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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

<멀티탭: 감각을 연결하기>예술로 메운 우리 사회의 신체적·심리적 ‘틈’
우리 곁엔 다양한 양태의 사회적 장애인 ‘차별’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넓게는 자본, 지위, 권력의 유무로 인한 사회적 계급이 파생시킨 차별이 만연하고,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행되는 격리 통제도 여전하다. 장애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신체적 차이가 인식의 차이를 잉태하며 인식의 차이는 사회적 차이를 소환한다. 그리고 그 다양한 차이들은 결국 ‘막’과 ‘층’이 고착된 사회, 차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구조를 생성한다.

‘막’과 ‘층’을 해체하기 위한 공적 시도

서울문화재단이 올해 처음으로 기획한 ‘공동창작 워크숍’은 이와 같은 ‘막’과 ‘층’을 해체하기 위한 공적 시도이다. 겉으론 서로 다른 조형언어와 가치관을 지닌 예술가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지만, 실은 예술을 통해 장애와 비장애인 간 존재해온 ‘경계’ 혹은 ‘벽’을 허물기 위한 ‘과정 중심’의 프로젝트라고 보는 게 옳다.1)
동시대 만연한 ‘경계’와 ‘벽’을 허물기 위한 이 움직임에는 금천예술공장과 신당창작아케이드, 잠실창작스튜디오의 입주작가 7명2)이 참여했다. 거의 동고동락하다시피 하며 스스로의 탐색과 조율의 시간을 거친 이들은 지난 6월 각각 ‘병풍풍경’과 ‘Happy Hour’란 이름의 팀을 구성한 이후 약 5개월을 함께했다. 처음엔 막연히 무언가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라 생각했으나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동안 활동해온 분야를 비롯해 경력, 성격, 미적 가치관, 조형에 대한 방법론까지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술 장르의 특성상 혼자 하는 작업에 익숙한 작가들에게 공동 작업은 생소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작가들은 예술로 신체적·심리적 ‘틈’을 메웠다. 교류-공유를 발판으로 한 공통의 접점 찾기는 낯선 사람을 마주하는 사람으로, 아는 사람을 같이하는 사람으로 변화시켰으며, 꽤나 공들인 ‘와닿음’과 ‘스며듦’에 관한 노력은 결국 ‘동등한 예술생산자’라는 공통의 가치관을 더욱 견고히 할 수 있게 했다.

‘병풍풍경’과 ‘Happy Hour’

‘병풍풍경’은 홍세진 작가의 <병풍과 풍경>이란 제목의 작품에서 힌트를 얻어 의견을 나눈 후, 이를 바탕으로 작가별 작업을 전개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하나가 된 작품들은 각자의 내용과 기술적 방식을 유지하되 상호 티칭을 통해 나눈 대화와 생각 등을 기록한 작업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Happy Hour’ 팀은 ‘과정’을 예술의 일부로 삼았다. “서로가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것이 달라 소통하는 방식이 원활하지 않았기에 함께 먹고 자고 그림을 그리며 몸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했다.”3)‘병풍풍경’과는 다르게 자신의 작품들은 들어설 틈을 허락하지 않은 대신 재미4)를 전제로 한 ‘놀이’에 방점을 두었다. 그리고 그 놀이는 전시가 개막하기 전까지도 쉼 없이 이어져 어떤 작품이 나올지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병풍풍경’과 ‘Happy Hour’ 팀이 제작한 결과물은 지난 11월 6일 JCC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멀티탭: 감각을 연결하기> 5)전을 통해 공개됐다. ‘병풍풍경’ 팀은 각자 진행한 작가별 작업을 하나로 모아 커다란 구성적 형태의 작업을 선보였다. 홍세진은 시청각의 다른 세계를 하나의 풍경으로 묶었고, 신이피는 여러 동물들이 진화하고 퇴화하는 것에 관련한 영상을, 최일준은 안과 밖에 관한 작가의 시각을 알루미늄 판 위에 그렸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서로 맞춰가는 퍼즐처럼 개별적 경계를 극복한 미적 거버넌스(governance)의 한 사례이자 “각자가 주인공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병풍이 되어주기도 하는 형태”6)의 조형이 되었다. 이는 단순한 작품을 넘어 함께한 시간의 축적을 재현한 것이기도 했다.
‘Happy Hour’ 팀이 내건 영상작품은 일종의 ‘프로세스 아트’(process art)에 가까웠다. 1960년대 촉발된 과정미술이 그러했던 것처럼 참여 작가들은 예술의 형식주의와 인간 감정 부재에 이의를 제기하듯 ‘고깔’7)을 도구로 한 놀이의 흔적 또는 그 놀이의 ‘과정에서 산발하는 것들’에 충실했다. 그것은 온전히 보는 이들의 각기 다른 ‘감정’과 ‘반응’에 국한되는 것이었고, 전시물 역시 정답이 없는 결과였다.

<멀티탭: 감각을 연결하기>전의 의미

‘공동창작 워크숍’의 의미는 단지 장애·비장애인 작가들이 모여 시각적 결과물을 도출해냈다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경계를 허물어 공동공존의 주체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예술가들 스스로 마련했다는 데 있다. 지난 5개월간 체험 가능했을 법한 주체성의 이양을 통한 관용과 배려, 양보와 이해, 동등의식 역시 중요한 의의에 해당된다. 나아가 이 프로그램은 그 시도만으로 우리 사회에서 인정받아야 할 다양성을 증진시키면서 동시에 예술기관과 예술가들이 함께 빚은 성과 및 유무형의 생산성 향상이라는 후광까지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꼭짓점에는 장애 예술인과 비장애 예술인의 의식적, 실질적 평등과 차별 없는 사회적 관계가 놓였다.
그런 차원에서 <멀티탭: 감각을 연결하기>전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틀리다’가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개념을 시각예술로 재확인시킨 장이었으며, 우리 사회에 필요한 다양성 존중을 조형으로 제시한 무대였다. 물론 작품 자체만으론 이해하기 쉽지 않았겠으나, 내적으론 인위적 통합을 넘어 각기 다른 삶의 주체가 자발적으로 결합하고 해체되며 다시 관계를 맺는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미적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 외적으론 대중들이 나와 다른 삶의 영역으로 들어설 수 있는 융합의 길을 내보였다는 사실도 이번 전시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글 홍경한_미술평론가
  1. 서울문화재단의 경계 허물기는 지난 5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장애와 비장애의 공존을 위한 문화예술포럼 ‘같이 잇는 가치’를 통해서도 이미 확인된 바 있다.
  2. ‘병풍풍경’ 팀은 신이피(금천예술공장, 영상·설치), 최일준(신당창작아케이드, 금속조형), 홍세진(잠실창작스튜디오, 회화) 작가로 구성되었으며, ‘Happy Hour’ 팀은 김환(잠실창작스튜디오, 회화), 신이서(신당창작아케이드, 도예), 최챈주(신당창작아케이드, 도예), 조경재(금천예술공장, 설치) 등 총 4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3. ‘Happy Hour’ 팀의 신이서 작가 인터뷰 중.
  4. 이에 대해 조경재 작가는 “재밌게 하자…(중략)…우리가 좋아해야 관객이 좋아하고, 그렇게 다 같이 즐길 수 있어야 문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5. ‘멀티탭’은 하나의 콘센트에 여러 개의 전기기구를 연결해 사용하는 제품을 의미한다. 각자의 시그널을 발산하는 예술가들을 멀티탭처럼 연결해 공감, 공명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공동창작 워크숍’의 개념을 함축한다.
  6. ‘병풍풍경’ 팀의 신이피 작가 인터뷰 중.
  7. 작가들이 영상에서 고깔을 사용한 건 세상을 보는 시각에 대한 각기 다른 의미가 들어 있다. 신이서는 “좁은 구멍으로 바라보기”를 강조했고, 김환은 “소재는 중요하지 않았다”며 “어떤 아이템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하는 4명의 사람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조경재는 “고깔을 통해 우리들과 우리들 주변의 상황의 관계를 바라보았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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