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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0월호

축제가 끝난 뒤, 무대세트의 운명은

9월 초를 기해 유럽의 많은 축제가 막을 내렸다. 아티스트와 관객은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고, 축제 팀은 휴식을 취한 뒤 곧 다음 해를 준비한다. 그러나 사람은 떠나도 무대는 스스로 떠날 수 없는 법. 여름을 수놓던 화려한 무대 세트는 전부 어디로 가는 걸까? 그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공연예술인 오페라 페스티벌의 경우는? 오페라는 기악 연주와 달리 작품마다 무대·의상·조명 등을 기획·제작해야 하는 데다, 같은 작품을 매번 재연할 수 없어 후처리 역시 길고 복잡하다.

특히 대규모 축제일수록 다양성을 위해 매년 새 프로덕션과 현대 작곡가의 신작을 선보이기 때문에 제작 규모는 더 늘어나는 추세다. 게다가 현대 프로덕션은 인지도가 낮기 때문에 고전 작품의 현대 연출보다 재공연되는 수가 현저히 적다. 보관해야 할 작품이 늘어난다. 모든 산업 분야에 있어 지속 가능한 운영이 현안이 된 지금, ‘시간 예술’ 즉 상연 후 사라지고 마는 공연예술의 사후 무대세트 처리는 극장과 축제의 주요 사안이다.

브레겐츠 페스티벌 프로덕션 <마탄의 사수> ⓒBregenzer Festspiele/Ralph Larmann

지속 가능성과 환경을 고려한

프랑스에서 가장 큰 오페라 축제인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은 2012년부터 지속 가능한 개발을 전담하는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 무대 제작과 시공·철거에 발생하는 수십 톤의 폐기물을 줄이는 데 큰 공을 세우는 중이다. 출범 당시 책임자인 베로니크 페르메Veronique Ferme는 “탄소 배출량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교통은 페스티벌이 관여할 수 없기에,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무대 디자인과 제작에 집중하기로 했다. 무대 제작·조립·해체·폐기 과정에서 많은 폐기물이 발생하며, 탄소 배출이 크기 때문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축제 측은 무대에 필수적인 하중 지지 재료인 폴리스티렌 대신 재활용 가능한 대체제를 연구한다. 2017년 <카르멘> 프로덕션은 접착제 없이 나사로만 조립한 나무 프레임을 사용했다. 따라서 해체 후 어떤 프로덕션에라도 재사용할 수 있다. 또 프랑스·벨기에의 오페라 극장 연합인 ‘콜렉티프Collectif 17H25’ 일원으로 극장 간 프로덕션 공유를 돕는 표준 세트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예컨대 2021년 초연한 배리 코스키Barrie Kosky 연출 <금계>의 경우 재조립이 가능한 모듈식 플랫폼을 기반으로, 강에서 건진 나뭇가지와 빗자루로 초원을 연출한 무대를 선보였다.

나아가 페스티벌은 2022년부터 연출 및 무대 디자이너와 계약에 ‘친환경’ 조항을 포함했다. 세트는 이제 제작 단계부터 재활용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상당수가 보관·판매 및 재사용된다. 쓰임이 다한 의상·소품은 아마추어 제작자나 신진 디자이너에게 낮은 가격에 재판매된다. 무대 장치를 매입·재판매하는 전문 회사도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아트스톡ArtStocK’은 9천m2의 물류 공간을 운영하며 샹젤리제 극장·툴루즈 오페라 등과 거래한다.

모차르트의 고향에서 열리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올해 45일간 9편 프로덕션 및 콘서트로 구성됐다. 초연 프로덕션은 3편. 축제 측은 “잘츠부르크와 그 주변에 총면적 약 1만m2의 보관소를 운영한다. 세트는 재공연, 공동 제작 또는 대여에 필요한 기간 동안 보관되며, 재공연할 경우 복원해 진행한다. 페스티벌은 자재 및 자원의 책임감 있는 사용을 염두에 둔다. 목재·금속·직물 등 재료는 분리해 재활용하고 부품은 재사용한다. 폐기는 더 이상 예술적·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없을 때 한해 이뤄진다”라고 전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현재 ‘페스티벌 지구Festspielbezirk 2030’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문화를 구축하고자 페스티벌 홀과 인프라를 확장하는 프로젝트로, 제작소와 보관소도 늘린다. 또 작품은 공동 제작·대여를 통해 전 세계 파트너 오페라하우스 및 페스티벌과 공유한다. 이는 자원의 효율적인 사용만 아니라 국제 예술 교류도 증진한다. 무엇보다 잘츠부르크는 자매 행사인 잘츠부르크 부활절 페스티벌과 작품을 공유하는 장점도 있다.

페스티벌을 위한 호수 위 무대를 만드는 모습 ⓒBregenzer Festspiele/Lisa Mathis

오랜 역사를 토대로, 아레나 디 베로나

1913년 시작된 아레나 디 베로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오페라 페스티벌 중 하나다. 로마 시대의 원형 경기장에서 시즌당 약 5~8편의 오페라가 돌아가며 오른다. 회당 관객은 약 3만 명. 무대 규모도 가로 75미터 세로 44미터로, 일반 극장의 두세 배에 달한다. 따라서 무대세트의 공동 제작이 어렵고 새로운 프로덕션을 자주 선보일 경우 보관에도 제약이 따른다.

이에 축제는 두 가지 기조를 유지한다. 첫째, 프로덕션은 대개 5~15년 주기로 재연되며 일부 연출은 수십 년, 심지어 100년 이상 가기도 한다. 올해 오른 우고 데 아나Hugo de Ana의 연출 <라 트라비아타>는 이미 2011년 초연, 2016년 재연된 작품이다. 지난해 공연한 <아이다>는 무려 1913년 프로덕션이다. 그 외 인기가 많은 프랑코 체피렐리Franco Zeffirelli의 연출작을 여럿 유지하고 있는데, 1995년 작 <카르멘>은 지금까지 15번 재공연됐다. 오랜 역사만큼 세트 보관·운송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갖추고 있다. 이는 두 번째 기조와도 이어진다. 내부 제작소와 제작 인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 페스티벌 측은 베로나 근교에 1만m2의 제작 보관소를 운영한다. 상주 인력만 약 250명이며 여름에는 1,400명까지 늘어난다. 보관된 의상은 4,500벌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편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호수 위에 쌓아 올린 무대에서 매년 여름 한 편의 오페라를 5주간 공연하는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호수라는 공간은 굉장히 매력적인 요소지만, 반면 무대 설치와 해체가 어렵다. 페스티벌은 2년마다 작품을 바꾸는데, 준비부터 공연까지 평균 3~4년이 걸리며, 실제 제작은 6~7개월간 이뤄진다. 제작 참여 인원은 400~500명 정도. 축제 후에는 폐기하는 대신 2개월여 시간과 50~60명의 노동력을 들여 해체·재활용하는 데 중점을 둔다. 기술감독 볼프강 우르슈타트Wolfgang Urstadt는 “페스티벌 하우스에는 내부 보관소가 있고, 건물 외부에 마련된 홀에 기타 부품을 보관한다. 음향 장비와 자체 자재는 유지 보수 후 보관하며, 조명은 대여해 사용한다”고 전했다.

전윤혜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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