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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12월호

추억을 소환하는 복고, 새로운 상상력을 더하다
우리가 뉴트로에 열광하는 이유

요즘 유행인 ‘뉴트로’를 단순히 복고 열풍이나 추억팔이로 치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추억을 소환해 과거를 그저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재해석해 새로운 문화로 만드는 보다 적극적인 움직임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뉴트로 열풍에 관한 단상을 전한다.

1 빈티지 물건으로 채운 을지로의 한 뉴트로 카페. (사진 전유안)

촌스러움이 개성으로

일찍 퇴근한 어느 저녁, 20대 딸과 함께 채널을 여기저기 돌리다 1980년대 가요 프로그램 재방송을 보게 됐다. 변진섭, 이승철, 이선희, 주현미…. 추억의 가수들이 나와 부지런히 추억의 히트곡을 부르고 있었다. 그 시절이 자동 소환됐지만 행여 나와 다른 밀레니얼 세대인 20대 딸과 같이 TV를 보는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 깨질까 슬쩍 눈치를 봤다. 하지만 딸은 자기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방송된 프로그램에 꽤 흥미를 보였다. 사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 시절 노래라면 이미 숱하게 리메이크돼 음원 차트에도 올랐고, <응답하라> 시리즈 같은 히트 드라마의 OST로 우리의 마음을 울리기도 했다.
웬만한 레전드급 가수들은 <히든싱어> 같은 프로그램으로 그저 옛 가수가 아닌 현실의 레전드가 됐다. ‘공감의 교집합’에 자신감을 얻은 나는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섞어가며 가수와 그들의 데뷔, 히트곡, 인기의 부침과 시대의 풍경까지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촌스러운 무대, 요즘 칼군무와 너무 다른 백댄서들의 무용 등 한눈에 보이는 ‘문화적 시간차’에 대해 이야기했고, 1990년대를 전후해 우리 가요가 발라드부터 록·댄스·트로트·힙합까지 굉장히 다양해졌다는 이야기, 뛰어난 서정적 명곡이 참 많았다는 이야기도 나눴다. 그러다 딸의 한마디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때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개성적인 것 같아. 패션이….”
엄혹한 1980년대, 개성이라곤 허락되지 않던 시대에 개성적이라니. TV에선 대학가요제 출신의 여러 가수들이 함께 노래하고 있었다. 항아리형 디스코 청바지, 아무렇게나 걸친 티셔츠, 마구 볶아 부풀어오를 대로 부푼 파마머리, 커다란 뿔테 안경…. 이들을 한꺼번에 잡은 풀숏을 보다 보니 딸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물건이 넘쳐나는 세련된 풍요의 시대에 태어나 현실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조금 부족하고 촌스러운 패션이 오히려 새로워 보일 수 있겠다는, 기획사 출신 아이돌과 다르게 별다른 연출도 없이 목청껏 노래를 부르는 순정한 열기가 우리 시대에 매우 드문 ‘힙(hip, 개성 있고 세련된)함’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쓰다 보니 좀 길어지긴 했지만 이 저녁 풍경에 요즘 일고 있는 ‘뉴트로 열풍’의 단면이 들어 있다. 옛것, 소환과 복고, 단순한 중년의 추억몰이가 아닌 새로운 세대의 힙한 문화와 정서에의 소구.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을 말하는 ‘뉴트로’의 구성 요소들이다.
요즘 열풍인 뉴트로의 긴 리스트에는 이미 설명한 옛 가요의 인기가 있다. 유튜브에선 1990년대 가요 프로그램이 ‘온라인 탑골공원’이라는 애칭으로 인기를 누리고, 스트리밍 시대에 중고음반 시장에선 H.O.T., 솔리드, 쿨의 카세트테이프를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삐삐·PC통신에 핑클의 <영원한 사랑> 같은 1990년대 가요가 나오는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과 1994년을 배경으로 한 14살 소녀의 성장담 <벌새>가 차례로 개봉됐다. 트레이닝복, 후드티, 배꼽티 같은 복고 아이템들이 힙한 패션 코드가 되고 인쇄소, 조명 상가, 각종 공구 업체가 밀집했던 서울 을지로 뒷골목은 젊은이들이 찾는 최신 유행 거리가 됐다. ‘힙지로’ 말이다.

2 영화 <벌새>.

레트로에서 뉴트로 구분하기

사실 ‘복고’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익숙한 현상이다. 추억이 갖는 위로의 그 위대한 힘을 우리 모두 잘 안다. 또 소비자 세대를 순식간에 확대하는 데 복고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복고 코드는 심리적으로 사회적 스트레스 지수가 높을 때, 경제적으론 불황기에 등장한다고 한다. 복권 판매가 역대 최고를 기록할 정도로 불황인 ‘지금, 이곳’의 형편이 뉴트로 열풍의 이유로 꼽힐 수 있다. 새로운 것이 넘쳐나지만 속도와 경쟁에 모두가 피곤한 시대, 사람들이 오래된 물건과 장소에서 위로를 찾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만 복고(레트로)가 단순히 추억을 소환해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이라면 뉴트로는 과거를 재해석해 새로운 문화로 만드는 보다 적극적인 개념이다. 우리 문화의 두께가 이제 돌아보고, 새로운 문화적 에너지로 삼을 만큼 두터워졌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반대로 너무 많은 콘텐츠가 생산되는 시대, 바닥난 상상력의 원천을 원석을 꺼내 보듯, 과거의 문화에서 찾으려는 의식·무의식적 시도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아카이빙도 복원도, 공유, 변형도 손쉽게 가능케 하는 테크놀로지와 무서운 확산을 만들어내는 SNS가 뉴트로 열풍에 속도를 더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뉴트로가 신조어이긴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라는 사실도 짚고 싶다. 문화란 언제나 당대의 문화적 감수성, 당대의 문제의식, 당대의 기술과 결합하기 마련이다. 복고라고 예외가 아니다. 복고에도 추억팔이로 끝나는 일차원적 복고가 있고, 새로운 문화적 상상력이 되는 현재적 의미의 복고, 뉴트로도 있다. 지금뿐 아니라 언제나 그랬다. 역사적으로 보면 르네상스야말로 거대한 인류사적 뉴트로라고 할 수 있다. 또 모두에게 값싼 일차원적 복고라도, 누군가 그것을 보고 새로운 에너지와 상상력을 얻는다면 그 순간 뉴트로가 된다.
그런 점에서 레트로에서 뉴트로를 구분해내려는 우리 시대의 시도 자체가 ‘뉴트로’일 수 있다. 더 이상 과거에 머물지 말고, 현재적 의미를 만들어내려는 시대의 정서가 보인다. 과거를 불러오되 과거에 붙잡히지 않겠다는 생산적 아이러니, 위로는 받되 삶에서든 문화에서든 그 힘으로 현재적 의미를 찾아내 새로운 것을 향해 가고 싶다는 조용한 모색의 의지, 우리 시대 뜨거운 뉴트로 열풍 아래 그런 의지가 아름답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글 최현미_문화일보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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