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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호

문단 내 대필 관행문학 권력 견제할 시스템이 필요한 때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대필’을 입력했다. 최신 뉴스로 대학교수가 딸을 대학원에 합격시키기 위해 제자들에게 논문을 대필시켰다는 소식, 대학원생이 대필한 박사학위 논문을 학교에 제출해 업무방해로 기소된 검사의 소식이 나온다. 뉴스 목록을 다음 페이지로 넘기자 한때 문학계를 술렁이게 했던 소식이 보인다. 김경주 시인이 2016년 세월호 전시 도록과 도서관 소식지에 실린 글 등 두 편을 대필시켰다는 소식이다.

앞선 두 사건과 김경주 시인의 대필 사건은 결이 조금 다를 수 있다. 대학 입학과 학위를 부정하게 얻기 위해 권력을 남용한 사건에 비해 전시 도록·도서관 소식지 글 대필은 비교적 사소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 글로 먹고사는 작가가, 유수의 문학상을 탄 유명 시인이 남이 쓴 글을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했다는 건 윤리적·문학적으로 치명적인 문제로 보인다. 이 사건들을 ‘대필’이란 말로 한데 묶는 것은 합당한가?

‘파급력’에 대한 두려움

우선 김경주 시인의 ‘대필 사건’의 전말을 살펴보자. 대필 사실은 지난 5월 미디어아티스트 흑표범이 2016년 열렸던 세월호 전시 <VEGA>의 도록에 실린 ‘서쪽 건너에 비치는 환시’의 저자를 김경주에서 소설가 차현지로 정정한다는 글을 자신의 SNS에 올리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3년 만에 진짜 저자가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대필 과정을 두고는 김경주와 차현지의 말이 엇갈렸다. 두 사람은 2010년 대학에서 사제지간으로 만났다. 김경주는 베스트셀러 시인이자 김수영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수상한 유명 시인이었다. 차현지는 2011년 소설로 등단한 이후 신인 시절부터 김경주와 함께 일하며 그를 도와 김경주의 대학원 졸업작품 조연출, 시나리오 서브작가 등의 일을 해왔다.
김경주는 두 사람이 ‘평등’한 관계였다고 했다. 김경주는 경향신문에 보낸 메일에서 “고용과 피고용의 관계가 아니라 협업관계였다”라며 “대필 사건 역시 협의하에 진행한 일”이었으며 “둘 사이에 위계는 전혀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로 큰 상처를 입은 가족이 있어 정신적 문제로 글을 쓰는 게 어려웠다”라며 차현지 작가와 협의하에 모든 고료를 지급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차현지의 말은 조금 달랐다. 그는 “두 글 모두 김 시인이 제안했다”라며 “신인이고 문단에 아는 사람도 없을 때 김 시인의 제안으로 여러 일을 맡게 됐고, 급여를 받은 일도 있지만 무급으로 한 일도 있다”라고 했다. 또 “선후배, 유명 작가와 신인이라는 상하관계 안에서 제안을 거절하기 힘들었다. 윤리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대필을 수락해 자책하는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김경주가 차현지에게 보낸 메일의 내용은 또 달랐다. 그는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닐 것이다. 그 파급력은 너의 주변 사람들과는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주는 ‘파급력’이란 표현을 쓴 것에 대해 “금전적 지급을 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고 다닌 것에 대해 마음의 상처를 받고 어조가 다소 격하게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나 차현지에게 이 ‘파급력’은 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것 같다. 앞서 던진 질문, 교수와 검사의 대필 사건과 김경주 시인의 대필 사건을 동일선상에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합당한가에 대한 답의 실마리를 ‘파급력’이란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미디어아티스트 흑표범은 자신의 SNS에 전시 <VEGA>의 도록에 실린 원고의 필자명을 정정한다는 글을 올렸다. (출처_흑표범 페이스북 갈무리)

스스로 제도 밖에 서다

문학계는 특정 조직과 제도가 명확하게 존재하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문학상과 문예지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문학 시스템’이 분명 존재하며, 문학상 심사위원, 문예지 편집위원 등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시스템으로서의 문학’은 분명 존재한다. 그 제도 속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결과가 2016년 말 터져 나온 ‘#문단_내_성폭력’ 고발 운동이었다. 유명 작가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근거로 학생과 습작생을 상대로 성폭력을 행사했으며 실제 배용제 시인 등이 법적 처벌을 받았다. 천희란 소설가는 “문학의 권위가 폭력이 될 수 있다. 그해의 작품들 가운데 몇몇 작품에게 상을 주고, 특정 작가를 조명하고 평가하며, 작품을 실을 기회와 출판의 기회가 나뉜다. 문학은 수평적이지 않다”라고 말했다.
김경주의 대필 사건이 알려진 이후 문예창작 박사인 한 교수는 “박사학위 과정 당시 지도교수(시인)의 논문을 대필했다”라고 한 언론에 폭로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등단부터 문예지 작품 게재 권한까지 전방위로 교수의 위력이 닿아 있다.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게 이 바닥의 고질적 문화”라며 “대필이 만연할 수밖에 없다”라고 털어놨다.
다행인 것은 ‘파급력’이 두려워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이들이 이제 스스로 제도 밖에 서길 결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차현지는 최근 홈페이지를 개설, 자신의 소설과 비평문 등을 공개하며 일부는 유료로 판매하고 있다. 스스로 플랫폼을 만들어 독자들과 직접 만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이외에도 독립 문예지 창간, 이메일을 통한 직접 독자 모집 등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대필 사건은 김경주 시인이 한 매체를 통해 사과문을 발표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파급력’은 계속되고 있다.
‘문단 내 성폭력 피해자 연대모임 아가미’는 좌담회 ‘파급력 파티’를 기획했다. “문단의 어르신, 선배 등 위력을 행사하는 자들의 ‘파급력’에 방점을 찍은 좌담회”라고 설명했다. 아직 말하지 못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숨겨진 목소리들이 발화되는 것은 우리 문학을 발전시키는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문단 내부에서도 문학의 이름으로 벌어진 잘못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사회가 추구하는 합리성을 마련하지 못한 ‘문학’은 ‘낡은 것’이 될지도 모른다.

글 이영경_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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