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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2월호

청년 지원사업에 대한 제언 청년들의 등을 떠밀 때
얼마 전 안동에서 일군의 청년 그룹을 만났다. 서울 청년들이 6개월 동안 경북 지역에 살면서 인턴십 활동을 하는 ‘청정(靑停, 청년이 머무는 곳)경북 프로젝트’의 참가자들이었다. 서울시가 후원해서 비용을 지불하고 경상북도의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후원하는 업체 중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서 인턴 경험을 쌓는 모형이었다. 활동 기간 동안 급여가 지불되고 교육과 멘토링이 지원되는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은 정교했다. 지자체 중 예산 여력이 많은 서울시가 지원하고 지방 소멸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경상북도가 적극적으로 협력해서 모형을 만들고 여러 곳에서 청년 교육봉사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단법인 점프가 관리를 맡았다. 시범 사업인데 참가자가 원하는 경우 내년에 1년(활동 기간은 10개월) 더 참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사업이 지향하는 방향이 참가하는 청년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청년의 자립을 돕는 프로젝트이긴 하지만 청년들의 지방 정착을 유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행감독 자격으로 그들에게 멘토링하기 위해 찾아갔는데, 나의 첫 주문은 경북에 여행 온 것처럼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서울시에 대해서 경상북도에 대해서 어떤 부채감도 갖지 말고 오직 본인만 생각하라고 말했다.
맞선을 본 사람과 친구가 되기는 쉽지 않다. 결혼을 하거나 남이 되는 선택지뿐이다. 마찬가지로 경북을 ‘정착할 곳’으로만 평가한다면 정착하거나 등을 돌리는 경우의 수만 있을 뿐이다. 결혼을 전제하지 않고 만나야 상대방을 평가하려 하지 않고 그의 인간적인 매력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경북을 정착하기 위한 곳으로 평가하지 않고 경북의 매력을 보려면 정착이 전제되지 않아야 한다.
기성세대도 해내지 못한 지역 정착을 청년에게 해내라고 하는 것은 가혹하다. 특히 지역의 청년들이 대도시로 떠나는 상황에서 이는 고립과 단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청년이 도피처로 지역을 택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자발적 유배’여야 한다. 청년들의 등을 떠밀어서 지역 소멸을 막으려고 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1 ‘원산도 청년 탐험대’ 모습.
2 ‘청년예술가 지리산기행’ 모습.

청년을 위한 나라

‘청년 섬 캠프’, ‘섬 청년 탐사대’, ‘원산도 청년 탐험대’, ‘연홍도 예술섬캠프’, ‘청년예술가 지리산기행’ 등 거의 매년 청년을 대상으로 한 지역 여행을 기획했었다. 그때 경험했던 청년과 지역의 절묘한 만남은 청년들이 ‘불편한 사치’를 누릴 줄 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결핍되고 불편한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들은 자신들만의 여행 문법을 만들어냈다. 덕분에 지역은 끝없이 재발견될 수 있었다.
청년들의 시각은 참신했다. 지역 개발의 허점을 단박에 간파해냈다. 전남 보성의 장도에 갔을 때의 일이다. 일행 중에 전시 큐레이터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마을 이장님은 벽화를 그려줄 화가들을 소개해달라고 사정했다. 마을 주민들이 왜 우리 마을에는 벽화가 없냐고 닦달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장님에게 벽화 없는 골목을 걸을 때 청년들이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와, 이 골목은 벽화가 없어서 너무 좋다. 정말 깔끔하다.”
‘청정경북’의 중간지원기관 역할을 하고 있는 사단법인 점프에 한가지 부탁을 했다. 청년들에게 기회만 주고 결과물을 요구하지는 말아달라고. 좋은 기회라면 좋은 결과물이 반드시 뒤따를 것이라고. ‘청년예술가 지리산기행’을 진행했을 때의 일이다. 한 해금 연주자가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 계곡의 구름다리 위에 앉아 하염없이 계곡을 바라보았다. 얼마 뒤 연주회에서 만났을 때 그 연주자는 신곡을 들려주었는데 그때 계곡에서 들었던 물소리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이라고 했다.
왜 노인을 위한 복지에는 결과물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청년을 지원할 때는 결과물을 압박하는 것일까. 노인을 위한 복지에는 악순환 구조가 있다. 이런 식이다. 게이트볼을 즐기는 어르신이 늘었다. 그 어르신들이 비가 올 때도 게이트볼을 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면 지자체 정치인들은 예산을 확보해 지붕을 만들어준다. 지붕을 만들면 조명이 필요해진다. 조명 시설이 더해지고 그런 식으로 시설이 갖춰질수록 게이트볼장은 폐쇄적으로 운영된다. 노인정 등 대부분의 노인복지 시설이 그렇다. 하지만 이 비효율에 아무도 시비 걸지 않는다.
반면 청년을 위한 복지는 선순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유형의 결과물을 요구하지 않아도 그들은 자신들이 거친 공간을 매력적인 공간으로 바꿔놓는다. 지역의 문화적 도시재생 결과물들은 이들에 대한 후원이 얼마나 가성비 좋은 투자인지 충분히 증명했다. 청년들이 구축해놓은 문화 생태계를 기성세대가 함께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지역이 살아났다.
아무쪼록 청년들의 등을 떠밀 때 옵션을 달지 말자. 그들을 지원하면서 얼마나 거둘 수 있을까를 계산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청년들의 상황이 이런 지경에 이르게 한 것에 대한 보상과 배상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노인을 위한 복지와 마찬가지로 이것 또한 사회의 의무일 것이다.

글·사진 제공 고재열_시사I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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