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밖도 따뜻해
추천 문화 공간
계절이 춥다고 이불만 꽁꽁 싸매고 있을쏘냐. 추위를 피해 멋진 공간으로 이색 문화 탐방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유난히 추운 올겨울,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명제를 깨고 가볼 만한 서울의 문화생활 공간을 소개한다. ‘숨어 듣는 명곡’처럼,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까운 서울 곳곳의 숨은 문화생활 공간으로 추위를 피해 문화 탐방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방학을 맞아 집에 있는 것이 지루해진 학생과 부모님, 데이트 장소를 찾아 나선 연인 등 다양한 니즈를 가진 사람들이 이 공간을 방문한다면 겨울날의 꽤 그럴싸한 멋진 하루를 보낼 수 있을 테다.
다양한 만화책을 구비하고 있는 그래픽 바이 대신
짜장면이 아닌 피자를 먹으며 만화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새롭게 오픈했다. 서울 송파구 위례에 있는 그래픽 바이 대신은 이태원 경리단길에 있던 만화방 ‘그래픽’의 2호점이다. 이태원 그래픽은 어른들을 위한 만화방으로 주류 주문이 가능하고 미성년자의 입장이 제한된다. 반면 그래픽 바이 대신은 어린이가 방문할 수 없다는 1호점의 아쉬움을 보완, 모두가 입장이 가능한 공간으로 문을 열었다. 유동 인구가 많은 핫플레이스는 아니지만, 주거 지역인 위례에 문을 연 만큼 그래픽 바이 대신 지상 2층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구성됐다.
만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래픽 바이 대신을 찾을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극장을 방불케 하듯 층층이 쌓인 안락한 소파, 너른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에 따라 달라지는 낮과 밤의 분위기, 바깥바람을 쐬며 ‘불멍’ 할 수 있는 외부 베란다까지. 멋진 인테리어를 갖춘 공간에 방문하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탄할 요소들이 그래픽 바이 대신을 가득 채우고 있다. 웹툰·쇼트폼 콘텐츠에 길들어 책을 읽기 두려워진 사람이라도 책을 ‘읽기’보다 만화를 ‘보고’, 공간을 ‘보는’ 휴식 시간을 가져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픽 바이 대신 공간 중앙의 홀 테이블은 안락한 소파를 구비해 특히 인기가 높다
추위에 약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따뜻한 곳으로의 여행은 어려운 시민을 위해 서울식물원이 온실에서 즐기는 약 10주간의 겨울 이색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시작된 서울식물원 윈터 페스티벌은 온실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두 가지 전시로 구성된다. 지중해관에서는 ‘겨울 요정이 나타났다!’라는 주제의 크리스마스 특별 전시가 한 차례 열렸고, 열대관에서는 ‘오늘 난’이라는 주제 아래 2월까지 열대 난초 전시가 진행된다.
‘오늘 난’ 전시에서는 반다·카틀레야·온시디움·덴드로비움·팔레놉시스·파피오페딜룸 등 다양한 색상의 난초 60여 종을 감상할 수 있으며, 동남아 지역의 전통 공예품을 활용한 포토존이 마련돼 공간을 찾는 즐거움을 더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열대 난초 중 가장 아름답고 화려하다는 반다를 만나볼 수 있다. 국내에서는 만나기 쉽지 않은 난초로 이번 전시를 위해 태국에서 반다 28품종, 희귀 난초 16품종 등 모두 600여 개체를 도입해 선보이고 있다. 춥지만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싶은 이들, 두꺼운 외투를 잠시 벗어두고 조금 일찍 봄을 만나길 원하는 이들에게 서울식물원 방문을 추천한다.
화려한 색감의 난초를 즐길 수 있는 전시가 열리는 서울식물원
2019년 6월 문을 연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조선 시대 신유박해1801를 시작으로 100여 년에 이르는 기간 박해 받은 한국 천주교회 최대의 순교성지인 서소문 밖 네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아픈 역사를 지닌 공간이지만 오픈 초창기부터 MZ세대의 숨겨진 인증샷 명소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박물관은 잊힌 죽음의 형장刑場에서 새로운 문화와 이야기가 사람들과 함께 생동하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웅장한 건축에 압도되고 싶다면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 꼭 들러보자.
박물관의 여러 공간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공간은 콘솔레이션 홀, 하늘광장, 하늘길이다. 위로를 뜻하는 영단어 콘솔레이션consolation에서 이름을 따온 이 공간은 고구려 무용총의 내부 구조에 모티프를 두었고, 고분벽화를 현대적으로 구현한 사면 영상이 송출되고 있다. 콘솔레이션 홀 상단 벽면을 둘러싼 겸재 정선 <금강내산전도> 영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하게 정화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하늘광장은 어두운 콘솔레이션 홀과 마주 보며 대조를 이룬다. 붉은 벽돌의 거대한 벽면 앞에 서서 ‘인생사진’을 남기는 경험도 놓쳐선 안 된다. 하늘광장 왼편에 숨어 있는 공간인 하늘길의 경사면을 따라 펼쳐지는 미디어아트, 그 길의 끝에서 만날 수 있는 야외의 푸른 하늘도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길 것이다.
낮은 짧고 밤이 길어서인지, 손발을 꽁꽁 얼게 만드는 추위 때문인지 유난히 길게만 느껴지는 올겨울. 지면에 소개한 공간을 둘러보며 즐거움, 따뜻함, 차분함이 가득한 계절의 순간을 만끽해보시기를 바란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의 보이드 공간
글 안미영 서울문화재단 홍보마케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