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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혹은 대담

8월호

안전하고 포용적인 공간을 위하여 ‘재난과 장애예술’ 라운드테이블

국내 최초의 장애예술인 전문 창작공간인 잠실창작스튜디오는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재난 상황을 장애예술인들은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지 들어보고 장애예술인이 안전하게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을 생각해 보는 라운드테이블을 열었다. 예술가와 장애 당사자로서의 정체성을 동시에 지닌 장애예술인과 관련 연구자들이 참여해 각자의 위치에서 겪은 사례를 나누고, 이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재단은 장애예술인들이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창작공간에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논의를 계속 이어가고 필요한 것을 해나갈 계획이다.

잠실창작스튜디오에서 열린 ‘재난과 장애예술’ 라운드테이블 현장

일시
2020년 7월 3일(금) 오후 4~6시
장소
잠실창작스튜디오 하늘연
사회
  • 문영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발제
  • 문승현 작가(잠실창작스튜디오 10기 입주작가)
사례발표
  • 박은선 창작그룹 리슨투더시티 대표
토론
  • 김환 작가(잠실창작스튜디오 10기, 현 11기 입주작가)
  • 김승수 핸드스피크 배우, 영화감독
  • 김용우 안무가, 한국장애인무용협회 회장
  • 김원영 변호사, 연극배우, <같이 잇는 가치> 기획단

문영민

문승현

박은선

김환

김승수

김용우

김원영

발제 재난과 장애예술
문영민

코로나19로 인한 장애예술인들의 피해는 장애로 겪는 일상과 사회생활의 어려움이 중첩돼 더욱 클 것입니다. 어떻게 재난 상황에 대비하고 안전하게 작업을 계속할 수 있을지 논의해 보면 좋겠습니다. 먼저 잠실창작스튜디오의 전 입주작가인 문승현 작가님께서 ‘재난과 장애예술’을 주제로 발제해 주시겠습니다.

문승현

과거 재난은 자연과 인간의 대립에서 나타나는 신의 힘으로 설명했습니다. 인간은 자연과 대립하면서 어떻게 살아남고 문명을 발전시킬지 고민해 왔다면, 현시대의 재난은 의미가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인간이 재난을 당하는 피해자였고, 재난에 맞서 싸우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현재는 인간이 스스로 재난을 만들어냅니다. 지구의 평균기온은 향후 100년간 약 1.1~6.4℃ 정도까지 급격하게 오른다는 연구 보고가 있는데요. 지금의 생활을 유지하고 에너지를 사용하면 앞으로도 평균기온은 계속 오르고 대재앙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재난을 만들어내는 주체로 등장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까요. 과거에도 그랬지만 인간 스스로 재난을 발생시키면서 장애를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재난이 공동체를 결속했지만 지금의 재난은 계속 개개인을 고립시키고 있습니다. 공동체가 와해되면서 사회적 약자, 소수자, 취약한 노인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전개되는 거예요.
장애예술은 경제위기에 취약합니다. 상업적인 자본 축적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원금을 받고 작업하는 이유는 상업적인 목적을 갖지 않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지원금이 오히려 예술가들을 어려움에 빠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장애예술이 다른 방법과 표현을 찾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문영민

재난에 대처하는 자세와 근본 원인을 알게 해주는 발제였습니다. 이어서 리슨투더시티 박은선 대표님께서 장애포괄 재난대응 사례를 발표해 주시겠습니다.

사례 발표 장애포괄 재난대응 프로젝트
박은선

기본적으로 재난 관리의 4단계는 예방·대비·대응·복구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게 하나의 연결된 서클이라는 것입니다. 교육이나 훈련이 중요하고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거의 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재난 회복력(resilience)에서 주목할 것 중 하나가 취약계층이에요. 취약계층에 대한 연구는 있지만 장애인에 대한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많지 않아요. 바우만은 예측하지 못한 피해를 본 자들을 ‘부수적 피해자’라고 명명했는데요.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 가난한 흑인이 제일 많이 죽었어요. 동일본대지진 때는 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2.5배 더 죽었다는 통계가 나왔고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취약한 곳 중 하나가 정신병동이에요.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 프로젝트에서는 2017년 포항 지진 때 대부분의 장애인이 탈출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포항에 가서 인터뷰를 했어요. 휠체어 타는 분들에게 계단 문제는 기본적인 거죠. 119 구급대에서도 구하러 안 왔고요. 활동지원사가 없는 새벽에 지진이 나서 고립될 수밖에 없었어요. 대피소에는 휠체어가 다닐 수 없고 화장실도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으니 장애인은 아무도 못 왔어요. 그리고 장애인들은 보통 사회적 관계가 거의 없어서 구하러 올 친구나 이웃 또한 거의 없기 때문에 가족이 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활동지원사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 문제였어요. 일본도 마찬가지로 이웃과의 연결고리가 가장 중요했어요.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나 1995년 한신대지진 때도 친구가 있는 장애인들은 누군가 구하러 왔는데 그렇지 않은 분들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일본도 대피소에 장애인이 없었대요. 특히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해서 쓰러지고 지붕이 뚫려 있는 집에 그냥 계셨대요. 좋은 사례는 지진이 나자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가 먼저 구하러 오고, 같은 지역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이웃들이 다 알아서 구하러 왔다는 거예요. 일본은 분리교육을 확실하게 하다 보니 초등학교에 배리어프리가 없어서 대피를 못 했대요. 결론 중 하나는 국가에서 모든 걸 해결해 주길 바라기보다 스스로 재난에 대처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는 거예요.
워크숍은 주로 서울에서 했는데요. 시나리오를 쓰는 워크숍에서는 갑자기 강의실에서 지진이 나면 어떻게 할지 상황을 주제로 내줬어요. 직접 대피하는 워크숍도 진행해 봤고요. 한두 번 해보는 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돼요. 중요한 건 시나리오를 같이 써보는 것이에요. 그리고 장소에 맞는 게 중요해요. 왜냐하면 건물마다, 건물에 있는 장애인마다 유형이 다르고 장애 정도가 다르거든요. 사실상 통합 워크숍이나 통합 재난 매뉴얼을 마련하기는 불가능해요. 8월부터는 노들장애인야학과 개개인의 장애유형별로 코로나19 대응 매뉴얼을 만들고, 연말에는 연세대 학생들과 청각장애인용 재난 대비 워크숍도 개발할 거예요. 장애대학생은 청각·시각·지체장애가 대부분이어서 3가지 유형을 중심으로 합니다. 잠실창작스튜디오를 개선할 때 고려해야 할 것은 휠체어 경사로는 필수고요. 자동 유리문은 비상시에 안 열려서 위험해요. 또 지하철역과 가까운 곳으로 옮겨달라고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문영민

저는 학교나 회사에서 재난 훈련을 하면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남아 있었거든요. 워크숍이 더 많은 공간에서 진행되고 잠실창작스튜디오에서도 이런 훈련을 하면 좋겠습니다. 여러 사회적 관계망을 개발하고 이용하는 방안도 같이 고민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제 네 분의 장애예술인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환

저는 선천적 장애인이다 보니 태생 자체가 비장애인들과 달랐어요. 어릴 때 수술을 받으면서 재활치료 과정이 길어져서 10대 시절 경험의 기회가 적고 한정적이었어요. 대학을 간 뒤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내가 가진 생각이 협소하고 잘못됐을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어요. 저는 어머니가 가르쳐준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았거든요. 교육을 받을수록 나의 잘못된 생각을 고정관념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흥미를 느낀 지점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이해와 공감은 서로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 후로는 직접 경험하고 느끼는 것, 당사자가 돼보는 것이 중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20대에는 저의 장애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고요. 잠실창작스튜디오에 와서 다른 작가들을 보면서 정체성을 확립하기까지의 과정이 다 다르고 정말 다양한 장애 유형이 있기 때문에 공감에 있어 만족감을 얻기 어렵다는 것을 배웠어요. 그 뒤로는 목표와 차별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작년에 잠실창작스튜디오의 공동창작워크숍에 선정되어 비장애인 작가들과 협업할 기회가 생겼는데요. 분야와 전공, 살아온 것, 작업 방향까지 너무 달랐지만 공통점을 하나 찾은 게 작업에 대한 노동성이었어요. 직접 재료를 구하러 다니는 식의 몸으로 하는 노동성으로 작업을 시작했고, 금천예술공장에서 숙식을 하면서 진행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어요. 처음에는 그냥 재미있게 놀자고 했는데 노동성이 반복돼서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기니 재미가 없어져버렸어요. 그 뒤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를 찾아서 미디어 작업을 시작했어요. 각자 전공하지 않은 분야에서 우리가 가진 감각들을 미디어로 표현해 보자고 했고, 직접 사진을 찍고 화면을 구성하는 식으로 했어요.
작년에 대중과의 소통 부분이 아쉬워서, 올해는 대중이 참여하는 토론 형식을 구상했거든요. 작가와 예술가에 대한 대중의 고정관념과 인식을 직접 대면하고 느낌을 알기 위해 공원이나 공공 공간을 대여하려고 했는데 코로나19로 어려워졌어요. 지금은 게릴라 형식의 해프닝을 유도하는 전시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앞으로 어떤 식으로 전시해야 하는지, 행정적인 문제는 어떻게 뒷받침될지 고민이에요. 뜻하는 바가 관람객에게 전달될 수 있는 전시 연출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문영민

코로나19 이후로는 공동 창작을 할 때 비대면으로 회의를 하거나 진행하고 계신가요.

김환

큐레이터님과 작가님들과도 화상으로 많이 만나요.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지체장애인이다 보니 이동성에 구애하지 않고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좋았고, 특히 작가들끼리 이야기하다 보면 집중이 돼서 소통이 가능했던 것 같아요. 다만 작업 진행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 걱정입니다. 비대면 상황에서 정보를 주고받지 말고 작업을 해보고 그런 채로 어떤 작품이 나올지 보자는 얘기가 나온 상태입니다.

문영민

저도 코로나19 이후 화상으로 회의를 많이 하고 있어요. 제가 휠체어를 타니까 오히려 조금 더 편해지는 측면도 있더라고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화상 회의의 활용이 가능해질 것 같아요. 다음은 극단 핸드스피크 배우이자 영화감독이신 김승수 님께서 비대면 공연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주시겠습니다.

김승수

우리나라에 청각장애인은 중도장애, 난청 등을 포함해 약 36만 명이 있습니다. 정보의 차이가 있고, 소외돼 있고, 소통이 어려워서 우리 사회 안에서 같이 교류해야 하는데 차단돼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 가지 일을 할 때도 문제가 많습니다. 저희는 <미세먼지> <사라지는 사람들>이라는 공연을 했는데 코로나19로 모두 취소됐습니다. 얼마 전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했는데, 무관중으로 네이버 온라인 생중계가 되는 공연이었습니다. 수어로 공연할 때는 청인배우(목소리를 연기하는 배우)들과 여러 명이 같이 작업하게 됩니다. 청각장애인 배우와 청인배우가 함께 맞춰보고 조율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세종문화회관 공연 당시 중계 촬영팀에 여러 명이 있었고, 화면으로 중요한 감정을 수어로 잘 전달하기 위해 카메라맨(촬영기사)과 호흡해야 했습니다. 경험해 보지 않은 온라인 중계 과정에 어려운 점이 많이 있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이 취소되면서 우리에게 닥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자료를 찾고 방법을 연구하면서 어려운 점을 해결해 나가려고 합니다. 사람들을 대면해서 공연하면 여러 가지 동작을 통해 수어로 전달합니다. TV나 매체를 통해서 보면 느낌이 조금 다를 것입니다. 직접 만나서 보면 희로애락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온라인으로 관람할 경우 화면으로 감정이 잘 전달되는지도 궁금합니다. 수어는 보는 위치에 따라 다릅니다. 각도에 따라서는 수어가 안 보일 수도 있는데, 온라인으로 관람하시는 분들을 위해 카메라에 맞춰 기존 동선을 조금씩 옮겨서 연기해야 합니다. 배우 입장에서는 연결해서 동작을 할 때 호흡이 중요하기 때문에 서로 마주 보면서 연기해야 하고 또 연출·무대감독과도 소통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변경되는 사항이 많아져 준비하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동선과 대사의 변수도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새롭게 변화된 공연 형식에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아직 정확히 모르겠지만 해결 방법을 고민하며 찾고 있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TV 화면 하단에 수어 통역이 나오는데요. 화면이 너무 작아서 수어가 잘 안 보입니다. 코로나19 재난방송에서는 수어 통역 화면이 옆으로 크게 나와서 이해가 잘 됐습니다. 수어 통역 화면이 좀 더 커지면 좋겠고, 말하는 사람 바로 옆에서 통역하면 더 좋겠습니다. 그러면 정보도 확실하게 전달될 것 같습니다.

김용우

저는 최근 3일 동안 열린 무용축제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직접 재난 상황을 경험했는데요. 무용 공연은 관객과의 호흡, 현장에서 몸으로 표현하는 감정과 에너지를 느끼는 것이 중요한데 관객을 모시지 못하는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노원문화예술회관 대극장을 빌려서 많은 관객을 초대하려고 했지만 코로나19가 진정되지 않으면서 많은 논의를 거쳐 최소 인원 예약제로 하루에 80명만 받았습니다. 대신 영상에 신경을 써서 현장에 여러 대의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여러 각도에서 찍고 편집해서 공연 영상을 만드는데요. 관객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촬영하고, 송출하고 어떤 매체를 통해서 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주변의 다른 장애예술인들의 경험을 들어보고 싶어서 지금 어떻게 대비하고 있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질문을 던졌어요. 전시는 1주나 1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나눠서 관람객이 오고 손을 소독하고 마스크를 쓰고 보기 때문에 진행이 된다고 합니다. 전시회 촬영 영상을 송출해서 공유하기도 하고요. 성악을 하는 장애예술인은 공연 자체가 취소되는 경우도 있지만, 음원으로 음악을 감상하는 데 익숙하다 보니 영상에 거부감이나 어려움이 많지 않다고 합니다. 현재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향후 어떠한 어려움이나 상황이 닥칠지 물었을 때 20~30년 동안 활동한 원로들의 말씀은 조금 달랐어요. 그분들은 굉장히 어려운 시기부터 작품 활동을 해 왔고 종종 지금처럼 어려운 재난 상황이 있었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 지금까지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당황하지 않고 작품 활동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예술인이라는 큰 틀에서 본인의 능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 와서라고 하셨어요. 작품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아야 사람들이 보고 찾아주는데 그런 것이 없으면 계속할 수 없다는 거죠. 이 상황이 지나갔을 때 계속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은 예술가로서 깊이를 더하는 것이라고 하셨고요. 저도 그 부분에 공감했습니다. 장애예술과 장애예술인의 개념에 대해 저도 계속 고민하거든요. 다양한 시도와 논쟁을 통해 부딪치고 경험해 보면서 정체성을 찾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19에 대중에게 공연을 보여주는 방법을 찾으면서 본질적으로는 장애예술의 정체성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문영민

여러 가지 감동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상적인 것은 장애예술인이 자신의 작업에서 예술성을 높이기 위해 깊이 들어가는 활동을 계속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변호사이자 배우이신 김원영 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원영

저는 포항 지진과 코로나19를 계기로 재난을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고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우 공감하는 부분은 매뉴얼을 만들 수 없다는 거예요. 최근에는 조금씩 발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현실에 적용하기는 어려워요. 기존에는 장애인 복지시설, 특수학교 등에 안전망을 갖추는 방식이었는데 그게 완전히 달라져야 해요. 이제 장애인이 격리되지 않고 어느 공간이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야 한다는 합의가 있고 실제로도 그러니까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한데 매뉴얼들은 비현실적입니다. 아주 구체적인 개인과 공간의 특성에 따라 무수한 경우의 수가 생기기 때문에 일반적인 매뉴얼을 만드는 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큰 틀에서 제시할 수는 있겠죠. 이를 테면 최소한의 장비와 전동휠체어 타는 장애인을 옮겨놓을 수 있는 의자나 수동휠체어,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경보, 청각장애인을 위한 빛을 이용한 경보를 갖춰야 한다고 제시할 수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장애인 개개인에 맞는 구체적인 대피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재난상황에 닥쳤을 때 예를 들어 김환 작가님, 김승수 배우님, 김원영이 대피하는 방식이 다 다르거든요. 중요한 건 어떻게 대화하느냐입니다. 자신의 몸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해요. 예를 들면 공연장에서 처음 보는 하우스 어셔와 대피 계획을 얘기하려면, 업고 갈 수 있는지, 잡아주면 걸을 수 있는 지 등을 물어봐야 하는데 사실 이런 걸 묻고 답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예요. 열린 상태에서 서로 신뢰를 가지고 대화하는 연습을 해야 하고요. 장애인 자신도 충분히 탐색하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과 대화하면서 대피 계획을 만들어야 하는데 공연장은 매우 제한적이죠. 그렇지만 잠실창작스튜디오라면 입주작가들과 계획을 세울 수 있어요. 중요한 건 꼭 비장애인 매니저가 장애인 작가를 도와줘야 한다는 인식을 깨는 겁니다. 이를테면 시각장애인 작가와 청각장애인 작가가 있는데 화재가 발생하면, 청각장애인 작가가 음성경보기를 켜서 시각장애인 작가한테 위기 상황을 알릴 수 있죠. 반대로 시각장애인 작가가 위험이 발생했다는 소리를 듣고 조명을 이용한 경보장치를 작동할 수 있어요. 서로 지켜주고 돌보는 규칙을 만들고 연습하는 게 중요합니다. 잠실창작스튜디오가 이사를 간다면 기본적인 시설과 장비는 당연히 갖춰야겠지만 그것만으로 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이런 대화가 왜 중요하냐면 우리가 비상행동을 하는 경계를 앞당길 수 있어요. 만약에 이 행사 시작 전에 매니저님과 ‘위험한 상황에서 제가 업고 가면 될까요?’ ‘네, 제가 업힐게요.’ 이런 대화를 했다고 해보죠. 어딘가에서 화재경보가 울리면 처음에는 안 움직이려고 할 겁니다. 계속 울리면 탈출해야 하는데 저는 업혀야 하니까 심리적인 장벽이 크잖아요. 만약 매니저님이 저의 몸을 잘 알고, 저는 업히는 연습을 해봤고 그것이 불편하지 않다면 경보가 울렸을 때 조금 더 빨리 그 상황으로 진입하겠죠. 서로 익숙해지는 연습이 사전에 시행된다면 작은 위험 경보에도 곧바로 반응할 수 있어요. 익숙해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재난 시기가 전환점이 되길
문영민

마지막으로 재난 시기에 장애예술인들이 안정감을 누리는 공간을 위해 갖추어야 할 것과 못다 한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박은선

인터뷰를 하다 보면 ‘일상이 재난’이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하세요. 충격을 별로 안 받았고, 지진이라고 특별히 무섭지는 않았다는 말을 들었어요. 포항에서 만난 여자 분은 미술관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어요. 문화시설이 서울보다 없기도 하고 교통도 불편하니까요. 제일 필요한 게 경험이라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사실 저는 금천예술공장·신당창작아케이드에도 장애인들이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못 들어가면 시설을 다시 만드는 게 맞고요. 2018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했을 때도 장애가 있는 분들을 초대했는데 시간 맞춰 오기가 너무 어려운 거예요. 만약 미술관에 장애인들이 편하게 들어올 수 있다면 재난 대비를 안 해도 돼요. 배리어프리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재난에 대비하겠어요. 재난 시기에 장애인의 취약성이 드러난다기보다는 배리어프리가 먼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환

비슷한 의미로 저도 예전부터 변하지 않는 신념 중 하나가 장애인 당사자들이 사회로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각자 장애도 다르고 장애 안에서도 정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잖아요. ‘잠실’처럼 예민하게 반응하고 도와주는 분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알고 나와주면 좋겠고,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용우

장애예술을 하면서 공연하다 보니 대관할 때 대기실에서 무대로 가는 통로가 계단인 경우가 굉장히 많고요. 휠체어 타는 장애인을 초청하고 싶어도 제약이 많습니다. 장애인석은 부족한데 중간 통로도 비상 통로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해요. 이음센터에서 장애인전용극장을 준비하고 있는데 좌석의 활용 부분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장애예술계에서 활동하다 보면 예술이면 다 예술인데 왜 장애를 붙이냐고 하지만,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는 보호막이 필요해요. 그 이후부터는 비장애인 예술가와 1:1로 경쟁합니다. 단순히 예술 활동을 하는 것과 창작을 하는 것은 달라요. 무용은 안무도 하고 창작을 해서 공연을 연출하는데, 지원사업에 신청하면 많은 경우 비장애인 예술가와 경쟁합니다. 예술가로서 성장해야만 오래 살아남을 수 있고,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본질이라는 이야기를 다시 한번 하겠습니다.

문영민

코로나19는 장애예술인들이 언제나 겪어왔던 어려움과 처우, 장애예술정책의 부족함이 드러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이 상황을 장애예술인들이 새로운 만남이나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전환점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고요. 또 다른 재난이나 위기를 만났을 때 오늘의 논의가 예술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의미 있는 작업을 만들어내는 데 씨앗이 되면 좋겠습니다.

정리 전민정_객원 기자, 문화정책 연구·기획
사진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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