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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토크

10월호

파리가을축제로 비춰 보는
도시와 예술

서울에서 올가을 펼쳐지는 공연과 축제를 하나로 연결하는 서울어텀페스타가 출범한다.
50년 넘게 시민의 가을을 책임져온 파리가을축제처럼.

서울문화재단이 올가을 서울에서 열리는 공연과 축제를 하나로 잇는 공연예술 시즌 브랜드 ‘서울어텀페스타Seoul Autumn Festa’를 출범한다. 40일간 서울의 주요 공연장과 서울광장·청계천·DDP 등에서 117편의 공연과 축제가 펼쳐진다. 서울문화재단은 내년에는 70일간 150여 편, 내후년에는 100일간 200여 편으로 기간과 공연 및 축제의 수를 확대할 계획이다. 또한 향후 해외 공연 초청 및 공연예술의 국제 창작 플랫폼으로 기능하겠다는 포부다.

서울문화재단이 서울어텀페스타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은 것은 프랑스의 파리가을축제Festival d’Automne a Paris다. 파리가을축제는 프랑스에서 여름에 열리는 아비뇽 페스티벌과 쌍벽을 이루는 공연예술 중심 축제로 손꼽힌다. 하지만 규모와 명성에 비해 우리나라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파리가을축제는 거점 공연장 없이 파리시립극장Theatre de la Ville을 비롯해 파리 시내·외에 있는 다양한 공공 극장과 협력해 페스티벌을 치르는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파리가을축제의 프로그램이 공연장의 시즌에 포함되기도 한다. 파리 시내는 물론 수도권Ile-de-France 전역에 공연장이 흩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9월부터 12월까지 4개월에 걸친 장기간 열리기 때문에 아비뇽 페스티벌 같은 떠들썩한 축제 느낌은 없지만 파리의 일상에 녹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대체로 60개 장소에서 80편 이상의 공연(500회)이 열리며, 20만 명 넘는 사람들이 참여한다. 올해는 9월 4일부터 연말까지 25편의 신작을 포함한 83편의 공연이 열린다.

파리가을축제는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1969~1974년 재임) 집권 시기인 1972년 시작됐다. 퐁피두 대통령은 당시 현대예술 분야에서 급부상하는 미국 뉴욕이나 영국 런던을 의식해 파리를 세계 문화 중심지로 재정립하고자 했다. 그 일환으로 공연예술축제 설립이 추진됐고, 미셸 기가 파리가을축제 창설을 이끌었다.

미셸 기는 부유한 사업가 출신으로 저명한 근현대 미술 수집가이자 무용과 오페라 애호가였다. 파리국제무용제의 고문이던 그는 폴 테일러·머스 커닝햄·얼윈 니콜라이·트와일라 타프 등 미국 현대무용가를 프랑스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1974년부터 1976년 사이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 정부에서는 문화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올해 파리가을축제에서 공연한 윌리엄 켄트리지의 작품 <Faustus in Africa!> ⓒFiona MacPherson

국경을 뛰어넘는 문화 교류의 장

앞서 파리에는 유네스코 산하 국제극예술협회International Theatre Institute, ITI가 주최하던 세계연극제Theatre of Nations가 1957년 시작돼 세계 각국의 연극을 선보였다. 당시 서구에서 처음으로 동독의 베를리너 앙상블, 소련의 모스크바 예술극장, 중국의 경극, 일본의 가부키 등이 소개되는 등 세계 연극계의 교류에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세계연극제는 1960년대부터 위축되더니 1971년을 끝으로 중단됐다. 이 때문에 파리가을축제는 파리에서 열리던 세계연극제 같은 위상을 가지기를 기대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파리가을축제가 단순히 연극제를 표방하는 것은 아니다. 창설부터 연극·무용·오페라·음악 등 여러 장르를 다루는 종합 축제를 지향했다. 미셸 기는 “파리가을축제는 국경을 뛰어넘어 문화 교류의 장場을 이루고, 창의적인 작품을 접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출발했다”고 말한 바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파리가을축제는 조형예술·영화·현대문학 등으로도 스펙트럼이 확장됐으며,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융복합을 중시하게 됐다. 이를 토대로 세계 현대예술 분야의 교류와 실험적 창작을 주도하는 플랫폼으로서 자리매김했다.

파리가을축제는 미셸 기가 1990년 별세한 이후 알랭 크롬베크가 총감독을 이어받아 1993년부터 2009년까지 이끌었다. 크롬베크는 미셸 기가 문화부 장관을 할 때 파리가을축제 총감독을 대신한 바 있으며, 1985년부터 1992년까지 아비뇽 페스티벌 예술감독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리고 크롬베크의 별세 이후 2009년과 2010년엔 연극과 무용 분야 예술감독인 마리 콜린과 음악 분야 예술감독인 조세핀 마르코비츠가 공동으로 총감독 대행을 맡았다.

이어 연출가 에마뉘엘 드마르시 모타가 2011년 5월 취임해 지금까지 총감독을 맡고 있다. 에마뉘엘 드마르시 모타는 프랑스 연극계의 총아로, 2008년부터 파리시립극장 극장장도 맡고 있다. 50년 넘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총감독이 겨우 세 명이라는 점은 파리가을축제의 정체성과 운영의 안정성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 수많은 축제가 만들어졌다가 지자체 단체장 교체를 비롯한 여러 이유로 성격이나 이름이 바뀌는가 하면, 아예 폐지되는 사례가 허다한 것과 비교된다.

파리가을축제는 1970년대엔 미국 현대예술을 대표하는 예술가들을 유럽에 꾸준히 소개했다. 작곡가 존 케이지, 안무가 머스 커닝햄, 작곡가 겸 보컬리스트 메러디스 몽크 등 미국 포스트모더니즘 예술가와 조지 발란신이 이끄는 뉴욕시티발레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 작곡가 피에르 불레즈와 프랑스에 거주하는 아일랜드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도 파리가을축제가 사랑한 예술가였다.

이후 파리가을축제는 폴란드 출신으로 20세기 연극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연출가 타데우시 칸토르 등 동구권 예술가를 꾸준히 소개했다. 이와 함께 일본·중국·이란 등 서구에 낯선 아시아의 현대예술은 물론, 전통예술도 선보이는 세계 공연예술 교류의 창구로 자리매김했다. 한국도 2002년 파리가을축제의 주빈국으로 국립국악원의 궁중 및 민속무용 공연을 비롯해 사물놀이, 판소리 다섯 마당 완창, 은율탈춤·하회별신굿탈놀이, 대동굿, 인형극 등을 선보인 바 있다. 그리고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를 맞아 2015년 파리가을축제는 국가무형유산 서해안배연신굿 및 대동굿 예능보유자 김금화, 판소리 명창 안숙선, 현대음악 작곡가 진은숙, 그리고 현대무용가 안은미 등 한국 여성 예술가 네 명을 초청했다.

더욱 실험적이고, 더욱 대중과 가깝게

파리가을축제는 2012년 에마뉘엘 드마르시 모타 총감독 취임 이후 새로운 변화를 추구했다. 축제가 주목하는 젊은 예술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축제와 대중의 거리를 좀 더 좁히는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관객은 실험을 반복하며 성장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목격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이를 위해 파리가을축제는 파리 시내에 집중돼 있던 공연의 범위를 수도권으로 확장했다. 이와 함께 청소년과 장애인을 위한 할인 제도를 시행하는 한편 학교와 연계한 워크숍을 시행하는 등 젊은 층을 적극적으로 유입하고 있다.

또한 책임 있는 페스티벌을 표방한 파리가을축제는 재공연 가능성과 유럽 투어를 염두에 둔 작품을 우선해 프로그래밍하고 있다. 유통을 통한 생태·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한 셈이다. 실례로 2015년 초청된 안무가 안은미는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사심없는 땐쓰>,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땐쓰> 등 ‘몸의 땐스’ 3부작을 파리시립극장에서 선보여 호평을 받았고, 이는 활발한 유럽 투어로 이어졌다.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현대 예술계에 큰 영향을 끼친 거장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선보이는 기획 프로그램 ‘초상Portraits’을 신설한 것이다. 프랑스 안무가 마기 마랭을 시작으로 미국 연출가 로버트 윌슨, 이탈리아 연출가 로메오 카스탈루치와 이탈리아 작곡가 루이지 노노 등 2012년부터 매년 적게는 한 명, 많게는 세 명의 예술가가 선정됐다. 한국 작곡가 진은숙도 2015년 초청돼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초상’은 거장의 대표작과 신작을 통해 창작 여정과 예술 세계를 소개해 관객에게 폭넓은 이해를 제공하는 한편, 축제의 국제적 위상과 실험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는 프랑스 안무가 프랑수아 셰뇨와 미국 앙상블 잭 콰르텟이 선정됐다. 두 예술가 외에 올해 파리가을축제는 윌리엄 켄트리지·크리스티앙 리조·포스탱 린예쿨라·니나 라이스네 등 세계적인 거장을 비롯한 다양한 배경의 예술가가 관객을 만난다.

올해 출범한 서울어텀페스타가 파리가을축제처럼 될 수 있을까. 파리가을축제의 작품은 개막 전부터 매진되는 경우가 많다. 반세기 넘게 지속되며 현대예술의 방향을 제시해온 파리가을축제에 대한 높은 신뢰도 덕분이다. 그 이름은 하나의 브랜드이며, 파리의 가을을 상징한다. 전 세계적으로 K-컬처에 주목하는 요즘, 그 바탕이 되는 K-기초예술을 내세운 서울어텀페스타의 등장은 그 자체로 반갑다. 서울어텀페스타는 서울시민에게 K-기초예술을 일상의 감각으로 느끼게 만드는 한편, 관광객에게 서울의 매력을 각인시키는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서울의 가을을 대표하는 축제가 되려면 파리가을축제처럼 정체성을 가지고 지속되는 것이 필수다.

장지영 국민일보 선임기자, 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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