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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호

책 《사소한 기쁨》과 《가드너의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쁜 삶’,
고수들이 발견하고 발명한 기쁨의 리스트

한 가지 일을 오래 해온 사람들에게는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 인내심이 강하고 책임감이 클까, 아니면 어떤 특출난 능력이 있을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일을 좋아했기 때문 아닐까. 또 반복되는 일상을 즐거움으로 채울 줄 알고, 무엇보다 삶의 ‘기쁨’이 어디에서 오는지 터득한 게 아닐까. 이것이야말로 이들이 숨겨둔 진짜 특별한 능력일 터. 이들이 발견하고 또 발명한 ‘삶의 기술’이 담긴 두 권의 책을 소개한다. 30여 년 글쓰기 노동자로 살며 깨달은 ‘작은 것’들의 힘에 대해 말하는 《사소한 기쁨》(현암사)과 20년 차 가드너가 정원에서 일하며 보낸 시간을 풀어낸 《가드너의 일》(날)이다. 어딘지 제목부터, 벌써 다정하지 않은가.

《사소한 기쁨》 | 최현미 지음 | 현암사

“만약 누군가 엄청난 연봉을 줄 테니 그 대신 사소한 기쁨들을 내놓으라고 한다면, 고민은 좀 해보겠지만 결국 거절할 것 같다.”
고민을 왜 하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엄청난 연봉으로 더 큰 기쁨들을 사면 되지, ‘사소한’ 기쁨 몇 개쯤 내어주는 일이 뭐 어렵냐고 말이다. 그러나 그 기쁨의 정체를 한번 보자. 이른 출근길을 비추는 새벽달, 하루를 깨우는 커피 한 잔, 하소연과 위로가 오가는 수다, 일을 끝내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시는 시원한 맥주…. 연봉이 많건 적건, 우리 일상은 대부분 반복적이고, 점점 큰 목표나 거창한 변화에서도 멀어진다. 그리고 삶은 결국 이렇게 ‘사소한’ 것들로 지탱된다.
일간지 기자로 30년. 오랜 시간 문화부 기자로 일해 온 저자가 매일 조금씩 건져 올린 그 사소한 것들, 작지만 반짝이는 것들을 조심스레 꺼내어 놨다. 커피, 산책, 독서, 수다 등 책에 실린 리스트는 누구나 좋아할 만한 것들이지만, 저자는 ‘좋음’을 ‘기쁨’의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평범함을 특별함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수많은 책과 영화, 음악과 함께한 ‘덕업일치’의 삶이 가져다준 다정한 능력이며, ‘좋다’는 말밖에 하지 못하는 다른 에세이들과 이 책을 구분 짓는 가장 큰 미덕이다.
저자는 피곤한 새벽 출근길에 뜬 달을 보고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속 두 주인공을 지켜보던 달을 떠올린다. “나의 출근길을 함께하는 새벽달은 여전히 신비한 신화이고 수백만 년을 이어온 전설이다. 덴고와 아오마메가 사랑을 맹세했듯 기도와 맹세, 그리고 약속의 대상이다.” 끝없이 돌아가는 대관람차 앞에서는 《배를 엮다》 속 성실한 사전 편집자의 마음을 파고든다. “나의 페이스를 잃지 않고 나름의 최선을 다해 나의 삶을 쌓아가는 것이다. 유유히 돌아가는 관람차처럼 담담하고 단단하게.” 또 스티븐 킹의 《고도에서》를 읽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나누는 수다가 얼마나 소중한지 곱씹고, 애니 프루의 《시핑 뉴스》를 통해 인생의 숱한 ‘해피엔딩’에 대해 생각한다. “기쁨과 행복만이 계속되는 인생이란 없고, 불행이 함께하는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고.
저자는 이 기쁨들을 ‘발견’했다고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는 아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마음을 다독이고, 하루를 차곡차곡 쌓으며 ‘발명’한 것일 터. 작지만 크고, 흔하지만 귀한, 저자의 발명품 ‘기쁨들의 리스트’를 가만히 들여다보자면 쓸데없다 생각했던 많은 일이 얼마나 쓸데 있는 것인지, 사소해 보였던 모든 것이 결코 사소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내려올 것을 알면서도 중력을 딛고 상승하는 대관람차처럼, 곧 시들해질 것을 예감하며 시작하는 새로운 취미처럼,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게 분명한 내일을 위해 눈 감는 오늘 밤처럼, 그렇게 지금을 살고 순간과 순간을 잇는다. 아무도 뭐라 할 수 없고 누가 뭐라 한들 상관없는 ‘나만의 해피엔딩’을 향해.

《가드너의 일》 | 박원순 지음 | 날

“연꽃은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을 위해 가드너들은 뒤에서 온갖 궂은일을 해내야 한다. 그중 가장 고역스러운 일이 연못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오니를 제거하는 것이다.”
식물 덕후였던 저자는 제주도 신혼여행 중 식물원에서 만난 빅토리아수련에 반해 직업을 바꾼다. 출판 편집자에서 가드너로.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아름다운 연꽃을 피어내기 위해, 연못 바닥의 더러운 진흙을 제거하러 물속에 빠져야 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꽃과 나무에 둘러싸인 우아하고 고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도. 책은 대부분의 일은 꽃이 아닌 흙을 만지고, 자갈을 깔고, 철물점도 수시로 드나들어야 하는 고되고 궂은 노동자로서의 정원사를 오롯이 보여준다. 그래도 20여 년을 해올 수 있었다. 좋고, 즐거우니까. 무엇보다 ‘기쁨’이 있으니까.
사계절로 구성된 책에서는 가드너들이 1년 동안 정원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그 속에서 어떤 마음을 품고, 또 어떤 자세로 일과 삶을 바라보는지 자세하게 설명한다. 저자는 “가드너의 기본 임무는 흙에서 식물을 길러내는 것”이라며, 육체노동도 많지만 정원 디자인 같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정신노동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1년간 하는 일을 ‘최소 365가지 이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바쁘게 지낸다. 그래도 원동력은 늘 새롭게 식물을 만나고 가꾸며 돌볼 수 있다는 것. 싹을 틔우는 것을 보고, 자라나는 것을 보며, 떨어지는 꽃잎을 보고, 지고 사라져가는 것들도 본다. 이를 통해 정원사들은 궁극적으로 생명력을 부여하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거듭 되새긴다. 식물들은 신에게서 왔고, 가드너는 거들 뿐이라고 몸을 낮추며.
“아름다운 정원은 지구에서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걸작이자 안식처”라며 정원을 향해 찬사를 보내는 저자는 가드너가 아니더라도 이 안식을 누릴 수 있다고 조언한다. 책은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의 말을 빌려 “사람은 반드시 한 조각의 땅이라도 가꾸며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조각의 땅을 가꿀 수 있는 사람은 쉽게 무너져 내리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삶에 손바닥만 한 기쁨이라도 내어줄 공간을 확보했으니까.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는 지구에 손톱만 한 도움이라도 줄 수 있으니까.
결핍이 있는 사람들이 쉽게 중독에 빠진다는데, 자, ‘식물 중독자’는 어떤가. 어차피 현대인들은 어딘가 조금씩 부족한 사람들 아닌가. 오늘 당장 거리에 핀 봄꽃을 찍어보자. 아니면 여름을 마중 나온 라일락과 반짝이는 나뭇잎도 괜찮다.

박동미_《문화일보》 기자 | 사진 제공 현암사,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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