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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호

서효인 시인의 10년 전 서울
서울을 그리며

서울의 모습은 사람들마다 다르게 기억된다. 올해로 10년째 서울 살이를 하고 있는 서효인 시인의 기억 속에는 겉으로는 야박하고 퉁명스러워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삶의 뜨거움이 깃든 골목의 풍경이 남아있다.
처음 일을 찾아 서울로 올라왔던 2009년의 서울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2009년의 초입, 어머니는 벌써 두 달을 넘게 산 은평구 불광동 셋 집에 찾아와 잦게 훌쩍이더니 끝내 펑펑 울었다. ‘삼천에 삼십’ 하는 반지하 투룸이었는데, 어머니로서는 그런 주거 간은 쉰셋 인생에 처음이었다. 스물아홉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때에는 나는 이런 짧은 시도 썼었다.

젖은 박스를 검정 고무줄로 정리하는 노인의 자박자박하는 소리가 있어 나는 휘발유처럼 조심스럽게 도로의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거기에서,
_‘불광동’(<여수>, 2017)

거기에서 2년을 살았고 다른 동네에서 또 2년을 살았다. 계약기간에 맞춰 잘도 착실하게 살았더니 서울에서 10년이다. 이제는 반지하에 살지도 않고 심지어 아파트에 산다. 물론 경기도 아파트지만.

불광동에서 어디로

불광동 빌라는 한창 공사 중이던 은평뉴타운 초입 언덕에 붙어 있었다. 한쪽에서 보면 1층이요 다른 쪽에서 보면 지하 같은 곳이었다. 그해 겨울에는 눈이 많이 왔는데, 정말로 사람들은 휘발유 같은 화를 다스리며 찬찬히 내리막길을 걸어 연신내역에 닿았다. 새벽에 길을 나서면 전봇대나 가로수 같은, 기대어 서 있을 만한 것들에는 여지없이 쓰레기봉투가 조심성 없게 쌓여 있었다. 거기에서 새어나온 액체도 사람들 못지않게 조심조심 비탈길을 흘러갔다. 그것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다시 돌아왔다. 나도 그랬다.
이제 막 서울 생활을 시작하려는 참이어서 많이도 긴장했었다. 전철을 기다릴 때면 괜히 노선 지도 앞으로 가서 서울의 복잡하고 다난한 지리를 살폈다. 스마트폰을 열어보면 될 텐데, 환승역은 외워둬야 할 것 같아서 그들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합정, 공덕, 종로3가, 충무로… 같은 것들을 외우면서 걸었다. 합정에서 당산으로 넘어가는 2호선의 차창 밖은 아름다웠다. 불광동의 휘발유와는 다른 정취가 있어 한결 시원했으나, 전철은 빠르게 강의 끝에서 끝으로 사람들을 옮겼다. 그들은 모두 무표정했다.
날이 풀리고 얼마 있지 않아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다. 그때 광화문광장이란 데에 처음 갔던 것 같다. 수많은 버스가 앞차의 뒤꽁무니에 바짝 붙어 길을 가로막았다. 앳된 얼굴의 경찰들이 헬멧을 벗고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나는 또다시 조심스럽게 울었다. 무엇이 슬픈지 알 수 없어 더욱 슬픈 상태가 되어 광화문 아스팔트를 쿵쿵 밟아보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울음소리가 잦아들 즈음 연신내역으로 돌아가야 했다. 연서시장에 들러 간이 덜 된 반찬을 사고, 왼손에 검정 비닐봉지를 든 채 오르막에 접어들면 골목 어귀에서 검정 고무줄로 박스와 종이를 묶는 노인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저녁이면 그들은 좀처럼 말이 없었다. 비에 젖어 글자가 다 지워진 신문지가 대통령이었던 사람의 죽음, 이제 막 대통령이 된 사람의 미소 같은 것을 애써 내보이고 있었다.
출근은 합정역 근처로 했다. 상수역 근처의 저렴한 술집에서 친구들을 자주 만났다. 그곳에 가면 어쩐지 흥성흥성한 기분이 들어서 얼굴에 홍조가 돌고 어깨도 으쓱거리고 걸음걸이는 어슬렁어슬렁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막차를 놓치지 않고 불광동에 돌아와야만 했다. 불콰해진 채로 연신내역에서 내리면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아가는 에스컬레이터가 묘하게 느리게 움직였다. 한참을 조는 듯 서서 기다려 지상에 올랐는데, 집에 도착하면 다시 지하로 내려가야하니 그랬을까. 옆집은 반지하 투룸으로 아이가 둘이었다. 남자애들이었는데, 녀석들은 지금 대학생이 되었을 텐데 어디에서 사는지 알 수 없지만 그날의 나처럼 상수역이나 합정역으로 가끔 나와 없는 폼도 잡고 그럴 것 같다. 그랬으면 좋겠다.

거기가 어디든 얼마나 외롭든, 아직도 서울

내가 흘러간 거기는 어디일까. 지금은 경기도민이 되었지만 많은 경기도 사람들이 그렇듯 날마다 서울로 나온다. 교통체증을 유발하며 경기 북부에서 서울 강남까지 열 개가 넘는 기초자치단체를 넘고 넘어 서울의 일터로 나온다. 처음 일을 찾아 서울에 왔을 때가 2009년이니 이제 10년을 꼬박 채웠다. 결혼을 했고 아이가 생겼고 어머니는 울지 않는다. 제2자유로를 빠져나와 강변북로로 합류할 때에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너머를 보며, 불광동을 생각하려고 하는데, 신호가 너무 짧아 단상이라 할 것도 없는 이미지만 남는다. 가까이에 보이던 북한산. 공사 중이던 아파트들. 함부로 주차되어 있던 차량들. 그사이를 비집고 다니던 고양이들. 박스를 줍던 노인들. 입을 굳게 다물던 젊은이들. 나는 거기에서 어디로 왔을까. 어디로 가는 걸까. 거기가 어디든 얼마나 외롭든, 아직도 서울이다. 야박하고 퉁명스러워 보이는 길목의 풍경 속에 깃든 삶의 뜨거움을 보지 못했다면, 내 서울 생활도 헛된 것이었겠지. 그게 아니라 다행이다. 서울 덕분에 나는 삶의 차양 안으로 조심스럽게 흘러오기에 성공한 것만 같다.

글 서효인_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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