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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9월호

<2020 교향악축제 스페셜> 리뷰‘봄의 교향악’이 우리를 위로한 여름
멀리서 불타는 헛간을 바라보는 듯했다.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로 취소되는 공연들은 ‘탁탁’ 소리를 내며 재가 되고 있었다.
매년 4월이면 열리던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중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체념의 목록 위에 적어두었던 ‘봄의 교향악’이 여름에 돌아온 것이다.

바이올리스트 송지원과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의 협연 장면

지난 7월 28일부터 8월 10일까지 총 14회의 일정으로 <2020 교향악축제 스페셜>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쳐졌다. 전 공연은 아니지만 개막 공연과 폐막 공연을 비롯한 공연을 직접 보며 여러 악단과 협연자들을 비교 감상할 수 있었다. 이번 축제에서 인상 깊었던 공연을 되짚어본다.
7월 28일 개막 공연은 명실상부 국가대표 오케스트라인 서울시향이 장식했다. 부지휘자인 윌슨 응이 지휘봉을 잡았다. 김정원이 협연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1악장에서 현악군과 피아노가 밀물과 썰물처럼 움직였다. 명상적이고 투명했던 2악장에 이어진 3악장은 격정적이었다.
2부의 슈만 교향곡 2번 1악장에서 어슴푸레한 음의 안개가 옅게 깔렸다. 본격적으로 각 악기군이 합류하는 곳에서 음의 농도가 짙어졌고 다이내믹한 박력이 소용돌이쳤다. 윌슨 응은 복잡한 악구에서도 명쾌하게 역할을 분배했다. 2악장에서 즉흥성이 강조되면서 곡의 흥미는 점입가경이었다. 3악장은 비감과 연민으로 젖었다. 앞의 두 악장에 비해 체계가 잡히고 악상이 확실해졌다. 4악장은 웅장하고 응집력 있게 시작했다. 오보에가 가냘프게 울려 퍼지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정열적인 지휘는 막판까지 치고 올라가다 끝을 맺었다.
앙코르인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서곡 역시 즉흥성과 역동성이 돋보였다. 말러 지휘 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하며 한결 노련한 모습으로 탈바꿈한 윌슨 응의 존재감이 빛났다.

명곡에 다양한 표정을 입혀 더욱 풍성했던 축제

7월 29일 김대진이 지휘하는 창원시향의 연주는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명곡 중의 명곡인 교향곡 5번 <운명>을 연주했다. 너무나 유명하지만 의외로 연주하기 까다로운 작품으로 손꼽힌다. 2000년대 이후 원전 연주의 영향으로 지휘자들이 쾌속 템포를 많이 채택하곤 한다. 올해 발매된 테오도르 쿠렌치스의 음반에서도 그런 기조가 유지됐다. 하지만 김대진과 창원시향의 연주는 이런 흐름과 반대였다. 유유자적하듯 꾹꾹 눌러밟으며 <운명>을 해석했다. 오토 클렘페러와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떠오르기도 했다. 2악장 말미에 음악이 막 피어나는 부분과 4악장 피날레에서 현과 관이 소용돌이칠 때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전날 세부를 만들어갔던 윌슨 응과 대조적으로 김대진 지휘자는 ‘큰 음악’을 만들었다.
7월 30일 김경희가 지휘한 전주시향은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을 연주했다. 이 역시 명곡으로 수많은 스타일의 연주를 접한 청중이 직접 비교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김경희는 과감하게 직선적인 해석으로 곡을 전진시켰다. 세부와 곁가지를 모두 잡는 것을 포기한 대신 곡의 옹이를 점차 확대하며 화끈한 표현에 집중했다. 다양한 방향과 색깔의 연주를 볼 수 있다는 건 교향악축제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7월 31일 최희준이 지휘한 수원시향이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연주했다. 1, 3, 4악장의 들뜬 분위기에 둘러싸인 우울한 2악장 알레그레토가 잘 들어왔다.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가 나직하게 그어댄 슬픔이 오케스트라 전체를 출렁이게 했다. 앙코르 곡인 모차르트 <후궁탈출> 서곡에서도 최희준은 터키풍 타악의 향연에 둘러싸인 먹먹한 비감을 잘 표현했다.

코로나 속 빛을 발한 각양각색 오케스트라의 향연

8월 1일 코바체프가 지휘한 부천필의 무대는 협연과 본공연 모두 만족스러웠다. 작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3위 입상에 빛나는 김동현의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특유의 꼼꼼한 스타일로 만족감을 안겨줬다. 글린카의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곡과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에서 부천필의 음색을 재발견했다. 목관과 현악군이 조응하며 내는 소리가 청아했다. 선명하고 뚜렷한 표현으로 실황의 스케일감을 실감케 해주었다.
8월 4일 성기선이 지휘하는 강남심포니는 글라주노프의 <사계> 중 ‘여름’과 <레이몬다> 3막 ‘간주곡’을 아기자기하게 버무려냈다. 바이올린 협연의 송지원 역시 이번 축제에서 기억될 이름이었다. 글라주노프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 중 은빛으로 빛나던 고음을 관객들은 잊기 힘들 것이다. 협주곡 이후에도 힘이 남은 듯 비교적 긴 이자이 바이올린 소나타 6번을 앙코르로 선사했다. 2부에 연주한 브람스 교향곡 2번의 피날레는 환희와 자유와 즉흥이 분출하는 장관이었다. 스트라빈스키 <레이불새몬다>의 관현악 모음곡 중 자장가부터 피날레까지를 앙코르로 연주하며 어둠에서 빛으로 변하는 음의 루미나리에를 연출했다. 악장 이마리솔의 활약이 두드러져 보였다.
8월 10일 마지막 공연은 KBS향이 맡았다.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던 지중배가 지휘봉을 잡았다. 나풀대는 머리카락에 뒤꿈치를 들어가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그의 모습은 지휘의 창조성을 표상하고 있었다. 이상은이 협연한 엘가 협주곡 반주도 근사했고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은 쩌렁쩌렁 호쾌하게 울려 퍼졌다.
코로나19로 오케스트라 공연을 관람하는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축제였다. 이 연속 무대가 잘 치러진 뒤 공연계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각양각색의 오케스트라들이 저마다 땀 흘려 준비한 흔적을 공유할 수 있는 소중한 이 축제가 내년에도 무사히 치러지길 기원한다.

글 류태형_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제공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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