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세션은 문화예술계의 각종 불공정 관행과 사례를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바람직한 대안을 찾아보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먼저 각자 준비한 짧은 발제를 듣고 공정한 창작 생태계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토론을 이어가겠습니다.

예술 생태계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시기에 광주문화예술회관(이하 문예회관)의 광주시립극단에서 ‘비상근 객원 단원 노동인권 침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사건의 직접 피해자이자 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당사자로서 현안과 과제를 이야기하겠습니다. 광주시립극단의 수시 공연 <전우치 comeback with 바리>의 연습과 공연 과정에서 상임 단원인 연출과 무대감독이 비상근 객원 단원인 조연출과 배우 3인에게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불공정 계약 강요·보험 미가입·안전권 침해 행위를 했습니다. 피해자들은 먼저 문예회관에 피해 사실을 알리고 분리 조치와 징계를 요청했지만, 문예회관의 회유, 2차 가해 등에 실망하고 규탄 성명서를 SNS에 게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문제 제기를 했다는 이유로 함께 작업했던 동료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받았습니다. 공론화 이후 지역 언론의 관심과 취재로 문제가 힘 있게 전파될 수 있었던 반면, 언론을 통해 피해 사실이 노출되면서 사실 왜곡과 2차 가해 등으로 피해자들이 고통받았습니다. 피해자들은 광주광역시 인권옴부즈맨·광주고용노동청에 정식 조사를 요청했지만, 조사 기관들이 예술인의 근무 환경과 업무 특성을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고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역시 피해자가 직접 제공했습니다. 이후 지역의 예술·노동·여성·시민사회단체가 모여서 대책위원회를 결성했고 역할을 분담해 피해자와 고통을 나누었습니다. 피해자들은 근로자성 인정을 요구했지만 광주시와 문예회관은 프리랜서 계약을 이유로 운영조례상의 상임과 비상임 단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함께 작품에 참여했던 일부 배우와 스태프는 무분별한 의혹 제기라며 문예회관에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진실을 왜곡한 사실이 조사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광주시 인권옴부즈맨에서는 부당업무 강요와 인격 모독은 인정했지만, 성희롱 피해는 단순한 성차별적 발언으로 판단했고 배우들의 안전권 침해도 각하했습니다. 광주고용노동청은 배우와 조연출의 계약과 근무 형태를 근거로 근로자성을 인정했습니다. 프리랜서 예술인에 대한 광주고용노동청의 첫 근로자성 인정 사례입니다. 상임 연출의 직장 내 괴롭힘, 무대감독의 성희롱도 인정됐습니다. 이를 근거로 문예회관은 가해자 2인을 중징계한다고 밝혔지만 조치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처음 문제를 제기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피해자들은 문예회관과 가해자에게 사 과를 받지 못했습니다. 현재 피해자 4인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고, 폐쇄적인 지역 예술계의 배제와 2차 가해로 예술 활동을 이어가기 힘들어졌습니다. 오히려 가해자들이 당당하게 활동하는 상황에서 활동 포기까지 생각하는 피해자에 대한 관심과 연대가 필요합니다.
예술인의 창작 활동을 일반 근로자의 근무 형태와 비교해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시대착오적 판단입니다. 예술인들이 각자의 현장에서 적절한 법의 보호를 받으며 활동할 수 있을 때까지 모두가 노력해야 공정한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졸업 후 예술 현장에 진입할 때 예술가들이 직면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드리겠습니다. 전통예술을 전공하면서 ‘최고의 연주가가 되지 못하면 음악인의 길을 걷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친구들과 많이 했는데요. 실기 연주자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트레이닝은 물론 개인의 끼나 예술적 역량 또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학과 동기 90명 중 10명 정도만 전공을 살리는데요. 어린 시절에 전공 분야를 결정하고 올라온 친구들은 대학 졸업 후 실기인으로 성공하지 못한다는 자괴감과 불안감에 인접 분야로 넘어가거나 전공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예술대학이라는 고등교육 안에서 이들에 대한 대비를 어떻게 해줄 수 있는지 얘기하고 싶은데요. 실기를 전공한 후 예술 현장으로 들어오는 인력은 포화 상태입니다. 실기인이 아닌 인접 분야로 넘어간 친구들은 현장에 나와 난관에 봉착합니다. 실기하는 친구들도 졸업 이후 공공기관에 낼 지원서를 직접 작성하는 문제가 생기는데요. 예술위나 지자체 문화재단의 지원 대상에 선정되기 위해서는 지원서를 작성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고등교육을 받은 예술인들이 이 내용을 다 배우고 졸업하는지 물어보면 아니라는 대답이 먼저 나올 겁니다. 저는 2013년부터 한예종에서 강의하면서 ‘졸업하자마자 지원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어떤 내용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예산 편성에 관한 내용입니다. 예산 작성 시 정부의 예산 구분 기준을 그대로 차용하는데 갓 졸업한 예술인들이 이 항목을 정확하게 맞춰서 작성할 수 있을까요? 왜 학교 안에서 교육하지 않고 학생들을 현장으로 내보내는지에 대한 제도적인 문제를 지적할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 내에서 소화해야 할 문제를 사회로 떠넘기면서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제는 학생들이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예술 현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준비된 상태에서 내보낼 수 있는 교과과정의 개편과 교수님들과 현장 간의 접점 만들기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지역 예비 예술인의 실태와 문제점, 방안을 논의하고자 합니다. 저는 서울과 경기도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고향은 대전이라 지역 간의 온도차를 크게 느끼는데요. 2019년 대전 예비 예술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서 예비 예술인들은 실용 교과목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현장을 잘 모르기 때문에 현장에서 필요한 수업을 등한시하는 것 같습니다. 지역 안에는 지역에서 전공을 지속하고 싶은 예비 예술인이 별로 없습니다. 지역 간 인프라 차이와 네트워크 형성 부족을 느끼면서 타 지역에서 활동하고 싶거나, 이 분야를 하고 싶지 않거나, 출신 지역이 아니라 이질감을 느끼고 떠나고 싶어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술을 전공하면서 어떻게 예술을 할지가 아니라 어떻게 취직하고 이것을 그만둘지를 고민합니다. 현재 예술대학에서는 예술가로 살아남기 위한 역량 강화보다 취업에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중요시하는 과목이 무엇인지 인지할 수 있는 교육이 없다 보니, 졸업 후에 직면하는 진입 장벽이 더 높은 것 같습니다.
저희 지역의 청년정책은 취업과 창업 위주이고 다양한 청년예술인을 인지하는 정책은 없습니다. 지원사업은 있지만 이에 대한 정책은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예비 예술인들의 정책과 예술인 복지에 대한 관심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역 내 연극영화과 학생은 학과 통폐합으로 전공과 관련 없는 수업을 들어야 합니다. 시대에 맞지 않는 교육과정이 몇 년 동안 바뀌지 않으면서 학생들의 불만도와 예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높아지고 있습니다. 예술대학 전공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전반적인 개편이 필요하고요. 새로운 수업 방식을 통한 현장 중심 교육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또한 예비 예술가들의 눈높이에 맞춘 지원사업과 정책이 필요합니다.

제 발제는 예술대 학생들이 예술 활동을 업으로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는 과정 속에서 유효한 교육을 받는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현재 예술인에게 요구되는 능력으로는 창작 능력과 직업 능력, 두 가지가 있는데요. 예술대 학생은 이 두 가지를 충분하게 교육받는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설문조사 결과 예술대 학생의 절반 정도는 커리큘럼에 불만족했는데요. 그 이유는 기술 위주의 도제식 교육과 학생 의견과 시대 반영에 소극적인 커리큘럼 때문입니다. 예술대학의 실습교육이 현장과 유리돼 현실에 부응하는 창작물을 생산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오랫동안 제기됐습니다. 창작 환경과 재원 역시 충분히 지원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술대학의 높은 등록금 대비 적게 책정되는 실습비, 사비로 하는 전시·공연·행사 등은 언제나 큰 부담입니다. 문화예술 분야의 직업훈련도 제대로 못 받고 있습니다. 예술대 학생 대부분(94.3%)이 문화예술직 종사를 희망하지만 관련 지원 사업이나 정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대학 측의 직업교육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가 원인인데요. 대학은 취업률에 중점을 두는 와중에 예술인 양성을 목표로 하지만 이 두 전제가 충돌하면서 방향을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 예술대 학생은 창작 활동과 교육 관련해서 합리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는 동시에 졸업 이후 요구되는 능력 또한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합니다.
예술 활동의 시작점에 있는 청년 예술인들이 겪는 생계의 어려움과 불안정한 고용 상황도 언급하고 싶은데요. 실습비 지출은 청년 예술인들의 부채와 생활고를 가중시키고 예술 활동 외 불안정한 노동을 야기합니다. 청년 예술인은 임시직의 비중이 높고 예술 활동과 관련한 부적절한 계약 체결 경험도 많습니다. 이는 불충분한 직업교육과도 연관 있습니다. 문화예술 영역은 개인의 인지도와 노하우에 기대 활동하거나 소규모 공동 작업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권한을 가진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청년 예술인들은 기성 예술인들과의 위계 관계에 의존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고등 예술교육과 문화예술계의 한계가 예술인의 진입을 줄어들게 하거나 활동에 제약을 주고 있습니다. 진입 시기를 맞은 청년 예술인의 지원제도 마련에 앞서 예술인 양성교육의 방향성을 논의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해야 합니다.

공정한 창작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매우 복잡하고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주제로 제시된 위계, 제도, 공정보상의 문제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데요. 문학의 경우 2020년 예술위에서 ‘문학 분야 불공정 관행 개선을 위한 실태조사’ 연구를 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공모전과 문학상 관련 수상 상금의 행사 뒤풀이 사용 강요, 심의 과정에서 수상을 미끼로 한 금품 요구 등이 대표적인 불공정 관행으로 뽑혔습니다. 이는 위계 문제와도 관련 있는데요.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불공정행위를 저지르는 사례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도 고료 대신 물건이나 쌀 같은 현물로 지급하거나 술자리를 강요하는 식의 문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도적으로는 표준계약서가 중요한데요. 문체부에서 표준계약서를 장르별로 개발해 배포하고 있지만,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상황입니다. 문학의 경우 원고 계약서를 청탁서로 대체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청탁서 안에 원고료, 지급 일정 등을 명시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표준계약서가 필수로 자리 잡아야 기본적인 공정 창작 생태계가 마련될 것입니다. 문학 분야 실태조사 연구는 여러 불공정 관행을 알리고 대응책을 세우는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각 분야에서 제대로 된 실태조사와 연구가 선행돼야 대응 방식도 정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관습이라는 명목하에 자행된 ‘갑질’이 위계 폭력임을 말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합니다. 많은 예술 장르의 창작 활동이 단체로 이뤄지기 때문에 발언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폭력임을 밝히는 장을 통해 불공정행위를 하는 개인이나 단체의 경각심을 일깨워야 합니다. 위계 문제에서는 20~30대 청년예술가가 취약한 편입니다. 젊다는 이유로 불공정한 대우를 받지는 않는지 현장의 현실을 살펴봐야 합니다. 현장소통위의 청년 위원 비율을 높이고 청년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를 자주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청년 예술가는 중견·원로 예술가 밑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가진 예술가라는 인식도 중요합니다. 함께 걸어가는 동료라는 인식은 위계 문제를 해결할 열쇠 중 하나입니다.

이제 공정한 생태계를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논의해 볼 텐데요. 먼저 장도국 배우님, 피해 구제를 위해서는 어떤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까요.

현장의 예술인들이 보통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문예회관 내에서도 개인적인 계약 형태로 작업하다 보니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상황 같아요. 지역 단위 혹은 문화재단 차원에서 이런 문제를 관리하고 자문해 주는 인원이 배치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술 현장에 전문성이 있는 기관이 직접 창구를 마련하면, 변호사나 노무사에게 예술계를 이해시키는 시간을 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지민 님은 현장과 유리된 학교 현장에서 발생하는 위계 상황을 느낀 적이 있나요.

예술대 학생은 교수님과 선배 예술인들에게 잘 보여야 앞으로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활동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강해요. 그렇다 보니 이들에게 의견을 내기도 힘들고 권력이 기울어진 느낌이 항상 있습니다.

그러면 도제식 관계 말고 어떤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도제식 교육을 무조건 비판하지는 않아요. 기술이나 표현 면에서 좀 더 정제된 것을 배울 수 있는 효율적인 시스템이니까요. 현장과 연결되는 다양한 기회가 함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장르마다 제도에 진입하는 형태가 달라서 발생하는 문제도 다를 텐데요. 문학계의 진입 제도와 관련해서는 어떤 위계 상황이 벌어지고 있나요.

문학의 경우 등단하고 싶으면 책을 사라는 식의 불공정한 사태가 많아요. 돈을 내서라도 등단하고 싶은 분들의 마음을 이용하는 거죠. 등단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움직임이 요즘 늘긴 했지만, 문학계에 진입하는 가장 안정적인 방법은 등단이라는 생각이 아직 많다 보니 악습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문학계에는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고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면서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를 통해 다양한 목소리가 문학으로 진입하리라 전망합니다. 도제식 관계가 강한 전통예술은 제도권에 어떻게 진입하고, 이와 관련해서 어떤 모순이 있나요.

전통예술 분야도 대회 수상이 가장 대표적 진입 방식이에요. 전통예술은 다른 장르에 비해 국공립 단체가 많은 편이라 단원으로 채용되는 경우도 있고요. 이외에 교수님과 같이 공연하면서 스스로 활동을 시작하는 형태로 구분될 것 같아요. 전통예술은 여전히 도제식 교육이 중요한 시스템이지만 예전에 비해 비중이 줄었고, 요즘은 창작하는 친구들이 많아졌어요. 위계 문제가 존재하긴 하지만 청년 예술가가 불합리와 부조리를 계속 제기하면서 개선되고 있어 다행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기관은 제도를 바꾸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제도 측면에서 예비 예술인과 예술인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공연이나 실기 중심이 아니라 네트워킹 자리만으로도 많은 것이 파생된다고 생각해요. 네트워킹이 더는 예술을 할지 말지가 아니라 예술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