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리포트 연결을 만드는 극장들의 플랫폼
한국소극장협회 장경민 이사장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고 관객의 반응도 좋았지만, 몇 주간 예정된 공연이 끝나면 작품도 함께 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서울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지역의 관객을 만나기 어렵고, 지역에서 태어난 작품 역시 대학로나 다른 도시의 무대에 오를 기회가 많지 않다. 어렵게 제작한 작품이 다시 관객을 만나려면 또 다른 공연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장경민 한국소극장협회 이사장이 지금 공연예술 생태계에서 가장 아쉽게 바라보는 장면이다.
그는 이 문제를 새로운 작품을 더 많이 제작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만들어진 좋은 작품이 다른 극장으로 이동할 수 있어야 하고, 한 극장이 가진 가능성이 또 다른 극장과 연결돼야 한다. 서울과 지역의 공연장이 이어지고 그 네트워크가 다시 해외로 확장돼야 작품의 생명도 길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경민 이사장이 한국소극장협회의 정체성을 설명하면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연결’이다.
“협회의 역할을 한마디로 이야기한다면 ‘연결’이라고 생각합니다. 극장과 예술가를 연결하고, 좋은 작품과 관객을 연결하고, 서울과 지역을 연결하는 것이죠. 더 나아가 한국과 아시아의 공연예술 현장을 연결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현재 한국소극장협회에는 전국 약 170개 회원 극장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대학로에 자리한 회원 극장이 약 90개다. 협회는 민간 소극장의 권익과 운영환경 개선뿐 아니라 공연 창작과 유통, 관객 개발, 안전, 국내외 교류 등을 추진한다. 그가 그리고 있는 협회의 미래는 전국의 소극장을 연결하는 ‘극장들의 플랫폼’에 더 가깝다.
연결, 한국에서 아시아로 나아가는 네트워크
공연예술은 작품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유통이 어렵다. 영화나 책은 한 번 만들어지면 여러 도시에서 반복적으로 소비될 수 있지만 공연은 특정한 장소와 시간에 관객을 만나야 한다. 장경민 이사장은 그래서 제작 지원과 함께 작품이 이동할 수 있는 유통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협회가 운영하는 ‘대학로티켓닷컴’은 공연 정보와 관객을 연결하는 플랫폼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는 연결은 관객과 공연을 이어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전국의 회원 극장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 작품이 극장과 도시 사이를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다음 단계다. 협회가 구상하고 있는 ‘대한민국 소극장 365일 공연중’도 이런 생각에서 출발한다.
서울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지역으로 옮겨가고, 지역에서 태어난 작품이 서울과 다른 도시의 관객을 다시 만나는 구조다. 소극장 역시 공간을 빌려주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작품을 선택하고 예술가를 발굴하며 제작과 유통에 참여해야 한다. 소극장이 창작과 유통의 플랫폼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 장 이사장의 생각이다.
장경민 이사장이 협회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업으로 꼽는 것은 ‘디페스타D.FESTA’다. 20년 동안 이어져온 디페스타는 소극장을 중심으로 작품과 관객을 만나게 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국내 소극장 축제를 넘어 아시아 공연장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것이 새로운 목표다. 올해는 중국과 일본의 작품, 한국과 대만 예술가의 공동 제작 등을 포함해 7편을 선보일 예정이다.
같은 기간 일본 도쿄에서도 디페스타가 열리며 국내 작품을 해외로 확장하는 시도도 이어진다. 단순히 해외 공연을 한국으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국내 작품 역시 다른 나라의 무대로 이동하도록 만드는 데 의미가 있다. 축제를 매개로 극장과 극장이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일본·중국·대만·태국 등 아시아 각국의 소극장과 공연예술 관계자가 작품을 교환하고 공동 제작할 수 있는 ‘Asia Performance Commons (APC)’도 추진하고 있다. 디페스타가 작품과 예술가가 실제로 만나는 축제의 장이라면, APC는 그 만남을 일회성 행사로 끝내지 않고 극장 간 상시적 관계로 이어가기 위한 네트워크다. 과거 국제 교류가 해외 작품을 국내로 일회성 초청하는 방식에 가까웠다면 APC는 공연장 간 장기적인 관계를 만드는 데 초점을 둔다. 한국 작품이 아시아 도시의 극장으로 이동하고, 해외 예술가와 한국 예술가가 만나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구조다. 장경민 이사장이 말하는 ‘연결’이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이다.
“해외 작품을 한국에 한 번 초청하고 끝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한국의 작품이 아시아로 가고, 아시아의 예술가가 한국 예술가들과 만나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결국 극장과 극장이 계속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이러한 방향은 장경민 이사장이 소극장을 바라보는 관점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소극장이 단순히 공간을 임대하는 사업자로만 인식돼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각각의 극장이 자신의 취향과 프로그램, 예술적 방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강조하는 “소극장은 부동산이 아니라 콘텐츠이고, 대관 공간이 아니라 창작의 주체여야 한다”는 말도 이런 생각에서 나왔다.
어떤 작가를 발굴하고 어떤 연출가와 함께하며 어떤 작품을 관객에게 소개할 것인지에 대한 극장만의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작은 서점마다 주인의 취향이 다르고 미술관마다 큐레이션이 다르듯 소극장도 자신만의 색깔을 가져야 한다.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가 가능성을 시험하고 새로운 작품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할 수 있는 곳도 소극장이다. 그는 대학로를 “아직 완성되지 않은 가능성을 만나는 장소”로 바라본다.
극장을 살리고 공연을 연결하는
그러나 소극장이 창작 플랫폼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극장이 지속될 수 있어야 한다. 회원 극장들이 가장 많이 전하는 이야기도 “이 극장을 앞으로 계속 운영할 수 있을까”라는 현실적인 고민이다. 임차료와 인건비·관리비는 계속 오르고 조명과 음향·무대 시설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도 만만치 않다. 장경민 이사장은 이를 개별 극장의 경영 문제가 아니라 공연예술 생태계의 구조적 문제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형 창작극장은 민간 소극장의 임차료를 지원하고 공연 단체가 합리적인 대관료로 극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다. 장경민 이사장은 이 사업의 의미를 “공간을 지키는 것도 창작 지원이라는 사실을 정책적으로 인정한 것”에서 찾는다. 앞으로는 단순한 임차료 지원을 넘어 좋은 작품과 예술가를 키우는 창작 거점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본다.
플랫폼이라는 생각은 개별 극장을 넘어 대학로라는 거리 전체로 확장된다. 대학로를 다른 거리와 구별하는 가장 강력한 콘텐츠는 수많은 극장과 매일 이어지는 공연이다. 하지만 그 많은 공연이 각각의 극장 안에 흩어져 있고, 공연에 익숙하지 않은 시민에게 소극장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장 이사장이 대학로 활성화 프로젝트 ‘대-락樂로’에 기대하는 것도 이 간격을 좁히는 일이다.
그는 대학로가 ‘우연히 공연을 발견할 수 있는 거리’가 됐으면 한다. 친구와 거리를 걷다가 재미있는 공연 정보를 보곤 즉흥적으로 극장의 문을 열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연을 보고 곧바로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공연 전후에도 대학로에 머물며 다른 문화와 공간을 경험하도록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대학로 전체가 하나의 공연 플랫폼처럼 작동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올가을 서울어텀페스타와 연계해 추진하는 연극할인페스타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이미 공연을 즐기던 관객에게 단순히 티켓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 공연을 잘 보지 않던 시민에게 “이번에 한번 가볼까”라는 계기를 만드는 데 의미를 둔다. “할인이 목적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평소 연극을 보지 않던 시민에게 처음 극장 문을 열어볼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한 작품을 보러 왔다가 다른 극장을 발견하고, 거리에서 다음 작품을 찾게 만드는 것이다. 장경민 이사장은 “오늘 공연 한 편만 보려고 왔는데 볼 것이 굉장히 많네”라는 생각이 드는 대학로를 기대한다.
아직 대학로 소극장에 한 번도 들어가보지 않은 시민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는 연극을 잘 알아야 소극장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학로를 걷다가 제목이 재미있어서, 포스터가 마음에 들어서 극장의 문을 열어도 충분하다. 배우의 숨소리와 작은 표정의 변화까지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소극장 공연만의 매력이다.
그러나 관객에게 공연을 사랑해달라고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극장과 창작자가 먼저 관객이 다시 오고 싶은 극장,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관객을 만드는 것 역시 결국 좋은 작품과 좋은 극장을 만드는 일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관객이 또 다른 극장과 작품을 발견하도록 연결하는 것이 협회의 역할이다.
장경민 이사장이 꿈꾸는 한국소극장협회의 미래는 결국 다시 ‘연결’이라는 단어로 돌아온다. 전국에 흩어진 작은 극장이 연결되고 한 극장에서 태어난 작품이 다른 도시로 이동하며, 그 연결이 다시 아시아의 공연장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나라의 예술가들이 만나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관객은 또 다른 작품과 극장을 발견한다. 극장과 극장, 창작자와 관객, 도시와 도시를 이어주는 공연예술 플랫폼, 그것이 한국소극장협회가 만들어가고 있는 다음 무대다.
글 이규승 서울문화재단 시민문화협력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