 의도를 이해하지 않아도 퍼포먼스 자체가 아름답고 흥미롭다는 분들도 많았어요.

그런 관객의 평도 감사하죠. 연습할 때 무용수들에게 움직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담으려 하지 말자고 이야기합니다. 의미를 강요하다보면 우리 이야기가 틀릴 수도 있거든요. 관객이 보기에 표현이 재미있고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누수>에서도 그렇지만, 이전 작업도 일상의 오브제를 다르게 보이게 합니다.

<누수>에서는 비닐을 선택했어요. 페인트를 칠할 때 덮는 얇은 비닐인데, 그것으로 물과 연관 있는 걸 찾으며 이것저것 해 봤죠. 그러다 양쪽에서 잡고 날려봤는데, 물을 막는 용도인 비닐이 오히려 물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테이프와 플라스틱 숟가락은 물방울이 맺히고 흐르는 느낌이 나서 사용했습니다. 꽃가루가 날리다 테이프에 딱 붙는 장면은 마치 갑자기 시공간이 정지된 듯한 느낌이 들어 재미있더라고요. 이렇게 되기까지는 연습실에서 이른바 ‘삽질’하는 시간을 보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와 사물의 성질이 연결될 수 있는지 지지고 볶으며 확인하는 거죠. 작품이 안 풀릴 때는 ‘나 다이소 좀 다녀올게’ 하기도 합니다.(웃음) 저는 익숙한 사물이 낯선 감각을 주는 지점이 좋습니다. 오브제는 감정 없이 자신의 성질대로 작용하고 끝나기에 더 명확한 표현이 가능합니다. <누수>에서 팽팽했던 종이가 물에 젖어 툭 끊어지는 장면처럼, 사람의 몸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그것이 재미있어요.

재공연한다면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공연 당시에는 아쉬운 점이 잘 안 떠오르는데, 막상 영상으로 작품을 다시 보면 재미가 없더라고요. 재공연을 하게 되면 더 많은 시도를 해 볼 것 같아요. 그런데 초연 버전에서 많은 부분을 바꿔도 관객들은 잘 모르시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수정하겠다고 미리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홀로, 또 오래 춤춘다는 것
무용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저는 복 받은 사람 같아요. 주위의 많은 동료들이 무대를 떠났어요. 무용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상을 받으니까 더 확실히 느껴져요.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생각하면 저를 도와준 동료나 선배들이 떠오릅니다. 물론 힘들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막상 그만두려고 하니 할 수 있는 게 없고, 막막한 거예요. 한때는 연극 작품의 안무 작업이 들어오면 하곤 했어요. 지금은 제 작업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무용의 어떤 부분이 지금의 자신을 끌어냈다고 생각하나요.

체육대학을 졸업하고 우연히 매슈 본Matthew Bourne의 <백조의 호수>를 봤어요. 1부가 끝나고 인터미션을 보내면서 공연이 좋다는 생각보다 ‘왜 나는 저런 걸 어릴 때 접하지 못했지. 경험했다면 나도 저런 거 했을 텐데’ 하면서 막 속상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2부를 봤는데 더 재밌는 거예요. 그러면서 춤이 좋아진 것 같아요.

무용은 처음 어떻게 시작했나요.

연기를 배우고 있던 때였는데, 선생님께서 무용을 배워보라고 권하셨어요. 편입 시험을 준비하다가 세종대학교에 진학하게 됐고요. 무용과에 들어가보니 일단 언어 자체가 해석되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겠더라고요. 선배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부모님께는 비밀로 하고 다녔습니다.

대학 졸업 후 ‘차세대 안무가 인큐베이팅’에 참여한 것이 변곡점이 됐을 것 같아요.

네 맞아요. 2011년 차세대 안무가 인큐베이팅 과정을 거쳐 결과물 <보이는 것에 대하여>를 발표했습니다. 다음 해 아르코예술극장 기획 ‘라이징 스타’에 선정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했고요. 프리젠테이션 하면서 안 좋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지나고보니 ‘라이징 스타’에서 공연했다는 게 제 작품이 우수작으로 선정된 것이더라고요.

그 후에 솔로 연작을 시작했죠? 1시간 길이의 다섯 작품을 모으니 5시간이 넘더군요.

연작을 생각해서 솔로 작품을 발표한 건 아니었어요. 지원금을 못 받고 무용수를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혼자서라도 해 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한 것이 2013년 시작해, 2021년에는 다섯 편의 솔로를 모은 <오>를 5시간 30분간 공연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솔로 작품으로 2023년 <닳아가는>, 2025년 <바흐>를 발표했습니다.

무거운 주제 속에서도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이 많습니다. <네가 사람이냐?>2017의 하이힐 장갑이나 <포옹>2020의 대형 롤러가 기억나네요.

저는 진지하게 작업하는데 관객들이 웃으실 때가 있더라고요. <포옹>에서 에어캡을 전부 터뜨리기 위해 테니스장 롤러를 끌고 나왔을 때 스태프들이 웃는 걸 보고서야 그게 웃긴 장면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일부러 유도한 것은 아니지만 사물의 생경한 쓰임이 관객에게 그렇게 다가가는 것 같습니다.

올해는 어떤 공연을 계획하고 있나요.

8월 창무국제공연예술제 개막공연에서 <바흐>를 공연하고, 12월에는 서울무용창작센터에서 <사이>를 재공연할 예정입니다.

다음 신작에 대한 계획이 있다면요.

올해는 신작 작업을 쉬면서 기존 작품을 발전시키고 싶다는 고민이 있습니다. 매년 신작을 내는 것이 쉽지 않거든요. 그래도 ‘어떻게 연결되고 만나는가’라는 주제는 계속 품고 있습니다. 우연히 만나는 것들이 어떤 형태로 무용이 되는지, 그 시작과 과정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미래에 소망하는 일이 있다면요.

예전에 ‘춤판야무 심야극장’을 하며 ‘그 자리에 가면 있는 극장’을 꿈꿨습니다. 그 자리를 지키며 끝까지 작업을 이어가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누군가가 저를 떠올릴 때 “거기 가면 항상 작업하고 있을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예술가가 되고 싶습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을 전해주세요.

의미를 몰라도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는 관객의 소감을 이야기해주셨는데, 저도 그 점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세상에는 이해되는 일이 많지 않은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무용 작품도 그렇게 몇 번 보다보면 재미있어지니, 공연장에 많이 보러 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김예림 무용평론가

사진 Studio K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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