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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7월호

이우정 감독의 <최선의 삶> 나를 망쳐서라도 기꺼이 살아보겠다

커다란 날갯짓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새들 사이에서 하루살이는 더 높이, 더 멀리 날고 싶다고 한 적이 없다. 촐랑거리는 작은 몸으로 살아도, 눈에 띄지 않는 무더기로 살아도 상관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루살이가 고민도, 질문도 없이 그저 대충 휘뚜루마뚜루 사는 것 같다고 한다.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죽어야 끝나는 날갯짓을 멈추고 좀 쉬었으면 좋겠다. 그냥 오늘도 살아남았으니 내일 하루도 좀, 그냥 좀 살면 안 되나?

나를 망쳐 사는 삶

열여덟 살 강이(방민아), 아람(심달기), 소영(한성민)은 단짝이지만 자라온 환경도, 꿈도, 성격도 다르다. 각각의 이유로 슬픈 세 친구는 지금 사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달아나고 싶다. 그래서 무작정 대전을 떠나 서울로 가출한다. 모텔과 길거리를 전전하다가 겨우 구한 지하방에서 쉬어가는 것 같지만 가출 생활은 금세 끝나고 세 사람 사이에는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이우정 감독의 영화 〈최선의 삶〉은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한 임솔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은 자신을 망쳐서라도 하루를 안간힘을 써서 겨우 살아내고 또 내일을 살아보려는 소녀들의 잔인한 현실을 그리고 있다. 영화는 원작을 뛰어넘거나 달아나려는 대신 소설에서 따끔거리는 빛과 서늘한 그늘을 가져온다.
‘불쌍한 것들에 마음을 주어 자라나는 슬픔을 잘라내는’ 자신을 학대해서 현실을 극복하는 아람, 자신의 상처가 들킬까 봐 친구를 대신 공격하는 소영,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도 망치고 누군가를 다치게 만드는 강이의 캐릭터는 원작 그대로다. 끝내 성장하지 못하는 소녀들의 이야기는 원작의 대사와 정서에 힘입어 동그란 공감대를 형성한다.
하지만 폭력의 묘사가 구체적이고 주인공의 마음이 무척 또렷했던 원작과 달리 영화는 영상으로 마주하기 버거울 것 같은 장면들을 과감하게 공백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런 서사의 틈 때문에 어떤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의 필름이 잘려 나간 것이 아닌가 싶은 순간들이 있다.

삶을 망쳐 얻은 나

영화 〈최선의 삶〉에서 과거는 풍경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도 겪고 있는 현실 위에 있다. 그래서 영화 속 과거는 기대와 달리 복고의 낭만적 정서를 만들지는 않는다. 〈메기〉 〈수성못〉 등 인상적인 다양성 영화에서 주변부의 인물을 관찰하는 시선을 잘 보여준 이재우 촬영감독은 핸드헬드 카메라로 아이들의 잔망스러운 날갯짓과 떨림을 포착한다.
상처 입은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결국 자기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으리라는 것을. 그래서 마음의 상처를 기억하지 않으려고 자꾸 몸을 상하게 한다. 결국 아이들의 마음은 세상을 향해 던져봤지만 허공에 머무르기보다는 바닥에 질질 끌리는 시간이 더 많은 셔틀콕처럼 너덜너덜해지고 만다.
세 친구는 떠돌다 자기들만의 공간을 찾았지만 좁디좁은 공간에 갇혀 조금도 자유롭지 않다. 기껏 달아나 보려 하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고야 마는 부메랑처럼, 내가 태어난 그 처지에 단단하게 붙박인 운명은 불행이라는 기둥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맞닿아 함께 자라는 대신, 혼자라도 살아남겠다는 아이들의 선택은 사실 뚜렷한 희망이 없는 우리 현실과 같아 아프다. 나를 망치고, 너를 다치게 해서라도 나는 오늘을 살겠다는 아이들이 마구 긁은 손톱자국은 생채기가 되어 계속 따끔거린다.

“떠나거나 버려지거나 망가뜨리거나 망가지거나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 그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원작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 문구의 의미와 정서를 영상 속에 제대로 녹여 넣기 위해 영화는 계속 가쁘게 오르막길을 오르고 또 오른다. 그 속에서 채도가 낮고 희미한 주인공 강이의 시간은 정상에 가닿아 볼 의욕도, 의지도 없이 뚝, 저 혼자 멈춘다.

최재훈 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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