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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호

<쓰다 21호> 대답하지 않는 소설


‘쓰다’ 21호 포스터. (웹진 [비유] 제공)

지난 8월 27일에 발행된 웹진 [비유] 21호의 ‘쓰다’ 코너에는 신인 소설가의 작품 8편이 실렸습니다. 지난 20호는 아동문학 특집, 19호는 시 특집으로 꾸려졌으나, 보통은 동시, 시, 동화, 소설, 산문을 두루 다루며 등단, 비등단 작가를 구분하지 않고 작품을 싣고 있습니다. 저는 ‘쓰다’를 5호부터 맡아 편집하고 있는데요, 딱 한 번 신년 특집호를 제외하고는, 청탁이 간 명단에서 낯선 이름을 찾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 독서가 편협하기도 하고, [비유]를 통해 자신의 첫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도 많으니까요. 그렇게 이름을 모르니 당연히 편견 없이 읽어야 하는데, 혹시 제가 이름도 모르겠다는 편견으로 글을 읽는 건 아닌지 무섭기도 합니다. 그러다가도 일단 좋은 작품을 만나면 마음이 놓입니다. 작품이 좋으면 작가의 이름을 다시는 잊지 않게 되거든요. 신기한 일입니다. 그렇게 제 기억이 붙잡고 있는 작품을 소개할 수 있어 좋습니다.

<그는 매미를 먹었다>, 이서수

주택가 골목에서 덮밥집을 운영하는 한사장은 늘 어리둥절합니다. 자금 사정에 맞추어 선택한 덮밥집의 위치, 적정 가격을 맞추려고 선택한 냉동고기에 손님들이 왜 의문을 표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가게 앞을 오가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닌데. 눈에 잘 띄도록 밝게 꾸민 가게가 눈에 보이지 않을 리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한사장 망하게 하려고 동네 사람 다 같이 덮밥집에 가지 말자 의기투합했을 리도 없습니다. 일 년 내내 비수기나 다름없는 주택가 골목, 덮밥집 앞 의자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다가, 기다림이 일이 되어버린 한사장이 어느 날 문득 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

그는 은행나무 아래로 터벅터벅 걸어가 손날로 나무의 몸통을 내리찍었다. 몇 번을 반복해도 매미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막걸리를 마시고 있던 사내가 호기심 어린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잠시간 나무를 노려보던 그는 이윽고 나무에 매달렸다. 두 팔과 두 다리로 몸통을 감아 끈덕지게 매달렸다. 매미가 다시 울었다. 동시에 수피가 따뜻해졌다. 매미의 울음소리가 나무의 심장 박동 같았다. 그는 매앰매앰 소리를 냈다. _<그는 매미를 먹었다> 부분

여름 한철 울기 전까지 매미는 길게는 10년 이상 땅속에서 굼벵이로 살아갑니다. 매미가 얼마나 열심히 우는지는 우리 모두가 압니다. 19년 전부터 덮밥집을 해왔지만, 그동안 한 번도 돈을 벌어본 적 없지만, 한사장은 견뎌왔습니다. 하지만 올여름은 유난히 힘듭니다. 그러다가 한사장은 나무에 매달려 매미처럼 울고 바닥에 매미를 싸고 급기야 죽은 매미를 먹습니다. 그런 식으로 매미의 울음처럼 요란했던 고통의 시간에서 그는 벗어났을까요? 한사장은 다시 가게 앞 의자에 앉아 “여전히 그의 가게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으니까요. 어쨌든 한사장이 삼킨 죽은 매미는 그의 뱃속에서 여전히 울고 있습니다. 그는 정말로 ‘울음을 삼키다’라는 관용구를 실천해버린 것입니다. 소설가 이서수는 어떤 서글픈 말을, 정말로 말 그대로 실천하는 인물을 그려냅니다. 그렇게 슬픈 존재가 지금 우리들 옆집에 실제로 살고 있다는 듯이 말입니다.

<캠벨타운 임대주택>, 서수진

다니엘 리는 호주 교포이고,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는 정부지원 임대주택을 관리하는 일을 합니다. “살던 사람이 이사 나간 후” 다음 가족이 이사 오기 전까지 “빈집을 찾아가 상태를 점검하고” 견적을 내는 일입니다. 이번에도 캠벨타운의 빈집을 관리하려 찾은 다니엘은 한 여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그 빈집에 먼저 살던 사람입니다. 그녀는 자기가 살던 그 집에서 어떤 물건을 찾아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합니다.
그녀가 살던 집은 엉망이었고, 다니엘은 자기 부모님이 운영하는 청소업체에 청소를 의뢰합니다. 귀찮은 일에 엮이지 말라는 뜻에서 그는 부모님께 여자의 존재를 미리 알리고 그녀를 집 안에 들이지 말라고도 충고합니다. 하지만 결국 다니엘의 부모는 한국인 여성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합니다. 그녀는 다니엘을 통해 구하려던 물건을 그의 부모님께도 요구했고, 부모는 그 물건을 찾지 못하자 가난한 그녀가 그저 돈을 원한다고 생각하여 돈을 건네기에 이릅니다.

청소용 비닐봉지에 돈을 넣어서 줬어. 이거 해서 얼마 받는다고 100불이나 넣어서 줬는데, 그 여자가 고맙다고 받아들더니 열어보고는 냅다 달려드는 거야. 아니 고등학생들이 싸우는 것처럼 그렇게 니 아버지를 밀쳐서 넘어뜨린 다음에 뺨을 막 때리더라고. (……중략……) 그 여자가 니 아버지 뺨을 때리면서 정신 차리라고 하는 거야. 꼭 물에서 사람을 꺼내서 쥐어흔드는 것처럼. _<캠벨타운 임대주택> 부분

이 소설의 아름다움은 여기에 있습니다. 여자가 찾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다니엘의 생각처럼 마약이나 혹은 돈이었을까요? 어쩌면 결말까지 이 소설은 우리가 원하는 정확한 답을 알려주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훌륭한 소설들처럼, 이 소설 역시 어떤 정확한 답 대신, 인간이 지켜야 할 것에 관한 정확한 질문을 던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글 김잔디_ [비유]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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