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현실을 다시 묻는 기술,
알랭 티보 예술감독에게 듣다
국내 최대 규모의 융합예술 축제 언폴드엑스UnfoldX가 올해 알랭 티보Alain Thibault를 예술감독으로 선임해 국제적 위상을 높인다. 그는 디지털 현대미술·일렉트로닉 음악·사운드아트 분야에서 30년 이상 활동해온 아티스트이자 기획자로, 2022년 프랑스 정부의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를 받은 인물. 1999년 캐나다 최초의 디지털아트 플랫폼 ‘일렉트라ELEKTRA Montreal’를 설립한 이래, 국제 디지털아트 마켓과 국제 디지털아트 비엔날레를 출범시키는 등 북미 아트 앤 테크놀로지 분야에서 명성을 떨쳐온 그를 만났다.
저는 보통 모든 것을 직접 결정하는 데 익숙한데, 이번에는 고려해야 할 요소가 아주 많거든요. 서울문화재단이 언폴드엑스를 통해 해마다 12점의 신작을 커미션한다는 점도 인상적이고요. 다른 곳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방식이에요. 제 과제는 전시를 아우르는 하나의 아이디어와 명제를 제시하고 각 작품이 그 안에서 자리를 찾도록 하는 거였어요.
AI 때문에 사람들이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무엇이 현실이고 비현실인지 구별하는 데 점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해요. 참여 작품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이런 문제에 질문을 던져요.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문장을 인용하고 싶어요. 작가 아서 C. 클라크Arthur Charles Clarke 아시죠?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과 함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를 만든 사람이죠. 그가 이런 말을 했어요. “충분히 발전한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라고요.
혹시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어요. 실리콘밸리의 몇몇 억만장자가 우리가 시뮬레이션 속에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려고 뛰어난 물리학자와 과학자들을 고용했다는 이야기요. 영화 <매트릭스>처럼요. 양자물리학이 발전하면서 실제로 ‘우리가 시뮬레이션 속에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진지하게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런 모든 아이디어를 갖고 놀아보자는 거예요. 이것은 현실인가? 진실인가? 마법인가? 질문을 던지면서요.
기술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도 점점 커지고 있잖아요. AI 컴패니언Companion을 생각해볼 수 있죠. 사람들이 그런 기술에 굉장히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애착을 갖게 되고요. 기술적이고 수학적인 무언가가 인간에게 이처럼 감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파고들어볼 만한 주제잖아요.
대형 설치 작품 두 점을 언급하고 싶네요. 문화역서울284에 들어가면 바로 보실 수 있는 작품인데요. 디지털아트 신에서는 아주 잘 알려진 료이치 구로카와?川良一의 신작 〈이-엑스/엔디-오〉죠. 세 개의 스크린에서 다양한 생물의 골격 데이터를 알고리즘으로 디지털 처리한 작업이에요. 자연이 만들어내고, 시간에 따라 진화한 골격을 왜곡하고 재조립하면서 자연의 낯선 모습을 끌어내는 것이죠. 질서와 혼돈을 오가는 이미지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대화가 굉장히 흥미로워요.
이진, <모라>, 2026, 설치, 250×210×100cm
문소현, <2026년 꼭 봐야 할 전시>, 2026, 단채널 비디오, 3분
또 하나의 주요 작품은 몬트리올 출신 피터 반 하프턴Peter van Haaften·마이클 몬태나로Michael Montanaro·가넷 윌리스Garnet Willis의 인터랙티브 작품 <온 에어>예요. 관람객이 큰 관을 통해 말하면 커다란 풍선이 점점 부풀어 오르는데요. 소리가 그 안으로 입력되고 어느 순간 풍선이 다시 줄어들어요. 그 소리가 빛을 통해 투사돼요. ‘소리가 빛을 통해 이동한다’는 점이 흥미로우면서 동시에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가 하는 질문과도 연결되죠.
피터 반 하프턴·마이클 몬태나로·가넷 윌리스, <온 에어>, 2025, 인터랙티브 설치, 가변 크기
런던에서 활동하는 알렉산드라 데이지 긴즈버그Alexandra Daisy Ginsberg의 작품도 언급하고 싶네요. 스크린에 가까이 다가가면 뒤쪽에서 픽셀화된 코뿔소가 관람객에게 다가와요. 그렇게 픽셀이 점점 선명해지고, 관람객 주위를 돌아다니다가 다시 멀어져요. 어떻게 보면 기후 변화 부정론자들은 다른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거잖아요. 한편으로는 해마다 수많은 종이 사라지고 있고요. 그럼 그 동물들이 사라지고 난 뒤에 우리는 평생 디지털 이미지에만 의존해서 그들을 기억해야 할까요? 그런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에요.
스코틀랜드 출신 작가 레이철 매클린Rachel Maclean의 <덕>이라는 작품이요. 역대 제임스 본드 배우들을 엮어 만든 일종의 기묘한 이야기인데요. 그들 사이에 이상한 이야기가 펼쳐지다가 어느 순간 모두 자동차 안에 있게 되는데, 차가 충돌하려는 순간 모두 현실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해요. 이 작품을 만들 당시에는 이런 이미지를 만들기가 굉장히 어려웠어요. 딥페이크를 이용한 작품이거든요.
레이철 매클린, <덕>, 2023, 단채널 비디오, 16분
또, 에스토니아 출신 아티스트 듀오 바르바라&마르Varvara & Mar의 <건초더미에서 바늘 찾기>도 소개하고 싶어요. 건초더미 안에 로봇이 있는데요. 이 로봇의 임무는 이 수북한 건초더미 속에서 바늘 하나를 찾는 거예요. 로봇이 마침내 바늘을 찾아내면 종이 울려요. 이 작품은 기술 사용에 일종의 부조리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거죠.
바르바라&마르, <건초더미에서 바늘 찾기>, 2024, 가변 크기
그 공간만의 특징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최대한 활용할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해요. 저는 이 역사적인 건축물의 특징을 숨기려고 하지 않았어요. 가벽을 새로 만들기보다는 기존 방을 그대로 활용해서 그 안에 작품을 놓았어요. 그러면 작품이 공간에 잘 통합될 수도 있고, 반대로 큰 대비가 생겨날 수도 있어요. 문화역서울284의 붉은 카펫이 깔린 역사적인 방에 들어갔다가 건초더미 안에서 로봇이 바늘을 찾고 있는 장면을 맞닥뜨리는 거죠. 그런 식으로 통합과 대비를 모두 활용하려고 해요.
저는 예술에서 AI를 사용하는 방식에 관심이 많아요. 더불어 저는 AI가 두렵지 않지만, 사람들이 왜 AI를 두려워하는지도 이해할 수 있고요. 예술계에는 AI를 완전히 반대하는 사람들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죠. AI에 압도되지 않고 통제하는 게 중요해요. 아이디어는 제가 갖고 있으니, AI는 그걸 발전시키는 협업자죠. 때로는 ‘아, 이런 건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 방향으로 가볼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게 하기도 하고요. AI나 새로운 기술을 낯설게 여기는 관람객도 이번 페스티벌에서 ‘아, 여기에는 뭔가 있구나. 나도 한번 탐구해볼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되기를 바라요.
인간은 언제나 자신에게 주어진 도구를 이용해 예술을 만들어왔다는 점을 이해하면 좋겠어요. 사진이 등장했을 때도 똑같은 이슈가 있었어요. 일부 예술가들이 사진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걸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죠. 비디오도 예술로 인정받기까지 시간이 걸렸어요. 그래서 지금 우리는 여전히 전환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언젠가는 이런 기술들이 아주 자연스럽고 투명한 것이 될 거예요.
여기에는 ‘디지털화된 시각예술’과 ‘디지털아트’의 차이도 있어요. 또 예술과 엔터테인먼트의 차이도 있고요. 요즘 상업적인 몰입형 전시나 프로젝션 매핑 같은 것이 매우 많잖아요. 저는 그런 것을 ‘관광용 매핑touristic mapping’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스튜디오나 기업이 가족 단위 관람객을 대상으로 이런 것을 제작하죠. 그 중간 지점에는 디자인도 있고, 여러 영역의 경계에 걸쳐 있는 것들이 있고요.
저는 때때로 그 중간 영역에 있는 작가들을 프로그램에 포함하기도 해요. 일반 대중이 좀 더 도전적인 작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작품은 첫 번째 층위에서만 봐도 즐길 수 있어요. 굉장히 재미있고, 로봇과 춤을 출 수도 있죠. 하지만 그 너머에는 분명 또 다른 무언가가 있어요. 여러 층위에서 읽을 수 있는 작품을 보여주고 싶어요.
컬렉터에게서도 똑같은 현상을 볼 수 있어요. 디지털아트 작품만을 판매하는 갤러리도 있고, 젊은 컬렉터들은 훨씬 모험적이에요. 기술을 두려워하지 않죠. ‘이 작품을 소장할 수 있어. 기술도 이해할 수 있어’라고 생각해요. 반면 나이가 많은 컬렉터들은 훨씬 주저해요. ‘이걸 사도 될까? 잘 모르겠는데. 기술적인 문제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우리는 지금 전환기에 있어요. 아마 25년, 30년 뒤에는 달라질 거예요. 물론 유일성이라는 문제도 남아 있어요. 복제할 수 없는 유일한 오브제라는 개념이죠. 디지털아트를 어떻게 판매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지만, 컬렉터와 미술관을 위한 프로토콜을 제대로 개발해서 보여주는 작가들도 있어요.
사실 예술 외에는 관심이 많지 않아요. 그게 문제가 될 수도 있겠죠. 저는 스크린 앞에 앉아서 기계들과 작업하는 걸 정말 좋아해요. 작곡을 하고 싶으면 바로 스튜디오에 가서 곡을 쓰기도 해요. 저는 이런 작업을 일이라고 느끼지 않아요. 제 인생이죠.
동아시아에서 한국이야말로 이 분야의 흥미로운 작가를 가장 많이 찾을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해요. 그중에서도 언폴드엑스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고요. 어떤 작가들이 실제로 부상할 수 있도록 해주니까요. 이 분야의 창의성을 자극하는 좋은 촉발점이죠. 대중의 접근성을 높이면서도 가능한 한 최고의 퀄리티를 보여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글 백아영 미술 저널리스트 | 사진 전강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