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 전 시범공연으로 만나는
서울연극 창작센터
서울연극창작센터는 오는 3월 본격 개관에 앞서,
연극 전용 극장 ‘서울씨어터 제로’와 ‘서울씨어터 202’의 전반적인 운영 시스템을 점검하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1월과 2월 시범공연으로
처음 관객과 만난다. 극장별로 각 한 편의 연극이
공연되며, 1월 24일과 25일 서울씨어터 202에서
극단 배다의 <세상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쾅 소리 한 번 없이 흐느낌으로>를 가장 먼저 선보였다.
이어 2월 7일과 8일에는 서울씨어터 제로에서
공놀이클럽의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을
전석 무료로 선보인다.
두 편의 공연은 티켓 예매를 시작한 당일 전석
매진을 기록하면서 서울연극창작센터에 대한
시민과 연극인의 기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공연을 통해 시민과 예술가의 극장 경험에
대한 모니터링 의견을 취합하고, 이를 운영
시스템에 적용해 완성도 있는 연극 전용 극장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장한새 연출, 극단 배다 <세상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쾅 소리 한 번 없이 흐느낌으로>
세상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쾅 소리 한 번 없이 흐느낌으로
1월 무대에 오른 <세상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쾅 소리 한 번 없이 흐느낌으로>는 각색 박주영,
극단 배다 장한새 연출의 창작 공연이다.
2017년 창단한 극단 배다는 <왕서개 이야기>,
<붉은 낙엽>으로 제57회 동아연극상 작품상,
2020 올해의 연극 베스트 3, 제14회 대한민국
연극대상을 수상하며 호평을 받은 단체다.
‘인간성’에 대한 탐구를 이어오며 우리가 알아가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주위의 고통과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사회로 가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 고민이 짙게 배어 나오는
연극을 만들고자 한다.
“내일이 있다면, 뭘 하고 싶어요?” 1월에 공연된
작품은 종말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영국 작가
네빌 슈트Nevil Shute의 장편 소설 『해변에서』를
각색한 작품이다. 핵전쟁으로 방사능 낙진이
발생하면서 호주 멜버른에 6개월의 유예 기간이
주어진다. 재난 속에서도 자신만의 삶의 가치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죽음을 선택하는
순간에 다가가며, 재난 위기에서 우리가 어떤
가치를 좇으며 살아가야 하는지 메시지를
전달한다.
서울연극창작센터 시범공연으로 서울씨어터
202에서 재연된 이 작품은 객석 일부를 무대로
활용해 마치 관객이 호주 멜버른에 와 있는 듯한
느낌으로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세상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쾅 소리 한 번 없이 흐느낌으로”라는
마지막 대사를 남기고 암전, 그리고 막이 내린 뒤
관객으로 하여금 극장에서 벗어나 현재의 삶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우면서도 설레는 듯 복잡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정원에 꽃과 식물을 심는 피터와 메리 부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며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내는 모이라와 드와이트, 의문의 신호를 따라
마지막 희망을 찾으러 떠나는 스웨인과 존.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그림자 속에서 담담함
혹은 두려움을 가지고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객석에 남은 관객에게 아래와
같은 질문을 남긴다. ‘만약, 내일 세상이 끝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서동민 작·강훈구 연출로 공놀이클럽이 선보이는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
공놀이로 들여다본 나와 너의 욕망
2월 공연될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은
서동민 작가와 공놀이클럽 강훈구 연출가가
완성한 작품으로, 2024 올해의 연극 베스트 3에
선정됐다. 연극 제작 집단 공놀이클럽은 청소년과
청년, ‘영 어덜트young adult’가 주제인 연극을
제작해왔다. 퀴어 이슈를 섬세하고 탄탄한
드라마로 담아내는 신진 작가 서동민과 함께
공놀이를 시작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우리 삶에 ‘무엇이 필요한지’,
‘왜 필요한지’ 묻는 신나는 공놀이가 되길 바란다.
“있잖아, 아무래도 우리 오빠가 내 립스틱
쓴 거 같아.” 연극은 재개발을 앞둔 2010년
서울 은평구의 연립주택에 사는 가족 구성원
각자가 품고 있는 서로 다른 욕망을 들춰낸다.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가족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오빠의 커밍아웃을 막아야 하는 스무 살
재수생 은빈의 딜레마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윤리적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퀴어 정체성을
가진 인물의 삶을 전통적 가족 서사 안에 녹여낸
이 희곡은, 좋은 삶이 무엇인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삶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한다.
이번 연극에서 배우들은 하나의 배역을
맡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공놀이-연극의
‘플레이어’가 돼 고정된 배역 없이 돌아가며 다역을
‘수행’한다. 시시각각 규칙이 바뀌는 공놀이처럼,
시시각각 역할이 바뀌는 연극놀이처럼,
플레이어들은 딸이 되었다가, 오빠가 되었다가,
다시 엄마가 되었다가, 할머니가 된다.
플레이어들은 젠더 스테레오 타입을 연기하다가,
또 다른 젠더를, 다른 연령을 연기한다. 마치
장난처럼, 젠더와 연령을 유쾌하게 교차하며
횡단하는 배우들의 놀이-플레이는, 서로 다른
입장을 짐작할 수 있는 잊지 못할 연극적 체험이
될 것이다.
연극의 재밌는 포인트 중 하나는 인물들이
순차적으로 의상을 맞바꿔 입는 방식으로 하나의
캐릭터에서 다른 캐릭터로 옮겨 가는 것이다.
재개발과 가족 내 권력에 집착하는 할머니,
아들이 삶의 희망인 홀어머니, 몰래 립스틱을
바르는 서울대생 오빠와 그 가족 안에서 부대끼고
성장해가는 재수생 여동생 역할을 바꿔가며
연기하는 4명의 배우를 통해 관객은 자신과
타인의 굴레와 욕망을 들여다보게 된다.
글 윤혜원 서울문화재단 서울연극창작센터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