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춤추고 노래하며 무용&전통예술
상대적으로 공연계 비수기인 연초라지만 무용과 전통예술 판은 북적북적 활기를 띤다.재기 발랄한 신작과 믿고 보는 레퍼토리를 두루 살펴봤다.
양금 연주자 윤은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이하 창작산실)이 열리는 1월부터 3월은 공연계에서 장르마다 주목할 만한 신작을 볼 수 있는 축제 시즌으로 통한다. 올해는 연극·창작뮤지컬·무용·음악·창작오페라·전통예술 등 6개 장르 31편을 선보인다. 특히 2월은 다른 장르에 비해 공연 기간이 짧은 무용과 전통예술 작품을 집중적으로 볼 수 있는 달이다. 무용 7편 가운데 5편, 전통예술 5편 가운데 4편 공연이 이달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우선 무용 장르에서 안무가 류장현이 이끄는 현대무용단 류장현과 친구들 <GRAVITY>(2월 7일부터 9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가 포문을 연다. 중력·무게·끌림을 뜻하는 제목답게 무용수 간 힘의 상호작용을 통해 움직임의 확장을 보여준다. 이어 최근 한국 창작춤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주는 99아트컴퍼니 <피안의 여행자들>(2월 13일부터 16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이 관객을 찾아온다. 안무가 장혜림은 제의적 움직임과 목소리를 통해 인간의 몸과 만물의 근원인 대지의 연결을 추구한다.
창작그룹 괘념치5 thoughts go <로망Roman 노망老妄>(2월 21일부터 23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은 노년의 그림자 속에서 잊힌 로망의 빛을 되찾으려는 몸짓을 담았다. 이번 창작산실 무용 작품 가운데 유일한 발레 장르인 와이즈발레단 <갓세렝게티God : Serengeti>(2월 28일과 3월 1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는 인간 진화의 산물인 문명과 모든 것을 통제하는 신神의 대립이라는 상상에서 출발했다. 현대 사회의 각종 문제가 신을 넘어서려는 인간의 위대함과 무모함을 동시에 보여준다는 주제의 컨템퍼러리 발레다. 마지막 작품인 언노운피에스UNKNOWNPS의 <TIME IS SPACE SPACE IS TIME>(2월 28일부터 3월 2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은 신체와 오브제 그리고 빛을 이용해 시간, 공간, 기억,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감각적으로 펼친다.
창작산실 전통 장르에선 김준수·유태평양 등 스타 소리꾼을 내세운 아정컴퍼니 남도 선소리-시를 읊다 <님이 침묵한 까닭?-중中머리에 대하여>(2월 7일부터 9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가 먼저 관객을 만난다. 다소 긴 제목의 이 작품은 한용운 ‘님의 침묵’, 윤동주 ‘별 헤는 밤’, 김소월 ‘진달래꽃’ 등 근현대 시인 7명의 시를 육자배기 등 남도 장단과 소리로 부른다.
이어 양금 연주자 윤은화가 <구라철사금歐羅鐵絲琴: 打>(2월 8일과 9일 구름아래소극장)을 선보인다. ‘구라파(유럽)에서 들어온 쇠줄로 된 악기’라는 뜻의 구라철사금은 채로 줄을 두드리며 연주하는, 국악기 유일의 타현악기 양금의 다른 이름이다. 이번 공연에선 현악기의 면모를 강조한 기존 공연과 달리 타악기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국악그룹 우리소리 바라지의 창극 <돈의 신: 神>(2월 14일과 15일 서울남산국악당)은 평생 가난에 허덕이다 죽은 남자가 다시래기(상가 마당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며 연극을 꾸며 노는 놀이) 도중 되살아나 동네 사람들과 돈의 신을 불러내려다 실패하는 소동을 그렸다. 그리고 연희 연출가 임영호는 <연희물리학 ver.1 ‘원’>(2월 14일부터 16일까지 구리아트홀 코스모스대극장)에서 한국의 전통과 현대 물리학을 접목한 의례를 선보인다. 현대적인 사운드와 움직임을 담은 연희의 신명으로 일상의 번잡함을 해소한다.
창작산실 외에도 전통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공연 두 편이 2월에 펼쳐진다. 전통 연희를 전문으로 하는 국립정동극장 예술단의 <광대>(2월 16일까지 국립정동극장)와 민속음악의 보존과 계승을 맡은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왔소! 배뱅>(2월 12일부터 16일까지 국립국악원 우면당)이다.
국립정동극장 전통연희극 <광대> ⓒ국립정동극장
<광대>는 1902년 국내 첫 서양식 극장으로 설립된 협률사의 첫 공연 <소춘대유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기록상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유료 공연인 <소춘대유희>는 정재·민속춤·판소리·탈춤·땅재주 등 연희를 다채롭게 선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광대>는 예술단이 <소춘대유희> 복원 공연을 준비하던 중 극장에 100년 넘게 살아온 오방신과 선배 광대 귀신들을 만나며 벌어지는 소동을 악가무희 총체극으로 그려냈다. 2021년 이미 한 차례 <소춘대유희-백년광대>라는 제목으로 선보인 초연 공연에선 멀티 프로젝션 매핑·메시 홀로그램 등 미디어아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지만, 이번엔 기술의 활용보다 연희를 강화해 공연성을 부각했다.
<왔소! 배뱅>은 1인극으로 선보였던 고故 이은관1917~2014(국가무형유산 서도소리 예능보유자) 명인의 배뱅이굿을 민속악단 단원들이 배역을 나눠 참여한 소리극이다. 배뱅이굿은 서도 지역을 대표하는 연극적인 굿놀이다. 문벌 높은 집안의 무남독녀 배뱅이가 상사병으로 죽자 그 부모가 딸의 혼령을 위로하는 굿을 여는데, 엉터리 박수무당이 거짓 넋풀이로 재물을 차지한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9월 초연 당시 웃음과 해학, 풍자가 특징인 민속악의 매력을 잘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아 5개월 만에 재연 무대를 준비하게 됐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왔소! 배뱅> ⓒ국립국악원
글 장지영 국민일보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