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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호

한국 미술품 둘러싼 감정 분쟁 감정(鑑定)과 감정(感情) 대립
이중섭, 박수근, 천경자.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화가들이 남긴 그림은 목돈이 됐고, 때문에 끊임없이 진위(眞僞) 논란을 낳았다.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감정(鑑定) 결과는 숱한 법정 다툼으로 비화됐고, 그때마다 좋든 싫든 미술 시장은 새 국면을 맞았다. 그러다 지난 6월, 난데없는 한국 미술계의 ‘감정 대립’이 시작됐다. 발단은 국내 미술품 감정을 사실상 주도해온 (주)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이하 평가원)의 해산이었다.

미술품 감정의 역사, 행방은?

평가원은 화랑가 및 학계 인사들이 모여 2002년 출범한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2011년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으로 명칭 변경)에서 기원한다. 개인이나 회사로부터 감정료를 받고 해당 미술품의 진위 의견 및 시가(市價) 감정을 해왔다. 세간을 뒤흔든 판정도 여럿이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2005년 유족이 소유하고 있다가 경매에 내놓은 이중섭의 그림 <물고기와 아이>에 대한 위작 판정이 꼽힌다. 대법원까지 간 이 다툼은 결국 2017년 ‘위작’으로 결론이 났다.
그랬던 이 단체가 세대교체 등을 이유로 지난 3월 해산을 의결하면서, 16년간 쌓인 ‘감정 자료’ 처리 문제가 대두했다.
가장 발끈한 곳이 바로 한국화랑협회(이하 화랑협회)다. 화랑협회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1981년부터 미술품 감정을 해오다 2007년부터 평가원과 업무 제휴를 맺고 일임해왔는데, 평가원 해산 후 감정 업무 재개 방침을 밝히며 “감정 자료를 공유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개인 정보 유출’ 등의 이유로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화랑협회는 “평가원 측이 감정 자료에 대한 책임 의식 없이 폐기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인사가 자료 선점에 실패하자 아예 폐기하자는 것”이라며 “이 귀중한 자료가 사라지면 한국 미술품 감정이 10년은 퇴보하게 된다”고 했다. 이들은 ‘미술품 감정 데이터베이스 폐기 금지 요청’ 서명 운동을 벌였고, 지난달 법원에 자료 열람권에 대한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감정 자료는 감정이 의뢰된 미술품의 특징 및 사진, 감정위원회 소견 등이 망라된 서류를 뜻한다. 지난 3월 평가원 해산을 의결한 주주총회에서도 자료 처리를 두고 고성이 오갔고 “오픈 소스로 공개하자”, “주주가 똑같이 나눠 갖자”, “판매하자” 등 의견이 분분했다. 이후 “아예 폐기하겠다”라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 최웅철 화랑협회장은 “폐기될 경우 지금껏 발급된 감정서의 효력은 물론 훗날 진위 문제가 다시 불거질 위험이 크다”고 했고, 윤용철 부회장은 “평가원 측 몇몇 멤버가 자료를 선점하려다 가로막히자 아예 폐기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라고도 했다. 반면 평가원 측의 임명석 우림화랑 대표는 “폐기 주장은 감정이 격해져 나온 얘기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현재 9,000여 건의 감정 자료는 외부 접촉이 차단된 채 평가원 사무실에 봉인돼 있다.

2008년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의 전신) 오광수 감정위원장이 박수근의 그림 <빨래터>에 대한 진품 감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감정 경쟁 시작, 감정 다툼 되나?

평가원 해산 직후 새로운 감정단체가 출범했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과 이호숙 전 서울옥션 스페셜리스트를 공동 대표로 한 (주)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이하 센터)다. 하지만 이 센터가 또 다른 논란을 불렀다. 감정위원 절반 이상이 기존 평가원 인사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화랑협회 측은 “당초 평가원의 해산 이유로 공공성 강화를 위한 사단법인화를 내세워놓고는 새 주식회사를 만들어 나간 것은 의도가 불순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정준모 대표는 “어느정도 자리가 잡힐 때까지 일부 인사가 참여하는 것”이라며 “평가원과 연결 짓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
화랑협회와 센터의 경쟁 구도가 형성되면서 “선의의 경쟁이 감정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와 “각 단체의 진위 의견이 갈릴 경우 시장에 몰고 올 혼란”의 염려로 미술계 분위기는 양분됐다. 두 단체는 지난달 경쟁적으로 기자간담회를 열고 향후 구상을 밝혔다. 센터 측은 “경쟁을 통해 시장 신뢰도를 얻겠다”라며 “민예품, 도자기로도 영역을 넓히겠다”고 했고, 8월부터 감정 업무 재개 방침을 밝힌 화랑협회 측은 “감정서에 블록체인 방식을 도입하겠다”거나 “해외 유수의 작가 재단과 협업하겠다”는 등의 구상을 밝혔다.
외국은 주로 예술가 사후 설립된 재단 측이 유작(遺作)의 진위 감정을 담당하는 반면, 국내의 경우 화랑가 및 외부 전문가의 사설 단체가 맡고 있어 같은 작품에 대해서도 단체별로 진위 결과가 갈리거나 사익 추구의 공신력 문제 등이 불거져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공공성 강화 차원에서 감정단체 중 한 곳을 ‘미술품감정연구센터’로 지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미술품의 유통 및 감정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 제출됐으나 현재 계류 중이다. 향후 이 단체로 지정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글 정상혁_조선일보 기자
사진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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