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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호

그림책을 왜 어른이 보냐고? 동화·그림책에 빠진 어른들

왜 그림책 읽는 어른이 늘어나느냐고?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간단하지, 뭐. 그림책 읽던 아이들이 어른이 됐잖아?’였다. 한국 그림책 시장이 폭발적으로 넓어지던 2000년대 초중반 그림책을 읽던 아이들이 이제 그 장르에 익숙한 어른이 된 것이다. 그림책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아는 그들이 경제력을 갖춘 성인으로서 자신을 위한 그림책을 사 읽는 일에 주저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 독자층이 늘어나는 것을 본 그림책 동네에서 작가나 출판인이 어른을 위한 그림책을 만드는 일에 주저하지 않게 되기도 한 것이다.

보고타 도서전. 박연철 작가의 워크숍에서 아이들보다 더 많이 몰려들어 열심히 종이인형을 만들고 있는 어른들.

《나의 사직동》, 한성옥 그림, 김서정 글, 보림

그림책, 자신을 발견하고 자기 삶을 재구성하는 장

또 다른 이유는,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사서 읽어주던 어른들이 그 안에서 자신을 충족해 주는 어떤 것을 발견하고 적극적 독자로 돌아선다는 점이다. 나는 2003년 나온 《나의 사직동》(한성옥 그림, 김서정 글, 보림)이라는 그림책에 글을 쓴 적이 있다. 한성옥 그림 작가가 수십 년 살아온 광화문 집이 재개발로 철거되기 전 그 동네를 책 속에 살려 내놓고 싶어 했고, 그의 기획과 구성과 그림에 내가 글을 보탰다.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 시절을 지나는 주인공, 사진을 기반으로 한 픽션적 그림, 어른 작가의 시각과 사고와 감성이 아이의 그것들과 섞여 있는 (그러니까 온전히 아이답지 않은) 글 등 여러 면에서 약간 모험인 책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림책은 아이들 읽을거리라는 통념이 지배적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책에 대한 독서 후기를 통해 나는 그림책의 지경이 확실히 넓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거기에서는 아이와 함께 읽으면서 이런 것을 알려줬고 함께 생각했다는 말보다는 내 어린 시절 고향 집에 대한 그리움이 주로 토로되고 있었다. 어른들은 그림책을, 자신을 발견하고 자기 삶을 재구성하는 장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돼지책》, 앤서니 브라운 지음, 허은미 옮김, 웅진주니어

사실 그러한 움직임은 2001년 나온 《돼지책》(앤서니 브라운 지음, 허은미 옮김, 웅진주니어)에서 먼저 감지됐다. ‘대단히 중요한’ 회사나 학교에 다니는 남편과 아들들에게 너무나 하찮은 존재로 취급당하며 노예처럼 일하던 엄마가 “너희들은 돼지야!”라고 일갈하며 집을 나가버리고, 남자들이 정말 돼지로 변하는 이야기. 돌아온 엄마에게 그들이 무릎 꿇고 사죄하며 이후로 집안일을 열심히 한다는 (그리고 엄마는 자동차를 고친다!) 결말은 수많은 엄마에게 크나큰 카타르시스를 안겨줬다. 제대로 된 평가나 존중이 없는 가사노동으로 인한 여성들의 억눌린 분노는 이 분출구에 폭발적으로 반응했는데, 특히 한국에서 열렬했던 이 응답의 사회사적 의미가 그림책 역사에서 제대로 짚어지지 않은 점이 아쉽다.
그림책이 독자에게 자신의 삶의 실체와 의미를 돌아보게 만들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스토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복잡한 인간과 긴 인생의 정체를 어느 부분 번개처럼 파악하게 만들어준다. 긴 이야기는 구체적이고 세밀한 사건과 배경과 인물을 통해 특정 인간과 인생에 대해 말하지만, 짧은 이야기는 추상적이고 함축적인 장치들을 가지고 모든 인간과 보편적 인생을 담아낸다. 옛날 어떤 곤경에 처하거나 어떤 소원을 가진 아이가 어떤 도움을 받아 어떻게 잘살게 됐다는 전래동화를 사람들이 내 이야기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그 때문이다.

《나의 호랑이》, 얀 유테 지음, 이한상 옮김, 월천상회

《내가 예쁘다고?》, 황인찬 지음, 이명애 그림, 봄볕

글의 스토리는 이해를, 그림의 스토리는 위로를

그림책도 그처럼 굵고 짧은 이야기 안에 독자가 자신을 펼쳐낼 수 있는 여지를 풍성하게 가지고 있는 장르다. 그림책 역사에 남는 책은 대부분 그런 스토리를 탄탄히 펼친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 《강아지 똥》 《지각대장 존》 《알사탕》 《파도야 놀자》 《프레드릭》 등. 자존감 없고 외로운 독자는 자신을 희생시켜 다른 생명을 꽃피우는 순교자가 될 수도, 훌륭한 시인이 될 수도, 남의 마음을 읽어내어 너그러워질 수도 있다. 용기 없어 주저하는 독자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치고 나갈 수 있고, 현실이 잿빛인 독자는 환상을 통해 그것을 넘어설 수 있다.
그림책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어른 독자는 아마 그림책 스토리의 이런 기능을 부지중에 흡수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이라는 인간과 자기 자신의 삶을 파악하기(얘가 꼭 나 같네. 아아, 내가 그래서 그랬구나), 기억에 의해 재구성되거나 소망에 의해 개선된 세부적이고 내밀한 자아를 그 안에 짜 넣기(내가 하는 일이 이렇게 세계를 다니며 꽃씨 뿌리는 일 같은 거야. 그래, 난 시인이야). 그래서 그림책을 보면 눈앞이 환해지고 마음이 그득해지는 반응이 드물지 않게 나오는 것이다.
게다가 그림책에는 스토리 외에 그림이 있다. 이성과 의식을 작동시키는 글에 감성과 무의식을 추동하는 그림이 합쳐져 그림책은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심리적, 정서적으로 깊은 울림을 끌어낸다. 그리하여 글의 스토리가 어떤 이해를 준다면 그림의 스토리는 어떤 위로를 건넨다. 최근에 엄마를 여읜 나는 장례식장에 친구가 들고 온 그림책 《나의 호랑이》(얀 유테 지음, 이한상 옮김, 월천상회)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 혼자 살던 할머니가 겨울 숲속에서 호랑이를 만난다. 할머니와 함께 집으로 와서 살게 된 호랑이는 마을 귀염둥이 노릇도 하지만 점점 기운이 없어지고 줄무늬도 희미해진다. 배를 타고 먼 길을 가서 호랑이를 고향에 데려다주고 온 할머니. 하지만 호랑이를 대신할 어떤 것을 찾게 된다. 이 이야기에서 나는 할머니였고, 엄마는 호랑이였다. 아름답고 위엄 있는 호랑이. 할머니와 살고 싶기도 하지만 가야 할 곳이 있고 가야 할 때가 있는 호랑이. 정성스레 호랑이를 보내주지만 미련은 보이지 않고 다시 행복하게 살길을 찾는 할머니. 생각도 못 했던 방식으로 나와 엄마의 관계, 엄마의 떠남, 그 뒤 나의 위치를 짚어준 그 그림책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훨씬 오래, 훨씬 많이 힘들어했을 것 같다.
최근의 에피소드 하나. 서울국제도서전 출판사 부스에 《내가 예쁘다고?》(황인찬 지음, 이명애 그림, 봄볕)라는 그림책이 쌓여 있었다. 떠꺼머리 남학생(초등학교 3, 4학년생쯤?) 하나가 여자 짝이 “참 예쁘다”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내가 예쁘다고?’ 화들짝 놀란 녀석은 하루 종일, 다음 날까지 넋이 나간 채 예쁨에 대해 생각한다. 그 귀여운 장면들 뒤로 귀여운 반전도, 예쁜 깨달음도 있는데, 놀랍게도 그 북새통 속에 책장을 넘기던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독자들이 눈물을 닦는 것이었다. ‘내가 예쁘다고?’에 담긴 설렘, 기대, 갈망, 실망, 회복 같은 것들이 파도처럼 몰려와 덮쳤을 것이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본인만 알 수 있지만, 그림책은 그것을 꺼내어 나누는 일을 주저하지 않게 만든다. 그 놀라운 힘은 그림책을 함께 읽으며 자기를 열어 보이는 수많은 모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래도 왜 어른이 그림책을 읽는지 궁금하다면, 마지막 이유. 다른 예술 장르들은 어른의 영역에서 아이들 영역으로 내려온다. 하지만 그림책만은 아이들 영역에서 어른의 영역으로 솟아 올라간 장르다. 엄청난 에너지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에너지를 어떻게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조만간 끌려 들어갈 것이다.

《여름이 온다》(비룡소)는 한국 최초로 ‘아동문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이다.

김서정_동화·그림책 평론가, 번역가 | 사진 제공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보림, 봄볕, 월천상회, 웅진주니어,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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