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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1월호

아이돌에 대한 고찰화려한 불빛 뒤 그림자를 봐야 할 때
‘아이돌’(Idol)은 본래 우상을 뜻하는 말이다. 사람들이 존경하고 숭배하는 대상이라는 뜻이다. 시대가 바뀌고 연예계 스타들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이 단어의 뜻이 조금씩 변했다.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면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이 단어를 두고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젊은 연예인. 주로 가수를 이른다’라고 설명한다.

하나의 직업군이 된 아이돌

1992년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은 여러모로 아이돌의 본래 뜻에 어울리는 존재였다. 특정 세대만이 아니라 전 사회 구성원의 고른 관심과 지지를 받았고, 그만큼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도 컸다. 하지만 이후 등장한 이른바 ‘아이돌 1세대’ 가수들의 양상은 좀 다르다. 아예 이름에서부터 10대의 대변자를 자처하고 나선 H.O.T.(Highfive Of Teenagers)는 청소년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지만, 다른 세대로까지 넓혀가진 못했다. 사실 애초에 그럴 의도도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10대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스타 대신 자신들만을 위해주는 ‘나 또는 우리들만의 스타’에 더 열광하는 법이다. SM엔터테인먼트는 바로 그 지점을 누구보다도 영민하게 파고들었다. 이 시기부터 아이돌은 10대들의 사랑을 받는 댄스 가수를 지칭하는 말로 의미가 다소 좁아진다.
H.O.T.의 어마어마한 성공 이후 비슷한 가수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왔다. 그러자 아이돌의 의미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10대들의 관심과 사랑을 얻어내는 데 성공한 댄스 가수뿐만 아니라 이를 목표로 하는 비슷한 부류의 모든 가수들을 지칭하는 용어가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상관없이 일단 10대들에게서 인기를 얻고자 특정한 콘셉트를 가지고 데뷔한 가수들은 모두 아이돌로 불렸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앨범이 ‘폭망’해 인기가 전혀 없는 아이돌도 존재할 수 있다. 이런 가수들이 하는 음악은 ‘아이돌 음악’이라는 하나의 장르처럼 분류되기 시작했다.
아이돌은 이제 하나의 직업군이 됐다. 아이들의 장래희망 조사에서 대통령, 과학자, 선생님 등이 차지하던 앞자리는 아이돌에게 돌아갔다. 수많은 아이들이 아이돌이 되기 위해 연예기획사 오디션을 보고, 고되고 기약 없는 연습생 기간을 기꺼이 감내한다.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자녀를 아이돌로 만들기 위해 온갖 뒷바라지를 마다하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건 아이돌이 현대판 계급상승의 대표적인 수단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성공한) 아이돌이 되면 돈과 인기, 명예가 한꺼번에 따라온다. 죽어라 공부해도 좋은 대학에 갈지 말지 불투명하고, 좋은 대학을 나와도 좋은 직장에 갈지 말지 불투명한 세상에서 한 번에 수직상승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아이돌이라 믿는 것이다.

<프로듀스×101>. (CJ ENM 제공)

성공한 아이돌은 행복할까?

이런 믿음과 절박함에서 태어난 것이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그 좁디좁은 문을 통과하고자 자신의 모든 걸 걸고 도전하는 이들을 보며 사람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진심으로 응원했다. 환풍기 수리공 허각이 <슈퍼스타K2>에서 우승한 것은 성공신화 그 자체였다.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에다 아이돌 요소까지 결합하면 효과는 극대화된다. 바로 시즌제 예능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의 탄생이다. 전문가 심사위원단 대신 100% 시청자 투표로 최종 합격자를 뽑는다는 ‘국민 프로듀서’ 개념은 나만의 아이돌 스타를 내가 직접 키운다는 판타지를 자극해 사회적 신드롬까지 일으켰다.
하지만 이런 환상은 얼마 안 가 허울뿐인 신기루였음이 드러났다.<프로듀스×101>의 최종 합격자가 정해진 직후 시청자들 사이에서 투표 조작 의혹이 일었고, 이는 수사를 통해 점차 사실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아이돌의 공정성 신화는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 애초 아이돌 세계에서 100% 엄밀한 공정성이 가능하긴 했던 것일까? 아이돌 그룹은 철저한 기획의 산물이다. 아이돌 그룹을 구성할 때 멤버들의 능력, 외모, 성격, 캐릭터 등을 철저하게 분석해 포지션을 정해도 성공할까 말까다.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무조건 성공시켜야 하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 구성을 오롯이 시청자들에게만 맡기겠다는 걸, 업계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은 처음부터 믿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이렇게까지 대놓고 조작할 줄은 몰랐다는 게 알리바이라면 알리바이일 터다. 이번 사태는 어떻게 해서든 성공신화를 만들고 그 과실을 나눠 먹으려는 방송사와 연예기획사들의 구린 공생관계를 드러낸 대표적 사례다.
그렇다면 성공한 아이돌은 행복할까? 일반화하긴 그렇지만, 최근 설리의 사례에서 보듯 마음의 병을 얻어 극단적인 선택을 할 만큼 힘든 상황에 처한 아이돌이 적지 않다. 어릴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극심한 경쟁에 내몰리는 연습생 생활, 어렵게 데뷔한 이후에도 끝날 줄 모르는 경쟁 속에서 언제 추락할지 몰라 불안에 떨어야 하는 나날들, 개인 영역을 침범당하기 일쑤고 비수보다 날카로운 악플과 선정적 보도에 시달려도 꾹 참아야만 하는 환경…. 돈과 인기와 명예를 위해서라면 이런 고통은 감내할 만한가? 세계로 뻗어가는 케이팝의 화려한 불빛 뒤에는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그림자가 있다. 이젠 그 그림자를 봐야 할 때다.

글 서정민_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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