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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호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 평범한 길을 ‘No!’ 하는,
그만의 노(No)력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QUAD가 개관을 맞아 페스티벌을 선보인다.
11개 장르 12개 작품을 선보이는 페스티벌 중 7월 22일 공연은 조진주(바이올린)와 이명주(소프라노), 박종해(피아노), 이재형(바이올린), 신경식(비올라), 이호찬(첼로) 등 국내외에서 활약하는 젊은 음악가가 클래식 콘서트홀이 아닌 블랙박스 공연장 쿼드에 오르는 시간이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4중주를 비롯해 바로크부터 후기 낭만주의에 이르는 선곡을 통해 우리에게 실내악의 묘미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 공연 중심에 조진주가 있다.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선보일 실내악의 미학

6월 중순, 조진주와 힘겹게 연락이 닿았다. 7년 전부터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앙코르 체임버 뮤직 캠프’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조진주가 직접 만든 음악 캠프로 매해 6월 첫째 주에 시작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온 캠프의 시작을 끊느라 그러했는지, 화상통화의 화면 너머 그의 모습이 피곤해 보였다. 하지만 목소리는 바이올린의 고음처럼 짱짱하다.
“음악적인 부분은 물론 운영에도 많이 신경 쓰고 있어요. 이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경영과 펀드를 통해 더욱 단단하게 다지려고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다양한 음악가도 좀 더 열심히 초청하려 합니다.”
체임버 뮤직Chamber Music은 ‘실내악’을 뜻한다. 2명에서 많게는 10여 명이 함께하는 음악이다. 이러한 ‘실내악’은 음악을 통해 서로의 믿음을 쌓아가는 ‘신뢰악’이기도 하고, 그 과정에 실수라도 하게 되면 음악에 균열을 내는 ‘실례악’이 되기도 한다. 음악가는 신뢰와 실례 사이에서 성장해 나간다. 월간 《객석》의 올해 2월호 표지를 장식한 조진주는 인터뷰에서 ‘실내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다시 봐도 조진주의 실내악론 같다. 7월 22일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올리는 공연도 실내악을 선보인다.
“저에게 실내악은 음악의 한 장르라기보다는 인생 철학에 가깝습니다. 현악 4중주를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은 다 동의할 겁니다. 우정의 진정한 의미를 4중주를 하며 배웠다는 것을요. 실내악은 동등하게 하지 않으면 교류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 포맷입니다. 상대방의 소리를 주의 깊게 들었던 사람과 내 소리만 들었던 사람의 음악은 다를 수밖에 없죠.”
그는 모교 클리블랜드 음악원 교수를 거쳐 현재 캐나다 맥길대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학교에서는 어떤 교수인가요?” 하고 물으니 “이상한 교수다!”라며 크게 웃는다. 그 웃음과 함께 그가 걸어온 길이 떠올랐다.

자신을 키운 의문, ‘언젠가 반짝일 수 있을까?’

1988년 출생의 조진주가 20대이던 2010년대 전후. 당시 세계 속 한국 음악계의 위상은 크게 달라지고 있었다. 이러한 에너지의 흐름에는 김다미·최예은·이지혜·클라라 주미 강·신현수 등 조진주와 동갑이거나 한두 살 차이 나는 젊은 바이올리니스트의 존재와 역할이 컸다. 지난 6월 미국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피아노)처럼 그들은 해외의 유수 콩쿠르에 나가 별을 따왔다. 개인의 승리이자 한국의 클래식이 세계로 급부상하던 때였다.
하지만 “20대 때는 계속 성취하지 못하는 게 분하고 초조했다”라는 그의 고백대로 조진주는 위축돼 있었다. 콩쿠르 승전보는 연일 날아들었다. 혹은 어제의 승전보가 오늘의 승전보로 묻히기도 했다. 하지만 기대주였던 조진주의 이름을 찾기는 힘들었다.
조진주가 2021년 5월에 출간한 《언젠가 반짝일 수 있을까》(아웃사이트)는 이제는 어느 정도 성공의 반열에 오른 그의 자전 에세이집이다. 책을 펼치면 놀랍도록 솔직한 그녀의 과거가 연주된다. 자신이 걸어온 시간을 성찰하며 고백한 그만의 역사와 용기는 놀라웠다. 자신의 든든한 지원자인 부모와의 갈등, 성장에 분명 스며들어 있지만 누구나 솔직히 고백할 수 없는 교육 환경의 폭력성과 경쟁의 부추김, 이로 인해 함께 살아갈 바이올린에 대한 믿음보다 커진 의심, 명문 학교의 명성도 무효화하는 과감한 자퇴 선언, 성공의 어머니는 아마 ‘분노’일 것이라는 과감한 발언 등. 이처럼 그의 에세이집은 주어진 노선만 차분히 밟아도 겨우 무사할 수 있는 공연계와 음악 인생에서, 이정표를 걷어차 버리고 일탈의 발자국을 남겨온 그녀의 추억 노트이자 선언문 같은 책이다.
생각해 보면 조진주처럼 고백과 기록을 많이 남긴 젊은 음악가도 없다.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조진주는 한때 공연 노트의 해설도 직접 쓰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인터뷰도 그녀가 ‘기록한 활자’를 가져다 쓰기로 그에게 허락을 받았다. 새로운 것에 탐닉하고, 그러면서도 과거의 시간을 남긴 그녀에게, 인터뷰라는 나의 업무와 수행을 위해 그 과거를 다시 들춰 물을 필요는 없었으니.
이쯤에서 2014년에 그가 직접 쓴 글 하나를 꺼내 본다.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 1위에 입상하며 국내외 음악계의 스타가 됐을 때다. 그는 화려한 인터뷰가 아닌 ‘굿바이! 콩쿠르 인생’이라는 글(월간 《객석》 2014년 12월호)로 자신의 시간을 돌아봤다. 첫 문장이 묘했다. 응당 기쁨의 문장이 시작을 끊을 거라 생각했는데 뜻 모를 한숨이 담겼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모를 일이다. 왜 스물여섯 해를 사는 동안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걸까. 음악을 경쟁시킨다는, 이 말도 안 되는 구도 안에서 우승한다는 것이 누군가를 제쳤다는 기쁨보다는 15년을 넘게 보아온 동료들을 향한 미안함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세계적 콩쿠르 우승이 수많은 기회와 길을 열어줬지만 그는 안주하지 않았다. 천방지축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예술가임을 자처했고 스스로 ‘변덕스러운 여자’라는 것도 선포했다. 2020년에 발매한 정규앨범에는 ‘라 카프리슈즈La Capricieuse’ 라는 제목을 붙였다. 불어로 ‘변덕스러운 여자’라는 뜻이다. 비에니아프스키, 폴디니, 바치니, 이자이 등 10명의 10곡이 조진주의 변덕에 맞춰 현의 춤을 춘다. 그때 조진주의 행보를 보며 ‘바로크’라는 말이 떠올랐다. ‘바로크’의 어원은 ‘울퉁불퉁한 진주’다. ‘일그러진’ ‘과장된’이라는 뜻도 담고 있다. 조‘진주’여서 바로크의 ‘진주’가 떠올랐고 그만의 일탈과 과장, 변덕은 평범하게 마름질되고 있는 한국 음악계를 향한 ‘바로크적(울퉁불퉁한 진주적) 선언’이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크’가 생각난 것이었다.

모험과 도전, 세상이 잠시 멈춰도 그의 음악은 계속

그의 학창 시절 이야기다. 조진주는 예원학교에 입학한 뒤 곧바로 미국으로 향했다.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본 다큐멘터리 때문이었다. 당시 어린 바이올린 학도들의 우상이자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명성을 날리던 사라 장(본명 장영주, 1980~ )에 관한 영상물이었는데, 그녀가 매해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열리는 아스펜음악제에 간다는 내용이었다. 조진주는 예원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콜로라도주로 향했고, 아스펜음악제 콩쿠르에 참여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평생의 스승 폴 켄터를 만난다.
“내 운명을 바꾸어놓은 단 한 명의 스승, 폴 켄터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이상’의 힘을 믿도록 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는 제가 쉴 새 없이 던지던 ‘왜?’라는 물음에 처음으로 함께 고민해 준, 인생의 유일무이한 사람입니다. 또한 단순히 재능으로만 대하던 ‘음악’이라는 것을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게 이끌어주신 분이기도 하죠.”(월간 《객석》 2015년 12월호)
조진주는 스승을 따라 클리블랜드로 간다. 그리고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미국의 명문 커티스 음악원에도 당당히 입학한다. 하지만 얼마 후 클리블랜드 음악원으로 돌아왔다. 2016년에는 모교에 임용돼 2년간 교수로 지냈다. 이후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 맥길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생활하고 있다. “대학이 많고 대학생 인구가 다수라서 진보적인 분위기”라며 “인생에서 지금 나의 시기에 어울리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런 그는 일 벌이는 것을 좋아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상이 멈췄을 때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코로나가 발생한 2020년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인 해였고, 2021년은 생상스 서거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생상스의 음악은 김연아 선수가 애용한 음악(죽음의 무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조진주는 생상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과 3번 등 대표적인 바이올린 곡을 음반에 담았다. 지휘는 마티외 에르조그, 연주는 아파시오나토 앙상블이 함께했다.
“녹음은 사흘 동안 파리에서 진행했어요. 코로나19로 파리에 도착하기 하루 전날까지 확신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음악 외적인 불안감이 커서였는지 오히려 녹음에 대한 부담감이 덜해 녹음에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생상스는 “교사·오르가니스트·지휘자·작곡가로서 폭넓은 활동을 했는데 어떻게 해서 자기만의 색깔을 고수하게 됐나 하는 궁금증”에서 비롯된 작업이었다. 조진주 특유의 호기심과 지적 욕구가 생상스와 닿았다. 조진주는 생상스의 음악을 녹음하며 “바이올리니스트를 위해 디자인된 것 같은 편안함”과 “몸에 잘 달라붙는, 체화하기 쉬운 기교”를 느끼기도 했다. 아쉽게도 올해 초에 한국 순회공연을 기획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불발됐다. 그래도 ‘변덕스러운’ 조진주는 그 변덕을 끊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변덕이 ‘조진주스러움’과 ‘조진주다움’을 만든다. “20세기에 작곡된 곡들을 좋아하는데요. 기회가 된다면 이 곡들을 한데 담고 싶어요.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는 물론이고 스트라빈스키, 브리튼, 코른골드의 작품이죠.”

2022년의 서울이 기대되는 이유

2022년 여름, 조진주는 바쁘다. 스스로 만든 바쁨이다. 그런 그에게 듣는 최근 관심사와 이야기는 늘 흥미롭다. 그녀는 멈추지 않으니까, 그렇게 늘 변하니까. 에세이집 책날개에 적힌 소개는 아마도 그런 그가 적었을 것이다.
“음악을 업으로 삼고 있는, 아홉 살 강아지 미소의 집사. 발리에서 한 달 살기를 꿈꾸는 등 자연과 함께하는 힙스터의 삶을 상상하지만 연습과 연주 때문에 실행하지 못한다. ‘쪼꼬렛’과 커피 그리고 일 벌이기 중독자이며 프랑스에 정착한 예술가들을 사랑한다. 유난스러운 사람들과 재밌게 살다가 삶의 끝에는 현악 4중주를 연주하고 싶다.”
“1개월 이상 키우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식물을 키우고 있다”고 한다. 읽고 쓰는 것도 좋아해 책도 부지런히 읽는다. 요즘에는 피에르 루이스의 소설을 읽고 있다고. 무엇보다 음악에 부지런히 신경 써야 한다. 7월 22일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올리는 공연이 끝나면, 10월에 다시 한국에 들러 성남에서 독주회를 치르고, 12월에는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을 받은 새로운 실험작도 선보여야 한다.
“서주리 작곡가와 함께하는 초연작입니다. 바이올린과 영상, 전자 음향이 함께해요. 새로운 것을 준비할 적에 내게 얼마만큼 도움이 될까 싶은 ‘계산’보다 ‘재미’를 기준으로 삼아요. 그리고 재밌겠다 싶으면 ‘미친 추진력’을 발휘하며 덤벼들죠. 대부분이 그러했어요. 따져보면 그것을 하게 된 최초 동기는 늘 ‘재미’였어요. 12월 예정 중인 공연도 이러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흐르다 보니 예술과 창작을 위한 공공지원금 이야기도 나누게 됐다. 한국과 세계 여러 곳을 넘나들며 연주, 교육, 페스티벌을 운영하고 있는 그에게 예술이란 영감의 산물 이전에 지원의 마중물을 만나야 하는 그 무엇이다.
“미국은 예술가들이 공공기금을 지원받기가 어려워요. 하지만 캐나다는 공공지원금 제도가 발달해 젊은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작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공공지원금으로 개인 작업을 할 수 있는 나라는 몇 곳 되지 않아요. 그중 한국이 있다는 게 자랑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예술의 다양성과 실험을 위해 공공지원금의 존재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 서울문화재단의 쿼드도 자본의 부담에서 벗어나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 한국에는 정말 창의적인 예술가가 많아요. 먼 훗날 이 공간에서 어떤 작품과 공간이 나올지 참 궁금해집니다. 예술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송현민_음악 평론가 | 사진 제공 봄아트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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