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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공감

10월호

책 <전라도 섬맛기행>과 <열두 달 계절 밥상 여행> 토속 음식의 전통은 변방에서 이어진다
“쌀뜨물을 넣고 끓인다. 뽀얀 국물이 우려난다. 한 수저를 뜨자, 치즈라도 넣은 것처럼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따로 간을 하지 않아도 간이 맞다. 비린내가 전혀 없다. 소울 푸드란 이런 요리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내 영혼의 젓국이다.”읽기만 해도 입에 침이 가득 고인다. 눈앞에는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국물의 친근함이 펼쳐진다. 달려가고 싶게 만든다. 허기가 지지 않아도 혀끝에 그 고소함을 만끽하고 싶다. 얼마나 맛이 있으면 ‘영혼의 젓국’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까?

이 요리의 셰프는 칠순의 할머니이다. 신안군 도초도에 산다. 오랜 세월 식당을 하다가 더 늙기 전에 인생을 즐기고 싶어서 최근에 식당 문을 닫았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가야 한다. 젓국이란 남도 섬 지방에서 명절이나 제사상에 올랐다가 남은 생선으로 끓인 국을 부르는 말이다. 생선을 말리면 아미노산이 풍부해져 더욱 고소한 맛이 난다. 이 젓국의 주재료는 바로 말린 감성돔이다. 요리 이름은 감성돔젓국.
감성돔을 말렸다가 구워서 국을 끓인다. 더 고소해진다. 국물이 곰국처럼 뽀얗다. 싱싱한 생선을 말렸다가 구워서 다시 끓인다. 머릿속에 그 고소함이 뱅뱅 돈다.
시인이고 사진가이자, 섬 보호 운동가인 강제윤 씨가 최근에 낸 <전라도 섬맛기행>은 처음 들어보는 음식 이야기로 가득하다. 직접 섬을 찾아다니며 먹어본 음식들이다. 그래서 달라붙는다.
일간지 기자를 하다가 그만두고 9년 전 안면도에 귀향한 사진가 손현주 씨가 쓴 <열두 달 계절 밥상 여행> 역시 자연의 내음이 풀풀 묻어나는 ‘우리의 먹을거리’로 가득하다. 어머니의 정성과 손맛을 느낄 수 있는 토속 밥상 이야기는 인스턴트 음식의 홍수 속에 매몰된 우리에게 상상으로나마 위안을 주기에 충분하다.

뭍의 시름을 잊게 하는 섬맛<전라도 섬맛기행> 강제윤 지음, 21세기북스

지난 20년간 전국 400여 개의 섬을 탐방하며 글과 사진으로 기록한, 섬사람들의 기본권을 지키는 섬 연구소 소장이기도 한 지은이가 묻는다. “섬의 대표적인 요리는 활어일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히 싱싱한 활어 요리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말린 생선 요리”라고 말한다.
이유는? 생선은 말릴수록 감칠맛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그가 발굴해낸 말린 생선 요리의 강자는 ‘마른숭어찜’. 암태도의 식당에서 마주했다고 한다. 특히 겨울철에 말린 암태도 숭어찜의 맛을 그는 “너무도 강렬했다”고 표현했다. 마른 생선찜의 대표 요리로 알려진 민어찜을 뒤로 밀어냈다고 한다. 다른 생선은 보통 3~4일이나 길어도 16일 이내로 말리는데 숭어는 한 달 이상 말려야 제 맛이 난다고 한다. 그런데 생선은 햇볕만으로 말리지 않는다. 바람으로 말려야 한다. 겨울 숭어는 회를 떠도 달디 달다고 하는데, 말리기까지 하니….
관매도의 ‘솔향기굴비찜’은? 관매도 사람들은 절인 조기를 긴 장대에 매달아 하늘 높은 곳에서 한두 달씩 말린다. 청정 햇빛과 함께 3만 평 솔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솔향기, 그리고 해풍이 조기에 스며든다. 바짝 말린 굴비를 쌀뜨물에 2시간 정도 담가 부드럽게 만든 뒤 찜통에 넣고 30분간 찐다. 관매도 할머니가 쑥을 뜯어 손수 빚은 쑥막걸리 한 잔과 함께 굴비를 쭉쭉 찢어 먹는다. 지은이는 “뭍에서 가져온 온갖 시름을 다 풀리게 만든다”고 했다. 이 책은 이런 섬 음식 34개의 레시피를 소개한다. 그리고 “전승되는 토속 음식이 우리 음식 문화의 오래된 미래”라고 규정짓는다.

제철 별미의 유혹 <열두 달 계절 밥상 여행> 손현주 지음, 생각정거장

‘뒤란’은 집 뒤 울타리 안을 이른다. 지은이는 어머니의 뒤란에 간다. “제 어머니에겐 ‘뒤란’이란 우주가 있었습니다. 그곳은 눈물이 많았지만 강인했던 어머니의 뜰이었습니다. 볕 좋은 날이면 ‘날 좋다’ 하시며 고추장과 된장 항아리 뚜껑을 드르륵 열어놓으셨지요. 그 울안에 꿈꿈한 냄새가 고입니다.” 지은이는 어머니의 뒤란과 텃밭 정신이 담긴 토속 음식을 찾아 방방곡곡을 다녔다.
울릉도 홍합밥부터 먹어보자.(물론 지은이의 표현이다.) 성인봉 근처 절집 입구의, 이름을 알리기 싫어하는 토박이 아주머니가 지어준 홍합밥이다. 빨간 홍합을 잘게 썰어 맵쌀, 간장, 참기름을 넣었다. 밥그릇 가득 홍합이 봄꽃처럼 박혔다. 밥알 사이로 졸깃하게 씹히는 낯선 질감이 즐겁다. 곁들여 나온 돌미역국에서 울릉도의 푸른 바다가 드러나고 홍합밥에서는 한 머구리의 인생이 자글자글 뜸 들었다. 슴슴하고 고소한 밥.
이번엔 충남 태안군 남면 마검포 포구로 가서 실치회를 맛보자. 때는 봄이다. 맛보기로 내온 봄 새우와 무치지 않은 날실치의 흰 줄기가 먹기 가혹할 정도로 투명하게 반짝인다. 입안 가득 짭조름한 맛이 퍼진다. 쌉싸래한 수박향이 머문다. 살을 저며낸 큰 생선에서 느낄 수 없는 섬세한 풍미다.
셰프이자 음식 칼럼니스트인 박찬일 씨는 “가슴에 품어서 따습게 해서 먹던 먼 옛날의 밥 같은 책”이라고 썼다. 제철 별미를 지역별로 맛보고 싶다면 마음 맞는 친구와 이 책을 들고 먹방 투어에 나서도 될 듯하다.

글 이길우_한겨레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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