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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1월호

지켜줘서 고마운 최순우 옛집 그리움이 깃들인 아름다움
최순우 옛집의 대문은 열려 있다. 한번 들어가볼까 망설이면서 문을 두드리거나 문틈으로 들여다보지 않아도 된다. 동네 주민은 물론 시민 누구나 편히 쉬었다 갈 수 있다. 한적한 성북동에서도 큰길이 아닌 좁은 골목길 안에 있어서일까. 집 안에 들어서는 순간 번잡한 바깥세상과는 완전히 차단되어 다른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자연스럽고 소박하다.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1 최순우 옛집 전경.
2 사랑방 입구. 건너편으로 보이는 용자살창과 뒤뜰이 정갈하다.

최순우 옛집은 그리 크지 않다. 중정을 지나 뒤뜰까지 한 바퀴 돌아 나오면 금방이다. 오히려 크지 않아서 좋다. 그래서 더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다. 처마 밑에 마침맞게 놓여 있는 물확, 돌로 반듯하게 짜인 우물, 원래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커다란 함지박, 대청에 다소곳이 놓인 소반, 부드러운 필체의 현판(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 문을 닫으면 곧 깊은 산중이다)까지… 집안 곳곳에 남아 있는 혜곡 최순우 선생(1916~1984)*의 손길과 뛰어난 안목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원래는 1930년대에 지어진 평범한 한옥이었지만 1976년 선생이 이사 온 후로 손수 만들고 가꾼 것이라고 송지영 학예사(2007년부터 근무)가 설명한다. 뒤뜰에는 무성할 정도로 나무를 많이 심었으며 달항아리를 놓고 보고, 벼루와 수석을 집안 곳곳에 전시하기도 했다고. 덕분에 3월 산수유부터 시작해서 11월까지 모란, 수국, 산국(山菊)까지 갖가지 꽃이 번갈아 피고 있다.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3 지난 10월 김우영 사진전이 열렸을 당시. 공간 사진이 전시 작품인 줄 알고 문의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작품과 공간이 잘 어우려졌다.

가만히 앉아 있다

이 집의 백미는 뒤뜰이다. 방문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조용히 들어와서 뒤뜰 툇마루에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다 가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뒷집의 높은 벽 때문인지 한옥의 곧은 선 덕분인지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옛집에서 활동하다 다른 곳에 취직한 자원활동가들도 직장 생활이 힘들 때면 찾아온다고 한다.
사랑방의 창으로 보이는 뒤뜰은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정갈하고 쾌적한 비례의 용(用)자살창은 그 풍경을 담아내는 훌륭한 액자 역할을 한다. 지난 10월 8일까지 열린 김우영 사진전을 찾은 시민들이 언론에 보도된 공간 사진을 전시 작품인 줄 알고 물어보았을 정도다. 이 공간을 사랑하는 만큼 고민을 많이 하고 준비한 작가 덕분에 공간과 잘 어우러진 전시가 나왔다.

미닫이의 창살은 용자살이 가장 정갈하고도 조용할뿐더러 황금률이 적용된 쾌적한 비례의 아름다움을 갖추어 온갖 잔재주를 부린 어느 완자살창보다 한 수가 높았다… 말하자면 용자살창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세련될 수 있는 소지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
-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中에서


사랑방을 비롯한 집의 내부는 생전에 찍은 사진과 자주 드나들던 분들의 얘기를 참고해 최대한 비슷하게 해놓았다. 원래 사용하던 목가구나 소품도 있지만 선생이 작고하기 전에 책과 소장품을 모두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해, 지인이나 제자들이 기증한 것으로 다시 꾸몄다. 사랑방 뒷문의 ‘오수당(午睡堂)’ 현판은 선생이 좋아하던 김홍도의 글씨를 판각해 만든 것인데, 친필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최순우가 사랑한 전시품>展(2016. 12. 31까지)에 전시 중이다.

사람이 가꾸고, 그를 아끼는 사람이 지킨 집

옛집에 한번 가볼 계획이라면 방문을 서두르는 것이 좋겠다. 11월 30일까지만 문을 열고 4개월간 겨울잠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긴 시간 문을 닫는 아쉬움에서인지 11월에는 다채로운 행사가 준비되어 있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선생이 직접 쓴 글을 전시하는 <밀화빛 따사로움>展이 있고, 미학 강의는 11월 3일부터 매주 목요일 저녁 4회에 걸쳐 진행된다. 100주년 기념 강좌(11월 12일, 19일)도 2회 열린다. 2009년부터는 성북 지역의 문화예술인을 발굴해서 매년 1권씩 책도 내고 있다. 최순우 옛집 외에도 권진규 아틀리에, 도래마을 옛집, 고희동 가옥 등을 운영하는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사무국은 쉴 틈이 없을 듯했다. 작은 공간이 참 알차게 운영되고 있다 싶었는데 역시 ‘사람’이었다. 송지영 학예사는 “저를 포함해 4명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보존의 의미를 알리고 싶어서 이런저런 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면서 “저희는 공간 덕을 굉장히 많이 봐요. 그냥 와서 많이 좋아해주시니까요. 직원들도 다 뭐 하는 걸 좋아하고요.” 라며 미소 짓는다.
2002년 문화계 지인들을 중심으로 후원금을 모아 헐릴 위기에 처한 집을 매입하고 2004년 시민들에게 개방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시민문화유산 1호이지만 시나 구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이들도 많다. 정기후원회원은 800명, 자원활동가는 연 60명 정도. 연간 1만4,000명이 찾는데 재방문율이 굉장히 높다. 다른 공간들과는 다르게 원래 집이었기 때문에 이 집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는 이가 많다. 방명록처럼 받은 엽서를 보여주는데, 시도 있고 스케치도 있고 캘리그래피도 있다. 언뜻 보아도 수준이 예사롭지 않다. “저희도 그냥 보관하고 있기는 아까워서 이 집에 사연이 있는 분들과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전시를 준비하고 있어요.”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中에서


“최순우 선생님에 대한 얘기를 더 많이 하는 공간이었으면 해요. 선생님께서 하셨던 일에 대해서도 같이 나누고요.”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찾아내 알리고 이를 보존하는 데 일생을 바친 최순우 선생의 후손들이 뜻을 모아 지켜낸 집. 그 마음 그대로 그 자리에 있어줘서 사무치게 고맙다.문화+서울

* 본명은 희순(熙淳), 개성 출생으로 1974년부터 1984년까지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냈으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등의 저서가 있다.

글 전민정
객원 편집위원
사진 제공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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