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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7월호

‘이혼’이라는 말초적 예능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2>와 TVING <결혼과 이혼 사이>

이혼한 지 10년이 넘은 부부가 오랜만에 만나 3박 4일 한 공간에 머문다. 이혼 직전에는 서로 입만 열면 싸우게 되니 대화를 회피했고, 긴 별거 후 서류에 도장을 찍었기에 단둘이 보내는 시간은 10여 년 만이다. 따로산 사이 훌쩍 늙어버린 서로를 어색해하던 두 사람은 눈조차 마주치지 못한다. 또 다른 커플은 결혼 생활을 방송에서 오픈하며 리얼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바가 있다. 결혼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두 사람은 자주 투닥거렸고, 주로 남편이 철없는 캐릭터로 화제 몰이를 했다. 얼마 후 두 사람은 이혼했고, 서로를 비난하는 인터뷰를 하며 또 한 번 뉴스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방송에서 ‘우리가 이혼한 이유’를 고백하다

여러 남녀가 출연해 연애 상대를 찾는 연애 매칭 프로그램이나 결혼 생활을 보여주는 리얼 버라이어티에 이어 이제는 이혼한 부부가 함께 방송에 출연해 감췄던 가족사까지 공개한다. 물론 그 과정에는 첫 만남 즉시 부부 싸움을 하는 모습까지 생중계된다. 감정의 둑이 터지듯 한쪽이 오열하고 소리를 지르는 예고편이 방송 전에 공개된다. 앞에 나열한 예는 이혼 방송의 장을 연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2〉에 출연 중인 나한일-유혜영 커플, 일라이-지연수 커플의 모습이다. 아이돌의 가상 연애를 보여주던 〈우리 결혼했어요〉가 아닌, 진짜 과거의 부부가 출연해 ‘우리가 이혼한 이유’를 고백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라니. 이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이혼했고 연락도 끊은 채 남남으로 살다가 방송을 통해 조우한다. 〈우리 이혼했어요〉는 시즌1에 이영하-선우은숙, 이하늘-박유선, 최고기-유깻잎 등의 커플이 출연해 화제가 됐고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섭외만 가능하다면 방송국 입장에서는 시즌2를 이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유명인인 이혼한 부부가 이러한 방송에 출연 결정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출연자들은 “고민 끝에 나온 이유는, 당신과 제대로 대화를 해보고 싶어서”라고 고백한다.
이혼한 연예인 부부가 함께 방송에 출연한다는 화제성을 넘어 이혼 프로그램은 그간 인터넷 게시판에서 흔하게 보아왔던 한국 사회 속 가족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고부갈등, 경제적 난관, 육아나 가사 분배, 대화 단절과 폭언, 불륜 등이 이혼 사유로 어렴풋이 제시된다. 최근 방영한 방송 역시 마찬가지다.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에서는 오은영 박사라는 정신건강의학 전문가를 섭외해부부 문제를 심리상담의 영역으로 끌고 와 오은영 박사가 ‘부부 싸움 영상’을 ‘아동 치료 영상’을 보듯 관찰한 후 해결책을 제시한다. 어느 정도까지가 실제 부부의 생활인지 시청자는 알 도리가 없지만 여기에도 연예인 부부가 출연한다.

타인의 편집된 불행과 울분을 소비하다

‘이혼’이라는 소재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송은 티빙 오리지널 〈결혼과 이혼 사이〉다. 여기에는 네 커플이 출연한다.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와인바에 모여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부부 문제를 본인 입장에서 수다 떨 듯 털어놓는다. 앞서 소개한 부부에 비해 출연자 부부가 젊은 만큼 부부 싸움도 격렬하다. 그리고 그러한 영상이 보기 불편할 정도로 가감 없이 공개된다. 육아로 지친 아내에게 폭언을 퍼붓는 남편의 모습이나, 분노조절장애 판정을 받을 정도로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하는 남편이 아내에게 위협적으로 욕설을 내뱉는 영상을 편집 없이 보여준다. 연애 매칭 방송이 간질간질하고 달콤한 연애 감정을 시청자 가슴에 재현한다면, 이혼 프로그램은 불화가 심각한 집에서 엄마, 아빠의 거친 전쟁을 지켜보다 불안한 눈빛으로 냅다 울어버리는 아이의 자리로 시청자를 데려다 놓는다. 사실 이 모든 방송을 통틀어 젊은 여성 사이에서 부르는 또 하나의 닉네임이 있다. ‘본격 비혼 장려 방송’이라는 것이다. 부부 관계에서 한쪽만의 무조건적 잘못은 없겠지만 여성 시청자가 아내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밖에 없는, 속 터지는 순간이 종종 연출되곤 한다. ‘아내에게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 싶을 정도로 심각한 욕설을 퍼붓는 남편, 육아와 가사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남편, 가계에 보탬은 주지 않으면서 아내 카드로 명품 신발을 결제하는 남편 등. 아마도 방송을 위한 자극적 연출이 있겠지만 비혼의 여성 시청자는 ‘역시 결혼은 위험’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터놓고 대화하면서 오해를 풀거나 재결합의 뉘앙스를 풍기는 등의 훈훈한 장면도 물론 가끔 관찰된다. 하지만 이러한 방송은 출연자의 감정을 말초적으로 자극하고, 부부 싸움 영상은 짧게 편집돼 유튜브나 SNS에 공유되며 또 다른 오해를 낳는다. 연예 뉴스 제목은 조회수 장사를 위해 누군가를 악당으로 몰아가고, 악플은 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로 남는다. 출연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에 나와 상처를 극복함으로써 얻는 것도 있을 테다. 그러나 결국 방송국은 시청률을 얻고 시청자들은 편집된 남의 불행과 울분을 관음하고 소비한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연출인지 중요하지도 않다. 오히려 ‘리얼’을 표방하는 방송에서 대본이 있다면 ‘조작’이라며 더 큰 논란이 된다. 연예인 집 거실까지 들어갔던 카메라는 이제 그들의 비밀스러운 과거, 부부 싸움, 마음속 상처까지 낱낱이 클로즈업한다. 이조차 자극이 시들해지면 방송국 카메라가 진출하게 될 다음 영토는 어디가 될까?

김송희 《빅이슈코리아》 편집장,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 저자, 칼럼니스트 | 사진 제공 TV조선, T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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