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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의 말

주철환의 더다이즘, 일곱 번째 꽃보다 문화
“평소에 잘 쓰지 않던 근육이 꿈틀거리는 기분이라고 누군가 고백했습니다.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마음도 되살려보라고 저는 권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동심입니다. 유치하지만 순수했던 그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직장의 정글에서 벌이는 인간회복운동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여행 내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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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주말은 금요일 밤 10시부터 시작됩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혼자 놀기’의 달인이 됩니다. 이른바 TV 사냥이 시작되고 저는 본방, 재방, 다시보기를 통해 방송 후배들의 창의성 심사에 들어갑니다. 첫 장면부터 채널 이동을 가로막는 프로그램도 더러 있습니다. 몇 개의 예능은 맨 마지막에 나오는 이름자막에 유난히 눈길이 갑니다. <정글의 법칙> <1박 2일> <개그콘서트>가 이에 해당합니다. 연출 김진호, 연출 유일용, 연출 이정규. 이 세 사람과 저는 각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딱 10년 전 저는 신생 방송사 OBS의 대표였고 이들은 1기로 뽑힌 신입사원 동기들이었습니다. 필기와 실무면접을 거치고 최종면접에 올라온 친구들은 사실 누구를 뽑아도 ‘능력’ 면에서는 그다지 나무랄 점이 없는 게 보통입니다. 하지만 대표인 저의 마음을 훔치는 첫 번째 기준은 따로 있습니다. 명랑성 여부입니다. 밝은 기운의 젊은이가 밝은 회사를 만든다는 게 제 소신입니다. 어두운 표정의 사원들이 많이 모이면 회사가 어둡게 변하겠죠. 앞에 지목한 세 사람은 첫 만남부터 쾌활했고 발랄했습니다. 신입사원들과 일주일 동안 일본으로 연수를 겸한 여행을 떠났을 때 평생 유쾌한 직장생활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세상은 모두 우리 편인 듯했고 행복한 미래에 대한 기대로 설레고 벅찼습니다.
10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고 각자도생의 길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짚고 넘어갈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갈라졌지만 결코 갈라서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나옵니다. 서로 좋아하는 것과 서로 사랑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겁니다. 좋아하는 건 오로지 내가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고, 사랑하는 건 상대인 그도 잘살기를 바라는 거죠. 결과적으로 나 혼자 만족하기를 바라는 건 좋아하는 마음의 구역이고 그 사람도 행복하기를 바라는 건 사랑하는 마음의 영역입니다. 꽃을 좋아하면 꽃을 꺾어서 혼자 즐기다가 시들면 내다버리는 반면에 꽃을 사랑하면 꽃이 생명을 잃지 않게 잘 돌보고 키우죠. 개를 좋아하면 복날에 개를 잡아먹고 개를 사랑하면 개를 자식처럼 잘 기르는 상황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문화적인 삶이란 결국 서로 사랑하는 삶이라는 생각이 날로 굳어집니다. 문화(culture)의 어원을 ‘재배하고 경작한다’(cultivate)라고 배웠는데 농업(agri+culture)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교육과 문화는 농부의 마음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씨뿌리기, 모내기, 김매기를 제때 하여 잘 기르고 돌보고 키우는 게 문화의 정신입니다.
저는 그 시절 신입사원들을 ‘희나리’라고 불렀습니다. ‘희망을 나누는 리더들’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그들과 ‘당분간’ 헤어지면서 저를 더 이상 사장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이제부터는 희나리 마을의 이장이 될 터이니 저를 이장님이라고 불러달라고 부탁한 겁니다.
사장에서 이장이 되니까 마치 4에서 2로 줄어든 느낌이 드시나요? 아닙니다. 사장은 중역이지만 이장은 현역입니다. 사장은 돈을 벌어야 하는 자리지만 이장은 마을사람들을 위해 즐겁게 봉사하는 역할입니다. 희나리들을 만날 때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더라도 희망을 나누는 리더가 되라고 조언합니다. 지금도 그들은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에서 저를 ‘이장님, 이장님’하고 부르며 살갑게 맞아줍니다.
인생은 짧지만 일생은 길게 느껴지는 건 주변에 싫고 미운 사람이 생겨서입니다. 싫어하는 것은 서로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옷이 맞지 않는다고 옷을 비난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 사이에서는 자기랑 맞지 않는다고 그들을 비난하고 비방합니다. 그것은 싫어함을 넘어서 미워함의 단계로 진입하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것은 그가 잘 안 되고 불행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맞지 않는 옷을 누군가 입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째려보고 다가가서 옷에 더러운 걸 묻히는 것과 비슷합니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건 잇몸약이 해내야 할 원대한 목표입니다. 함께 일하는 직장에서 씹고 뜯을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일곱 번째 직장에 오면서 ‘즐거운 회사 만들기’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직원들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고 대결이 아니라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만든 게 ‘꽃보다 문화’입니다. 할배들도, 누이들도 사이좋게 여행하는 모습은 꽃보다 아름답습니다.
‘꽃보다 문화’는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1박 2일로 여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3월에는 간부직원들 40여 명과 봄내(춘천)에 다녀왔습니다. 30대부터 50대에 이르는 직원들과 ITX 청춘열차를 타고 가며 사진도 찍고 과자도 먹었습니다. 평소에 잘 쓰지 않던 근육이 꿈틀거리는 기분이라고 누군가 고백했습니다.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마음도 되살려보라고 저는 권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동심입니다. 유치하지만 순수했던 그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직장의 정글에서 벌이는 인간회복운동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여행 내내 들었습니다.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서울문화재단 주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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