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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9월호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내 마음이 접히는 곳
구겨진 종이 같다. 아무리 펴보려 애써도 구겨진 마음에는 흔적이 남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흔적이 향하는 길이 어딘지 몰라 늘 두렵다. 미스터리 박스처럼 열어보기 전에는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르는 내 마음의 주인은 내가 아닌 것 같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 는 무한대의 우주에 남겨진 개인의 마음을 품어내는 이야기다. 영화는 내내 우주라는 공간의 경이로운 풍경과 무한함과 더불어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가치에도 경외감을 보인다. 주인공 라이언 스톤(산드라 블록)은 생존을 갈망하면서도 죽음을 준비한다. 삶의 당위와 죽음의 매혹 사이는 우주와 지구의 거리만큼 멀고, 피부와 동맥 사이만큼이나 가깝다.

영화 <그래비티>.

내 마음 보기, 그 두려움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우주 그 자체로 영화를 가득 채우지만, 알폰소 쿠아론의 시선은 우주가 아니라 인간을 향한다. 초반 20분 오프닝 시퀀스의 숨 막히는 롱 테이크와 극한의 우주 조난 상황을 그려내는 연출력은 관객들마저도 무중력 상태에 둥둥 떠다니는 듯 착각하게 만드는데, 지구로부터 600km, 소리도 산소도 없는 곳에서 생존해야 하는 한 여인의 처절한 사투는 외계인과 천재지변 없이도 진짜 재난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카메라의 숏이 무한한 우주에서 라이언 스톤을 바라보는 다큐멘터리 같은 시점에서, 다시 라이언의 시선을 통해 막막한 우주를 먹먹하게 바라보는 숏으로 전환될 때, 관객들은 광대한 우주에 고립된 상황이 아주 좁은 곳에 갇혀버릴 때 느끼는 폐소공포와 다르지 않다는 역설적인 상황에 동감하게 된다. 그리고 영생에 가까운 우주 공간에서 인간이 벌이는 사투는 자신의 유한한 삶 그 자체에 보내는 악착같은 ‘의지’ 그 자체이다.
우주를 향한 경이와 공포, 좌절과 도전, 삶에 대한 애착과 동시에 삶을 포기해버리고 싶은 절망의 순간까지…. 알폰소 쿠아론은 광활한 공간에 홀로 남겨진 한 여인을 통해 이 모든 삶의 다양한 감정의 층위를 가감 없이 풀어낸다. 툭 던져 사라지고자 하지만, 늘 단단한 구심점이 되어 되돌아올 수밖에 없도록 ‘중력’(gravity)이 끌어당기는 힘은 단단한 삶의 의지라고 말하는 것 같다.
또한 살아야 한다는 당연한 의지와 죽고 싶다는 충동 사이에서 갈등하는 라이언을 품어내는 감독의 시선은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사유까지 이르게 한다. 라이언의 귀환이 온전한 삶의 의지로 복귀하는 행복한 결말인지, 죽음에 대한 충동에 사로잡혀 우주로 사라져버리고 싶은 욕망을 실현했다면 오히려 행복하지 않았을지 다시 한 번 반추하게 만든다.

내 마음이 접히는 길

알폰소 쿠아론은 그의 현재를 있게 해준 <이 투 마마>를 시작으로, 최신작 <로마>에 이르기까지 꾸준하게 한 사람의 삶과 그 성장의 과정을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2004년 연출한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서는 13살 해리 포터를 통해, 13살은 괴물을 두려워하는 나이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 움트는 ‘무언가’를 더욱 두려워하는 나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원작의 팬들이 원작을 훼손했다고 비난했을 정도로 그는 영화를 분노와 불안으로 가득한 사춘기 소년의 성장담으로 풀어낸다. 더불어 그는 장르의 특성이 분명한 상업영화 속에서 자신의 철학을 담아내는 방법을 분명히 터득한 것처럼 보인다.
<칠드런 오브 맨>을 통해 그는 문명사회를 자랑하는 현재, 우리가 암흑의 시대로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이 마지막 희망이라는 끈을 놓지 않는다. 그 사유의 힘은 천문학자들까지 감탄하게 만들었다는, 테크놀로지가 영화에 어떻게 기여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 <그래비티>까지 이어진다.
알폰소 쿠아론은 한 번 구겨진 종이처럼 마음에 남겨진 흔적을 세심하게 들여다본다. 더불어 구겨진 마음을 억지로 펴거나, 그 사이에서 얼른 길을 찾아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응원하면서 흉터처럼 남은 흔적들 사이에서 자신의 마음이 접히는 곳을 알아보라고 토닥거린다.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는 우주의 심연과 마음의 심연을 함께 들여다보며, 무한 우주에서 개인의 심장을 품는 영화다.

글 최재훈__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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