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연희단 육성지원사업’은 민간 연희 창작 단체와 예술가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해 동시대 연희 작품이 탄생할 수 있도록 2019년부터 2년간 운영되었다. 현장의 예술가와 기획자의 끊임없는 고민과 실험을 통해 탄생한 작품과 연구 결과 등을 선보인 <쇼케이스: 연희>(2020. 12. 11~12)를 마친 후 이 사업에 워킹그룹으로 참여한 기획자들이 모여 그간의 과정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는 사업에 참여하면서 느낀 점과 개인적 변화, 동시대 연희 창작 지원에 대한 허심탄회한 대화가 오갔다.
서울시 연희단 육성지원사업 워킹그룹 토론 진행 현장
- 일시
- 2020년 12월 15일(화) 오후 2~4시
- 장소
- 남산예술센터 회의실
- 서금슬 서울문화재단 축제팀
- 정혜리 독립 프로듀서
- 박용휘 천하제일탈공작소·로맨틱용광로PD
- 금수민 독립기획자
- 김희정 타루·통기획PD
- *서울시 연희단 육성지원사업 웹페이지 www.seoyeonhee.com
정혜리
박용휘
김희정
금수민
오늘은 연희 분야와 동시대 연희 창작 분야 지원사업의 방향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 방향은 2020년 <서울시 연희단 육성지원사업>을 진행하면서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끌어내려고 합니다. 먼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어떻게 워킹그룹에 같이하게 됐는지 소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공연과 축제, 그리고 영상 분야에서 콘텐츠 기획과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음악 공연을 많이 다뤘는데, 재즈·클래식·K-pop을 거쳐 현재 전통예술 단체들과 작업하고 있다 보니, 연희가 다른 장르로 확장 가능한지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어요. 실제로 저는 전통과 연희에 집중해서 이야기하기보다는 다른 시장과 국제 교류 그리고 다른 장르와 비교하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이번에 워킹그룹을 하면서 저도 많이 배웠어요. 연희는 다재다능한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다양한 것을 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 줄 아는 용기까지 있는 사람들의 집단이라 앞으로 같이 할 일이 더 많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천하제일탈공작소’라는 탈춤 추는 단체와 ‘로맨틱용광로’, 최근에는 ‘글과무대’라는 연극팀에서 PD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업에 참여한 것은 개인의 문제의식과 닿아 있었어요. 10년 이상 된 연희 단체의 성장 방식에 고민이 있었거든요. 현재 10년 이상을 버텨낸 단체는 1년에 3~4개의 지원사업을 꾸준히 하는 상황에서 시작한 지 5년 전후의 단체는 불만의 소리를 내고 있어요. 그런데 해결 방법이 없는 거죠. 전통을 바탕으로 활동하는 단체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 보고 싶었던 것이 출발점이었어요.
저는 전통예술 혹은 사회의 이야기를 기획으로 풀어내는 독립기획자입니다. 저도 사업 참여를 제안받았을 때 전통예술계에서 느끼고 있던 문제의식을 이 사업에서 같이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이 사업에서 본질적 문제 해결을 위해 들여다본 도제식의 창작 환경 문제와 같은 지점에 공감이 갔어요.
저는 현재 타루와 통기획에서 공연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사물놀이 한울림’이라는 김덕수패 사물놀이 단체에서 공연 일을 시작했고요. 극장 운영, 축제기획, 해외영업, 예술단 관리 등을 5년 정도 하면서 업무를 익혔습니다. 출산 후 잠시 쉬다가 거문고팩토리, 앵비, 정가악회 같은 전통예술 단체와 일하면서 독립기획자로 자리 잡았어요. 사물놀이 한울림에서는 매일 상설 공연을 올리며 연희자들과 한솥밥 먹으면서 지방 공연 다니고 축제도 하면서 뒤엉켜 지냈어요. 지금은 다른 전통예술 분야에서 일하지만 연희자의 장단점을 이해하고 있어서 애정을 갖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사업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2020년 사업에서는 신진 연희자와 중견 연희자를 같이 경험했는데요. 저는 신진과 중견을 나이를 기준으로 나눌 수 없음을 사업을 통해 깨달았어요. 나이보다는 활동 경험이 기준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요. 저희 사업은 동시대 연희 작품이 탄생했으면 좋겠다는 것에서 발화됐거든요. 연희에 대한 지원은 많지만 시대에 맞는 작품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어떻게 하면 지금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공감을 얻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지가 기저에 있었는데요. 2020년에 신진 연희자와 중견 연희자 대상 지원사업을 하면서 어떤 가능성과 미래를 볼 수 있었는지 질문하고 싶습니다
나의 예술, 나의 이야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집중하는 것이 신진이라면 중견은 그 이상의 것, 환경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와 문제의식까지 갖고 있어요. 후배들에게 해야 할 이야기, 생태계와 다른 장르에 미치는 영향까지 생각하는, 조금 더 넓은 시각을 가진 사람을 중견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그러면 10대여도 중견처럼 생각할 수 있고, 40대여도 자기 작품만 생각할 수 있는 거죠. 이제 신진과 중견이라는 구분 기준이 바뀌면 좋겠어요. 이번에 신진은 계속 자기 이야기를 자기 안에서 끄집어내는 프로그램으로 짰고요. 중견에게는 개인의 작품 이상으로 어떤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던졌어요. 그런 점에서 양쪽 다 기대한 수준까지 가능성을 봤어요. 신진들은 자기 이야기를 꺼내 작품을 짜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 아니었나 싶어요. 중견들은 모두 개인과 단체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 내용을 다뤘고요.
저는 어떤 장르든 본인이 이미 갖고 있는 기술 위에 메시지를 얹는 방식으로 작업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면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고 깊이가 없어져요. 내가 가진 이야기로 시작하려면 생각하고 철학하는 훈련이 돼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신경 쓴 것이 생각의 기술과 글쓰기 기술이었어요. 이번 수업은 방향을 알려주고 길을 열어주는 방식이었다고 생각해요. 받아들인 것이 드러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고, 방식도 결국 자기화되겠죠. 동시대 연희 창작의 가능성은 그 지점에 있지 않나 싶어요.
사업 초창기에는 창작 욕구가 없는 연희자에게 창작을 강요하는 듯한 설계에 의문이 있었어요. 현장에서 활동하는 연희자들의 욕구는 중견에서 드러나는데요. 중견의 주제와 자기 발표는 꼭 창작에 닿아 있지는 않거든요. 연희자로 성장하는 길은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진들은 발표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좋았고요. 계속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을 보면서 신진 연희자가 자기 색깔과 방향성을 찾아갈 수 있겠다 싶었어요.
연희는 장르의 특성상 팀을 꾸려나가는 방향으로 잡혀 있는 것 같아요. 기악에 비해 개인 활동을 하기 힘든데요. 개인 연희자로서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을 주고 창작의 방향을 경험하게 한 사업이라고 생각해요. 그 안에서 가능성이 수갈래로 펼쳐진 것 같아요. 사업에 참여한 연희자를 보는 다른 연희자들에게도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고요. 참여한 연희자들도 그 안에서 많은 연결 혹은 경험이 됐을 것 같아요.
쇼케이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공유오피스 같았던 ‘세미나실B’였어요. 오는 사람들마다 소통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죠. 그곳에 있으니 신진 연희자들 간의 끈끈함이 더 잘 보였어요. 이들은 평생의 동료를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 그 공간이 구심점 역할을 했어요. 누구든지 반겨주는 사람이 있고, 연관된 단어를 던지면 티키타카 해줄 동료가 있는, 안정감을 주는 공간이었죠. 협회 같은 곳에서는 그런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에 굉장히 의미 있는 자리였어요.
연희는 10년 간격으로 시대가 원하고 대중이 원하는 시장의 모습으로 바뀌지만, 지금 전공자들은 윗세대의 교육을 답습하고, 새로운 상에 대한 교육도 학교에서 이뤄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회에 나오면 현장 상황이 달라서 괴리감을 느껴요. 이 사업에서는 학교에서 경험하지 못한 훈련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중견도 여러 시도를 해보고 실패도 겪으며 방황하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통해 같이 끌어갔으면 했어요. 또래들끼리 해결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신진과 중견 간의 네트워크까지 발전하지 못한 부분은 아쉬워요. 신진과 중견이 상호 교류를 통해서 배우는 네트워크의 장이 앞으로 더 기대되는 부분이에요.
신진과 중견을 나누는 것은 의미 없고 ‘세미나실B’를 만들어서 접점이 생기게 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쇼케이스: 연희>에 깔려 있는 목적이 네트워크였어요. 이번 행사에 관객이 없었는데도 저는 허전하지 않더라고요. 서로 인사하고 서로의 공연을 봐주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끼리의 네트워크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쇼케이스에 허전함이 없었던 건 애정 있는 관계자들이 와서 진정성 있게 봐주었기 때문이에요. 전달하는 사람도 정말 제대로 공연을 보여주고 싶은 열망이 있었고요. 보는 사람들이 일반 관객보다 고관여 관객이었잖아요. 관심이 많고 전문성 있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이거나 이미 예술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어서 피드백도 훨씬 탄탄하고 풍성해질 수 있었어요.
이 사업의 지원이 없더라도 본인의 커리어를 잘 쌓아갈 수 있는 중견 예술가가 연희에 더 집중하는 계기가 된 경우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나 홀로 활동보다 네트워크를 구축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경우도 있어요.
이번에 중견 연희자들에게 연구를 하라고 했더니 8명 중 4명이 인터뷰를 했어요.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큰데요. 이 판을 만들어놓은 선배들에게서 무언가를 배우고 답을 찾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 거예요. 그동안은 안 해오던 거잖아요. 선배 30명을 인터뷰한 분도 있었는데요. 평소에 선배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활동했는지 직접 만나서 들어보고 경험을 나눌 기회를 갖고 싶어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연희여서 더 두드러지는 가치인 것 같아요. 선배들은 연희가 대중 속에 있을 때 활동했던 사람들이에요. 실제 판에서 대중과 호흡하는 마음과 자신의 기량을 쌓아온 경험이 있어요. 현재 중견이나 신진들은 그것이 끊긴 후에 하고 있어서 거기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것 같아요.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의 길을 가는 연희자도 있는데, 지쳐서 포기하지 않게 해주는 지원과 제도가 밑받침돼야 할 것 같아요. 옆에서 지켜봐주고 무엇이 필요한지 면밀히 고민하면서 순풍에 돛을 달아주는 것이 필요해요. 중견이든 신진이든 중간에 한번 모이는 자리가 있어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면 좋겠어요. 그런 소통 중에 좋은 롤 모델이 생기고 자극을 받은 후배들이 바라보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될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다들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하는데, 그 인프라가 정확히 어느 지점인지 답을 내리지 못했어요. 어떤 분은 인프라가 풍족하다고 하기도 해요. 이런 맥락에서 연희 분야의 문화와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건 아닌지 의문이 생겼어요.
인프라도 사실 교육을 통해 형성할 수 있어요. 연희자들이 교육을 통해 커리어를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교육을 통해 좋은 네트워크가 형성되기도 하고, 학습 모임에서 같은 고민을 풀어나가는 경험을 통해 평생의 동료를 얻어갈 수도 있어요. 작품 지원, 축제 개최보다는 간접 지원이 꾸준히 이뤄지는 방향이면 좋겠고, 이 프로그램도 그런 의미였던 것 같아요.
교육이라는 간접경험을 통해 인프라를 만들어갈 수 있고, 그 속에서 네트워크도 자연스럽게 생겨난다는 것에 공감이 많이 돼요. 그래서 사업 방향 설정 때 학교에서 부재했던 지점을 채워주고, 열어주는 교육 안에서 창작과정을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아가서 이렇게 만들어진 인프라가 외부로 빠져나가고 있는 건 아닌지, 외부에서 유입될 수도 있는데 그 부분이 크지 않아 보이는 건 무엇 때문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여요. 저는 이게 장르의 매력이 잘 전해지지 않아서라고 생각해요.
지금 행하는 전통의 매력을 다시 한번 확인해 봐야 해요. 생각의 시발점은 천하제일탈공작소의 허창열·이주원이라는 두 연희자의 전통탈춤이었는데요, 동시대와 소통 가능한 작품으로 보였어요. 전통춤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발전시키고 무대에서 경험하면서 새롭게 정리한 것인데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현장감을 갖고 있어요. 그걸 창작이라고 하지는 않잖아요.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해서 엮어내는 것에 대해 간과하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것들의 진면목을 발견하고 가치를 드러내 주는 역할을 기획자들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인프라는 지금 성장하는 팀들이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가는 상황이라고 봐요. 새롭게 성장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인프라를 고민하는 것이 맞아요.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인데 교과 중에 국악을 많이 배우더라고요. 저희 세대는 대중음악 흡수가 빨랐고, 국악은 생소하다는 것을 전제로 극복하면서 접근했는데 요즘 아이들은 그 자체로 받아들여요. 이 아이들이 자라서 소비할 만한 좋은 작품이 많아져야 할 것 같아요. 극장 관계자들도 국악으로 프로그래밍을 하려 해도 좋은 작품이 안 나오는 데 대한 아쉬움을 얘기했어요. 장르가 무엇이든 좋은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환경으로 개선되면 좋겠어요.
다른 장르와 비교했을 때 연희 인프라가 부족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어느 장르도 풍족한 곳이 없고요. 자원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지금 있는 것을 얼마나 잘 쓸지 고민해야 해요. 전체 인구 대비 학교도 부족하지 않아요. 전통 분야 지원사업도 진짜 많고요. 다른 장르의 인프라를 활용하거나 거기에 참여하는 방법도 있어요. 인프라 부족을 얘기하기 전에 어떻게 순환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해요. 네트워크에서 다른 장르와의 연결도 중요하게 보는데요. 다른 장르와 결합하면서 연희에 갇히지 않고 연희에서 전통, 전통에서 예술, 예술에서 사회로 폭을 넓혀가면서 인프라를 활용하는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창작에 집중하지 않는 지원사업이어야 생태계가 순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애초에 창작이 안 되는 곳을 지원해서 지원금을 위해 작품을 만들어내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어요. 환경을 만드는 지점을 지원해 주고 재연과 유통을 지원해야 해요. 창작 지원으로 나오는 결과물이 아니라 창작 과정을 위한 지원, 창작을 위한 교육, 리서치 지원으로 더 많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프라가 없지는 않은데 그것을 활용하려는 노력과 고민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전통예술도 기악이나 성악 부문은 이미 창작이나 다른 장르와 결합도 많이 시도하며 시장을 확장하고 있잖아요. 연희자분들은 아직 이런 세계를 많이 만나지 못해서 아쉬워요. 다른 장르와 만날 수도 있지만 전통예술 안에서 기악, 성악 부문의 예술가들과 교류할 필요도 있어요.
중견 연희자 중에는 작품 공연 말고 반주로 많은 돈을 버는 경우가 있어요. 신진은 선배들의 다른 공연에 참여하고, 반주 같은 걸로 생계를 유지하죠. 리서치든 과정이든 신진들에게 지원사업의 설계가 집중될 필요가 있어요. 선배들은 기존 트랙에서 경쟁해서 작품 지원을 받으면 되고요. 기존 단체는 전통 분야에서 하거나 전통을 벗어나 연극에 도전해도 돼요.
연희는 어쨌든 반주 시장이 크잖아요. 어찌 보면 연희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환경이 창작에 집중하기 어려운 방해 요소가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중견 이상은 고착화된 생활을 창작으로 깨뜨리기 힘들어요. 이제 막 세상에 나와 성장하려고 하거나 아직 학교에 있는 친구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반주와 레슨 활동을 줄여서라도 작품과 예술성에 집중하는 중견들도 있어요. 반주와 레슨을 계속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고요.
그건 개인의 선택이고 반주와 레슨 역시 안 할 수는 없는 것이니, 그 부분을 선택한 사람까지 끌어올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어떤 상황이든 창작을 하려는 사람은 창작을 하겠지요. 지원사업은 그런 수입을 포기하고서라도 내 작품에 집중하겠다는 사람을 지원해 주는 거니까요. 저는 신진에 지원사업 설계가 집중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에 공감해요. 중견은 창작의 노하우를 갖고 시스템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으니 지원사업은 그런 기반이 없는 신진들에게 양보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쇼케이스: 연희> 공연
저희가 이번에 워킹그룹이라는 구조로 같이 일했잖아요. 사실 워킹그룹이라는 개념은 이미 많은 분야에서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는데요. 워킹그룹 안에서 우리가 같이 일하는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일하면서 어땠는지 얘기하면서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각자의 향후 계획도 말씀해 주세요.
먼저 의견을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다른 워킹그룹과 비교해 주셔도 되고요.
제가 이번에 한분 한분 섭외하면서 다닌 것은 제가 연희 분야에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었어요. 처음에는 2019년의 경험과 각각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같이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겠다는 생각 정도였어요. 결과적으로도 저는 2020년처럼 마음 편하게 일해 본 적이 없어요. 말로 포장하면 성공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무척 좋은 경험을 하고 마무리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연희를 하는 기획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았어요. 어쩌면 그래서 ‘열정이 있는 객관’이었다고 자평하고 싶어요. 저는 연희라는 장르가 가진 가능성이 크다고 느꼈어요. 워킹그룹을 하면서 제가 하는 다른 프로젝트에 연희적 요소들, 연희자들을 어떻게 같이 가져갈 수 있을지 고민해 봤어요. 주 종목이 있지만 다양한 서브 종목을 가지고 있는 팔방미인들과 일하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봐요. 앞으로 연희자들에게 연락을 많이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기획자는 같은 기획자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는데요. 내 기획이 맞게 가고 있는지, 주장하는 말이 헛된 외침은 아닌지 고민이 많았는데, 틀린 부분도 발견하고 이기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워킹그룹을 통해 확인했어요. 이렇게 일하는 방식을 앞으로 어딘가에 제안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초반에 저희가 진짜 많이 모였잖아요. 후반에는 바빠서 못 만나도 서로 각자의 몫을 하겠거니 하며 무조건적인 지지가 가능했던 이유는 초반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데 있다고 생각해요. 단단하게 기반과 방향을 다진 경험이 매우 좋았습니다.
저는 후반으로 갈수록 원래 하는 일에 치여서 신경을 많이 못 쓴 아쉬움이 있어요. 공연도 사실 더 신경 쓰고 싶었는데 연습하는 곳에 다 가보고, 리허설 때 함께 있어주는 정도의 역할을 한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관계가 돈독해지는 시간이었고요. 워킹그룹은 다들 말하는 것에 목말라 있던 것 같아요.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이 소중했고, 스스로 선입견이라고 얘기하면서 선입견이 많이 없어지기도 했어요.
저는 제 안에서 생긴 전통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착화돼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었어요. 워킹그룹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일하면서 제 안의 고정관념 그리고 관에 대한 고정관념이 많이 깨졌어요. 초반에 서로 신뢰가 깊이 쌓여서 그런지 이해가 필요한 지점을 어렵지 않게 물어볼 수 있었어요. 각자의 경험을 많이 나누면서 엄청난 간접경험이 이뤄지는 형태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워킹그룹을 통해서 2020년에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워킹그룹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저 역시 연희 안에 고여 있고, 주관적이고 감성적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많은 토론과 소통을 통해 이것을 이성적으로 조율하며 균형을 찾아갈 수 있었고요. 능력 있고 일할 줄 아는 사람들끼리 모였기 때문에 필요한 일에만 집중하면 되는 효율적인 구조여서 좋았어요. 기획자는 사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은 엄청 많이 하고 외로운 자리잖아요. 이런 공감대를 통해 친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이렇게 기획자들끼리 뭉쳐서 긴밀하게 일할 기회는 드물어요. 이번 기회가 저한테는 큰 학습이 됐고 특히 평생의 조력자 같은 동료들을 얻었어요.
저희 워킹그룹에는 1970·80·90년대생이 다 모여 있었는데요. 행정이 현장의 어떤 지점을 배려해야 하고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많이 배운 그룹이었어요. 6개월 동안 고생 많으셨고 앞으로도 각자 현장에서 서로 도움을 주면서 계속 좋은 인연으로 남으면 좋겠습니다.
- 정리 전민정_객원 편집위원
사진 서울문화재단