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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토크

5월호

에세이 요즘 우리는
하루 종일
맑음

아이의 하원 길, 아직 해가 기울지 않은 하늘. 낮의 온기가 완전히 식지 않아 공기는 부드럽게 데워져 있다. 아이는 집에 가기 전 아이스크림을 사달라며 보챈다. 꼼지락거리며 움직이는 작은 손짓이 사랑스럽다. 느슨한 평온. 봄이 왔다는 걸 온몸으로 체감하는 순간이다. 아이를 키우니 계절감이 달라진다. 예전에는 계절이 그저 옷의 두께를 바꾸는 일이었다면, 지금의 계절은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의 온도로 스며든다

워킹맘인 나는 아이를 비교적 이른 시기에 어린이집에 보냈다. 아이는 연장반까지 하루를 온전히 기관에서 보낸다. 밀린 일을 겨우 매듭짓고 숨이 차게 달려가면, 늘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건 우리 아이였다. 적막한 공간, 그 안에 조용히 남아 있는 작은 등을 마주할 때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든다. 그것은 어쩌면 죄책감에 가까운 것이어서, 해가 서둘러 저무는 계절일수록 더 짙어진다. 가을과 겨울, 어둠이 빠르게 내려앉는 날이 되면 그 마음 또한 유난히 오래 머문다.

그런데 봄이 오면, 모든 감각이 달라진다. 하원 길에 아직 해가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묘하게 들뜬다.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돌아오는 길, 고층 아파트 사이로 번지는 빛이 우리를 감싼다. 발걸음은 조금 느려지고, 웃음은 이유 없이 번진다. 따뜻하게 남아 있는 햇살이 어깨 위에 내려앉을 때면, 그 순간만으로도 충만해진다. 사소해 보이는 이 빛의 차이가, 아이와 보내는 나날을 한층 더 찬란하게 만든다

아이를 키우기에는 봄이 좋다. 겨울 동안 우리는 주로 실내에 머문다. 살을 에는 추위를 피해 아웃렛이나 키즈카페 같은 공간을 전전한다. 같은 장소를 반복해서 찾다보면 아이는 금세 따분해하고, 밀폐된 공간에서는 감염에 대한 걱정도 따라온다. 무엇보다 ‘오늘은 어디를 가야 할까’ 끊임없는 고민이 육아를 은근히 지치게 한다.

하지만 봄은 다르다. 집 앞 공원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단지 내 놀이터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자연스럽게 흐른다.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 바람은 은은하게 번지고, 그 사이를 스치는 꽃 냄새. 봄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특별한 계획 없이도 충분히 낭만적인 하루를 허락하는 계절이다

아이를 키우며 또 하나 달라진 것이 있다. 바로, 축제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주말이 오면 자연스레 고민이 번진다. 아이를 데리고 어디로 향해야 할까. 입장료에 식사까지 더하면 하루에 10만 원은 훌쩍 소비하는 요즘, ‘하루를 보내는 일’은 생각보다 큰 비용을 동반한다. 그런 일상에서 축제는 더없이 반가운 선택지로 다가온다. 무료로 열리는 공연, 몸으로 경험하는 각종 프로그램, 가볍게 손에 쥘 수 있는 먹거리들. 그리고 해가 기울고 불꽃이나 드론이 하늘을 밝히는 순간까지 더해지면, 이보다 완벽할 순 없다

인천의 신도시, 송도에 살고 있는 나는 계절이 바뀔 즈음이면 자연스레 이곳에서 열리는 축제들을 기다리게 된다. 송도해변축제·송도맥주축제, 이름만 들으면 어른들을 위한 자리처럼 느껴지지만, 막상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가족 단위 풍경이 더 익숙하게 펼쳐진다. 푸드트럭 앞에서 아이와 함께 음식을 고르고, 음악이 흐르는 공간에 나란히 앉아 시간을 보낸다. 30개월이 된 우리 아이는 태어나 지금까지, 해마다 이 축제들을 함께 지나왔다. 지난 주말에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인들이 주변에서 열린 축제를 다녀온 모습을 봤다. 같은 도시 안에 있으면서도 이런 소식을 놓쳤다는 사실이 괜히 아쉬워, 뒤늦게 관련 정보를 찾아보며 내년을 기약한다. 부모가 되니, ‘어디에서 무엇이 열리는지’를 아는 일이 중요해진다

이제는 여행을 떠나는 방식도 달라졌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그곳에서 열리는 축제를 찾아보는 것. 최근 지방으로 출장을 가게 됐을 때도 그랬다. 아이를 함께 데려가기로 마음먹자마자, 가장 먼저 ‘논산딸기축제’를 검색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스쳐 지나갔을 정보다. 숙소를 고르는 기준조차 축제와의 거리로 옮겨갔다. 그렇게 이어진 하루는 특별한 장면을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음악을 사랑하고, 그것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어린아이와 공연장을 찾는 일이 아직 쉽지 않다. 숨을 죽이고 앉아 무대를 바라보는 시간은, 우리에게는 머나먼 풍경이다. 그래서인지 더욱, 자유롭게 뛰놀며 몸으로 감각할 수 있는 축제의 공간이 고맙게 느껴진다.

도시와 지역의 축제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는 것을, 아이를 키우며 비로소 알게 됐다. 축제는 한 도시의 리듬을 바꾸고, 사람들의 일상에 작은 들뜸을 선사한다. 특히 가족에게 축제는 곧 추억이다.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다. 같은 공간에 머물며 같은 공연을 보고, 음식을 나눠 먹고, 함께 웃는 일. 그런 순간들이 겹치며 어느새 우리의 시간이 된다. 봄은 그런 시간을 가장 자연스럽게 허락하는 계절이지 않은가. 5월, 문화로 언제나 풍성한 서울 곳곳에서도 다양한 축제가 펼쳐질 것이다. 아이의 손을 잡고,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하러 가야겠다



장혜선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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