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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7월호

넷플릭스 시리즈 〈러브, 데스+로봇〉의 ‘히바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앞으로도 ‘메타버스’라는 말이 쓰일까?

앞으로도 메타버스라는 말이 쓰일까? 우리는 이미 이런 말을 수없이 들어왔다. UCC, 창조경제, 4차 산업혁명…. 온 세상이 똑같이 쏟아내다가 5년도 못 가 자연스럽게 사라져 버리는 말. 코로나19 팬데믹이 절정을 지나 이제야 메타버스 담론의 열기가 손을 댈 수 있을 만큼 식었으니 돌아볼 때가 됐다.
우선 질문에 대한 나의 견해부터 이야기하면, 메타버스라는 말이 앞으로도 지금만큼 많이 쓰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보편적 어휘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조금은 있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것에는 거대한 소셜 미디어 자본인 페이스북이 ‘메타’로 이름을 바꾸면서 담론을 견인하려고 하는 영향이 클 것이다.1 세계 최대 사회관계망서비스 기업인 페이스북이 지난해 회사 이름을 ‘메타(Meta)’로 변경했다.-이하 편집자 주 그 말은, 즉 반대로 메타버스라는 말을 쓰는 것이 회사 ‘메타’를 연상시키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메타버스라는 말의 쓰임이 제한적이 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메타버스라는 말 자체가 유의미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테크놀로지의 변화에 따른 현실의 위상 변화는 다양한 방면에서 사유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 다만 (산업 주도의 담론이 대체로 그렇듯) 지금 쓰이는 메타버스라는 말은 모호하고, 엄밀하게 규정돼 있지 않으며, 너무도 많은 것을 하나의 키워드로 수렴하는 문제가 있다. 특히 전혀 새롭지 않은 것을 메타버스라고 부르면서 마치 새로운 것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등 여러 오해를 발생시키기도 했다.
어떤 말이든 어떤 사람이 그 말을 만들어내고 또 쓰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서 ‘담론discourse’이라는 말을 쓰는 것도 같은 이유다. 말의 절대적 의미를 정의하는 것보다 그것이 기호의 체계에서 어떤 위치에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메타버스라는 말은 명확하게 산업이 주도하고 있는 담론이다. 지난 몇 년간 전 지구를 휩쓴 팬데믹은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다. 화상 회의나 재택근무 등이 빈번해지면서 일종의 착시가 발생했고 발 빠른 자본은 그것을 매개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더 나아가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힘을 쓰고 있다. 그 과정에서 메타버스라는 말을 하나의 동력으로 삼아 다방면의 관심과 지원을 유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는 무려 ‘국고’라는 머리말을 붙여서 ‘메타버스 예술활동 지원사업’을 공모하기도 했다. ‘실시간성’ ‘아바타’ ‘상호작용’ ‘경험가치’라는 네 가지의 항목까지 구체적으로 ‘메타버스 예술활동’이 무엇인지 규정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과연 몇 년이나 지속될 수 있는 사업일까? 예술도 기술 변화에 당연히 발 빠르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테크놀로지의 문제와 산업·자본 주도의 담론을 날카롭게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은 그런 기금을 통해 훌륭한 예술 작업을 펼쳐낼 것이다. 기존의 플랫폼에 올라타 산업적 소비를 촉진하는 것을 넘어서 (실제로 예술 작업이 산업 플랫폼의 프로모션에 이용당하는 것은 너무도 흔한 일이다) 주어진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본의 플랫폼을 전유하는 것이 예술적 가로지르기가 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예술가가 많기 때문이다. 메타버스에서 벌이는 예술 작업은 기존의 상업적 플랫폼의 작동 방식을 이상하게 점령하는 방식으로만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넷플릭스 시리즈 〈러브, 데스+로봇〉의 ‘히바로’ 에피소드

한편으로 메타버스의 미학적 가능성은 가상현실과 디지털 세계에서 드러나는 신체성을 탐구하는 방식으로도 이뤄지고 있다.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러브, 데스+로봇〉2 팀 밀러와 데이비드 핀처가 제작한 미국의 성인 SF 웹 애니메이션으로 넷플릭스에서 방영됐다. 의 ‘히바로’ 에피소드는 일종의 댄스필름으로 인식되면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3D 애니메이션인 그 작업 속 춤은 사라 실킨Sara Silkin이라는 안무가의 작업을 기반으로 여러 댄서의 움직임을 직접 디지털로 옮겨 만들어졌는데, 흥미로운 점은 모션 캡처3 몸에 센서를 부착하거나 적외선을 이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인체의 움직임을 디지털 형태로 기록하는 작업을 말한다. 를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손으로 작업한 디지털 모델링과 모션 그래픽은 춤을 디지털로 번역하는 작업에서 발생하는 인간의 몸과 디지털 이미지의 간극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특유의 친숙하지만 낯선unheimliche 감각은 현실에서 드러나는 신체성과 디지털에서 드러나는 신체성을 양쪽 모두에서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식으로 디지털과 가상현실, 그리고 신체성의 문제는 앞으로 더 많은 미학적 사유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가상현실이 세계 자체를 다른 방식으로 옮겨놓으면서 더욱 다양한 신체, 더 나아가 인간 중심의 신체에서 벗어나는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은 메타버스라는 말 자체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다. 다양한 가능성이 활짝 열리는 세계가 실제 세계에 겹쳐지고 있다는 사실은 장애나 다른 신체적 제약, 혹은 모틸리티motility·운동성를 가로지르는 문제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상현실에는 자본주의라는 현실 세계의 질서 또한 겹쳐져 있기에 복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부자는 풍요로운 현실을 살고, 가난한 이만 가상현실로 도피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상 세계가 얼마나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지 우리는 아직 알 수 없다. 메타버스라는 말에 끼어 있는 거품을 걷어내야지만 더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지점이 발견될 것이다. 가상 세계에서 빚어지는 몸과 춤의 문제는 이제 시작이다. 확실한 사실은 우리는 어디에서나 춤을 출 것이라는 사실이다. 컴퓨터 안에서라도 말이다.

권태현_큐레이터, [춤in] 편집위원 | 사진 제공 넷플릭스

※본 원고는 지면 관계상 편집되었습니다. 원문은 웹진 [춤:in]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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